눈물과 웃음의 포인트가 같다는 건, 고향이 같고 나이가 같은 것보다 더 깊은 유대감을 부여한다. 2015년 아름다운재단과 첫 인연을 맺은 새내기 기부자들의 모임이 알려준 진실은 그것. 함께 웃고 함께 시큰했던 <처음자리 마음자리>는 마음이 머무는 이 곳이 꽃자리임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시큰했던 12월 처음자리 마음자리에 함께 해주신 기부자님들

‘나눔’으로 말문 트기

다과 테이블을 둘러싼 자리가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어색한 목례와 머뭇거리는 눈빛이 오갔다. 간이역 대합실에 나란히 앉아 같은 열차를 기다리면서도 쉬 입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서름서름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럴 만도 하다. 같은 목적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지만 처음 만난 이들끼리 눈을 마주치며 웃고, 자연스레 날씨 관련 인사라도 주고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어색한 공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동질감을 찾아내는 것. 출신 지역을 묻고 나이를 묻고, 하다못해 별자리와 혈액형이라도 묻는 까닭은 그래서다.

동질감의 주제어로 ‘나눔’을 잡고 시작된 이야기는 금세 무르익었다. 제 고향 사투리에 귀가 쫑긋 하듯, 나눔의 의미를 알아버린 이들끼리 주고받는 염화미소는 내내 따뜻하고 환하게 서로를 물들였다.

아름다운재단과 올해 첫 인연을 맺은 새내기 기부자들을 초대한 자리인 만큼, 아름다운재단의 역사와 운영 내역에 대한 브리핑으로 <처음자리 마음자리>를 시작했다. 기부자들에겐 익숙한 내용이겠지만, 기부자들이 동반한 친구들에겐 아름다운재단과의 첫 만남이기도 한 시간. 1%나눔 운동을 비롯해 이른둥이 지원사업, 노란봉투 캠페인 등 매체를 통해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아는 이들은 아는 이들대로, 처음 접하는 이들은 처음 접하는 이들 대로 공감과 호기심의 눈빛을 반짝였다.

나에게 '나눔'이란?

나에게 ‘나눔’이란?

 

재단 소개를 마친 후 바로 이어진 본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기부자들에게 마이크를 넘긴 ‘나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먼저, 저마다의 사연을 꺼내들기 위한 마중물로 ‘나에게 나눔이란 ( )이다’라고 적힌 보드를 앞에 놓고 빈 괄호를 채우는 시간부터 가졌다. 기부자들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 출연자’인 김군자 할머니의 영상이 흘렀다. 장례비만 남기고 전 재산을 기부한 김 할머니는 열일곱에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시련을 겪고 한평생 홀로 어려운 살림을 살아온 분.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삶으로 증거한 할머니의 사연을 접하며, 눈가를 훔치는 손들이 바빠진다. 

좋은 인연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

“나름대로 나눔을 실천하고 산지 30년이 넘었네요. 살면서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 뭔가 생각했는데, 그게 기부였습니다. 저에게 나눔이란 ‘사랑’입니다. 사랑에 대한 다른 설명은 필요 없겠죠?”

급한 일정이 있어 바로 자리를 떠야 한다며 발표 첫 순서를 자원한 김석기 씨는 짧고 굵고 단호하게, 나눔의 의미를 매겼다. 그의 말마따나 ‘나눔=사랑’은 덧댈 말이 필요 없을 이야기. 이어 제일 앞자리에 앉은 김윤정 씨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산부인과에 근무하는 그녀는 미혼모 시설에서 임신, 출산과 육아에 대한 교육 봉사활동을 진행해온 지 3년 남짓 되었단다. 이름이 ‘아름’과 ‘다운’인 조카들 덕분에 ‘아름&다운 이모님’으로 불린다는 일화, 관심 영역인 이른둥이 지원사업 등 아름다운재단과 기분 좋은 인연의 고리가 거듭되면서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김윤정 씨는 베테랑 육아 강사답게 재치있는 화술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진 향기는 나를 설명하고, 타인에게 내 인상을 각인시키며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그래서 저에게 나눔이란 ‘영혼까지 향기로워지는 향수’입니다.” 

김윤정 기부자님

김윤정 기부자님 “저에게 나눔이란 ‘영혼까지 향기로워지는 향수’입니다.”

 

‘아름&다운 이모님’의 향기로운 이야기는 앞으로 재단과 함께 의미있는 일들을 적극 진행하고 싶다는 포부와 함께 힘찬 박수로 마무리되었다.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레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정미영 씨에게 넘어갔다. 10년 전부터 기부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매년 기부처를 하나 둘 늘려가는 것을 생의 목표 삼아, 현재 열두 군데를 후원 중이다. 올해 선택한 곳이 오마이뉴스와 아름다운재단. 재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워낙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순서를 미뤄 두었다고.

“기부를 하면서 얻어가는 가치가 참 어마 어마해요. 저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나눔의 가치에 눈을 떴는데, 오늘 이 자리엔 젊은 분들이 참 많네요. 정말 잘한 일이에요. 젊기에 고민도 많겠지요. 제가 살아보니,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고민도 줄고, 그 인연이 삶의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오늘 이 자리의 인연을 소중히 이어갔으면 좋겠네요.”

품어주고 안아주는 목소리라 해야 할까. 고운 은발만큼이나 결 고운 목소리로 청춘에게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는 인생 선배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었다.

정미영 기부자님

정미영 기부자님 “제가 살아보니,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고민도 줄고, 그 인연이 삶의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다음은 첫눈에도 이 자리의 막내로 보이는, 열아홉 살 김지선 양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십대라 “우와~”, 이 자리를 위해 대구에서 상경했다는 사연에 또 한 번 “우와~”,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낸 인물.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여러 기관의 후원으로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고 나눔의 소중함을 알았다는 그녀는,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재단에서 발간한 <세상에서 가장 큰 1%>를 접하고 기부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막연히 기부는 큰 돈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1%의 나눔을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내가 나눈 만큼 기쁨으로 돌아오기에, 나눔이란 ‘부메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눔, 함께하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

지선 양의 서울 상경 길을 함께 해준 친구 민지 양이 ‘친구 따라 기부’를 선언하며 한바탕 웃음을 이끌어낸 뒤, 20대 청춘, 김정희 씨가 배턴을 이어 받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녀에게 아름다운재단은 선망하던 단체 중 하나였다고.

“아름다운재단은 제가 들어오고 싶었던 곳인데 다른 데 취직을 하게 되면서, 그렇다면 ‘기부를 하자!’ 결심했습니다. 나눔은 기부자와 수혜자, 모두의 성장을 돕는 ‘자양분’이라 생각합니다.”

김정희 씨와 동행한 학과 선배 이수빈 씨 역시 ‘후배 따라 기부’를 선언한 상황. 휴가 나온 군인이란 소개에 ‘군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간인 같다’는 최고의 칭찬이 쏟아졌다. 정기적인 기부처를 가지고 있는 그는, 나눔이란 ‘규칙적인 식사와 같은 좋은 습관’이라 정의했다.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자리에 참석해, 과묵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던 청년 박정준 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그는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한부모 여성가장 지원사업’에 마음이 끌렸다는 사연을 풀어냈다.

“나눔이란 ‘혼자 생각하면 어렵지만 함께 생각하면 쉬운 것’이 아닐까 정의해봤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저의 첫 기부처이기도 합니다. 철들고 부터 엄마에게 어떻게 힘이 되어드릴까 고민했는데, 뜻있는 나눔을 통해 계기 마련을 한 것 같습니다.”

옆자리의 오효선 씨도 개인사와 나눔의 의미가 겹쳤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녀는,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첫 월급 받으면 시작해야지 했는데,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되더라고요. 한데 얼마 전, 마음에 남는 글귀를 봤어요. 나눔은 크지 않아도 된다는, 조금씩 조금씩 하면 된다는 내용이었어요. 바로 인터넷을 검색하다 아름다운재단을 알게 됐고, 작은 금액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친구 따라 왔다가 많은 걸 얻어간다’는 효선 씨 친구, 하나 씨의 소감으로 또 하나의 나눔을 체감하며 기부자들의 이야기 시간을 마쳤다. 이름과 기부를 시작한 사연을 나누었을 뿐이거늘, 서로의 삶에 크게 한 발짝 다가선 기분. 혈액형과 별자리가 같은 것 보다 더 큰 동질감을 확인했기 때문일까. 

나눔의 씨앗 심기

나눔의 씨앗 심기

 

새내기 기부자 모임의 상징적 이벤트인 ‘나눔의 씨앗 심기’를 마지막 순서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이주일이면 싹이 난다는 채소, 래디시 씨앗을 심은 화분 하나씩을 품고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는 길. 짧은 만남이 아쉬웠던 이들은 가까운 카페로 이동해 <처음자리 마음자리>의 ‘2차’를 이어갔다. 좋은 인연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정미영 씨의 말처럼, 서로의 좋은 기운으로 채워지고 메워진 마음자리 덕분에 체감온도를 1℃ 이상 높인 날이었다.

글 고우정 | 사진 조재무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