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가난' 이미지 검색 결과. 한국 50~60년대 사진도 많이 나옵니다.

구글의 ‘가난’ 이미지 검색 결과. 한국 50~60년대 사진도 많이 나옵니다.

 

달동네 단칸방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열심히 공부하는 소년소녀가장, 한겨울 온기 없는 방에서 낡은 옷들을 겹쳐 입은 노인… ‘가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강 이렇습니다. 모금 방송이나 포스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가 돕는 사람들은 정말 불쌍한 사람일까요? 우리는 그들이 불쌍하기 때문에 돕는 걸까요? 얼마나 불쌍하면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일까요?  

며칠 전 ‘국제개발협력과 미디어의 역할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국제개발협력과 아동인권에 대한 것이니 아름다운재단에 직접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만, 부제가 참 좋았답니다. ‘가난,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시선’.

기부자의 지갑을 여는 ‘빈곤 포르노그래피’

 이미 외국에서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의 모금방송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요. 이런 영상들을 가리켜 ‘빈곤 포르노그래피’라고 하지요. 이런 상황을 패러디해 노르웨이에 난방기구를 지원하자는 아프리카의 가상 모금광고 영상이나 모금광고 ‘전문 아역배우’의 촬영 현장을 담은 영상이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SAIH의 ‘노르웨이를 위한 아프리카, Radi-Aid’ 캠페인 | 관련글> 아프리카, 노르웨이에 히터를 원조한다고?

 

모금의 취지는 선할지 몰라도, ‘빈곤 포르노그래피’는 해당 국가와 주민들을 열등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그려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연출된 상황을 그리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정직하게 알려주는 것도 아니지요. 촬영이나 이후 확산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설혹 ‘팩트’는 맞는다 해도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묘사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 해결을 가로막을 우려도 크지요.  

오래 전 서구 열강의 지식인들은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자선사업을 하고 교육사업도 했지요. 이를 위해 삶을 헌신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우월한 백인’의 도움은 결국 제국주의와 식민지화로 이어졌습니다.

경제성장 덕분에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화했다는 우리의 모금광고도 이런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이 깔려있어요. 조사결과 일반 교양프로그램에 비해서 모금광고의 이미지는 현저히 부정적이었고, 모금액이 많은 단체일수록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온 많은 단체 간사님들도 자기고백을 했답니다. 앞에서 은근히 지적 받은 광고에 대해서 “그거 사실은 저희 광고입니다, 제가 오늘 참 찔리는 게 많습니다”라고 먼저 밝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국내 문제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아프리카 아이들 사진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국내 배분사업과 모금 과정에서도 수혜자는 ‘불쌍한 사람’, ‘무기력한 존재’로만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요. 극적인 상황이 강조되고, 인권이나 사회 구조의 문제는 감춰지지요.

문제있는 광고로 지적된 아프리카 후원 영상. 아프리카를 병들고 무기력한 아이로 묘사했습니다.

문제있는 광고로 지적된 아프리카 후원 영상. 아프리카를 병들고 무기력한 아이로 묘사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핵심가치 중 하나는 ‘상호존중’입니다. 나눔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회의 가치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이들의 인권과 사생활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수혜자를 언론에 노출하지 않습니다. 좋은 뜻에서 권해도 노출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고, 또 ‘수혜자’라는 입장에서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쉽지는 않거든요. 실제로 취재요청을 하는 많은 미디어가 ‘센 그림’을 바라는 경우도 많았답니다.

하지만, 수혜자를 노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뭐, 꼭 제가 홍보팀이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 아름다운재단의 비전은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나눔의 생활화”이거든요.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합니다. 함께 사는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지금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말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 생활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자고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수혜자 없이는 참 힘들어요.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늘 사람이거든요. 여러 사람들이 문제에 공감하고 참여하기 위해서는 통계 숫자나 복잡한 제도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문제를 가장 명확하게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결국 ‘센 그림’이 되기 쉽지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서로 힘이 되는 나눔

사실 이 문제는 미디어 노출만의 문제는 아니랍니다. 모금과 사업, 교육 등 비영리단체의 활동 전반에 대한 논의이기도 해요.

이번에 발표된 가이드라인은 ‘아동과 관련된 문제를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구조적 원인과 맥락까지 파악하고 반영해야 한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실제 사업의 내용이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에서 그친다면 제대로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 수 없을 거에요. 그런데 구조적 원인과 맥락을 파악해 이에 대한 사업을 하려면 연구도 필요하고 재원이나 체계도 필요하지요.

예를 들어 1:1 아동결연이 결과적으로 예쁘고 불쌍한 아동만 지원하게 되는 결과를 낳고 아동빈곤의 원인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많기 때문에 대다수의 단체들이 이제는 ‘지역사회 지원’으로 사업 방식을 바꾸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변화는 결코 쉽지 않아요. 그 ‘구조’와 관련된 정부나 기업, 타 기관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할 테고요. 수혜자나 지역사회와의 관계도 다시 설정해야 하고요.

게다가 기존의 잘못된 시선에도 한국사회의 역사와 구조적 맥락이 있을 거에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자수성가’의 신화, 사회적 연대나 보편적 복지의 부재 등이 쌓인 결과 “가난은 개인의 탓”이라는 생각이 만들어진 것이겠죠. 그만큼 깨기 어려운 사고방식일 거고요.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기부자님들의 반응이에요. 기부자님들이 ‘센 그림’에 지갑은 여는 한, 모금기관들의 ‘빈곤 포르노그래피’는 사라지기 어렵답니다. 기부자님들이 ‘좀 딱딱한 사회문제 이야기’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모금기관들은 이를 근거로 사업이나 모금을 할 수 없어요.

이날 토론회에서 한 단체 발표자는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1:1 아동결연을 하는 곳은 한국일본미국 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많은 단체들이 지역사회 지원으로 사업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1:1 아동결연이 먹히니까요.  또 다른 참석자는 모금 방송에서 정말 따뜻한 영상을 만들어서 내보냈했는데. 다른 기관들이 계속 기부전화 받는 동안 우리는 딱 2콜이 왔다면서 현실적으로 이런 가이드라인이 지켜질 수 있겠냐고 했어요.  

당장 모금액수가 바뀌고 사업이 왔다갔다 하는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밋밋하지만 정직하고 심도 깊은 영상을 내보낼 수 있을까요? 아무리 기관들이 뜻을 모은다 해도 현실의 벽을 깨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렇게 갈 길이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관들이 더 나은 방식의 모금과 소통을 위해 첫걸음을 뗀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크게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아름다운재단도 분발해서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지 더욱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겠어요.

타인의 고통, 그리고 나의 행복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제가 참 좋아하는 수전 손택의 글입니다. 이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누군가의 고통은 단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고, 나의 행복과도 상관관계로 얽혀있을지 몰라요.

시민의 인식과 일상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1%나눔 캠페인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며, 개인과 집단의 문제를 공동체가 책임지고 해결하는 공익의 가치를 실현한다”

제가 참 좋아하는 또 하나의 글, 아름다운재단의 핵심가치 ‘공익성’에 대한 정의문입니다.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것을 좀더 우리의 문제로 연결하기 위해서 저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아름다운재단 모금에 참여해주신 많은 기부자님들이 지원사업 내용에도 그와 관련된 사회 구조의 문제에도 깊이 관심 가져주시고 참여해주시면 더 힘차게 뛸 수 있을 것 같아요. 꾸준히 지켜봐 주시고 함께 해주세요!

 

덧말.

 ‘수혜자’라는 표현도 바꾸고 싶은데, 딱 생각나는 것이 없네요. ‘시혜’라는 표현은 주는 사람의 우월성을 강조한 어감이라서, 이미 많이 줄어들었는데요. 여전히 ‘수혜자’라는 표현은 흔하게 쓰이고 있지요. 참고로 아름다운재단은 지원단체 또는 지원자라는 표현을 쓴답니다. 🙂

저희의 도움을 받으시는 분들은 단순한 ‘시혜의 대상’의 아니라 이 과정의 가장 큰 주인공이자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이기도 합니다. 그 잠재성과 주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밝고 쉬운 표현이 뭐가 있을까요? 제 머리로는 부족한데, 혹시 좋은 생각 있으면 쪽지 부탁드려요.

 

아름다운재단은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들의 참여로 이끌어 가는 비영리 재단법인입니다. 올바른 기부문화를 확산하고, 우리 사회 함께 살아가는 이웃과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글 | 박효원 간사

댓글 2

  1. 하태용

    맞슴니다

  2. 동감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부와 지위와 힘이 과연 순수한 내 노력으로만 얻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나도 우리 부모, 선생님, 주위 어른들,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결국 온전한 내 몫은 아니고…그러면 애초에 온전한 내것이 아니었던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 주는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순간순간 내손에 들어왔으니 내꺼고 계속 나혼자 가지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글들이 어리석은 생각을 순간순간 일깨워주니 아침부터 참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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