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리더라도 반드시 꽃피우는 느린학습자를 위해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교육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경계선지능청소년을 위한 자립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원사업을 통해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갈 수 있다면 좋은 방향에 닿아있을 거란 희망을 보았습니다.”

경계선지능청소년에게 주거란 단순한 안전,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 2021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청소년 주거지원사업은 치유와 자립의 기본이 되는 주거문제의 대안이자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증언입니다.”

2020년부터 청소년복지시설 퇴소청소년 주거지원사업에 참여해 온 이병모(의정부남자단기쉼터 소장), 지구덕(한서중앙병원 원장, 제이씨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자문위원의 이야기이다. 아름다운재단은 2019년 주거통합공모사업 이후 사회적으로 지원정책이 미비한 주거 사각지대인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청소년’ 중에서도 ‘경계선지능청소년’에 초점을 맞춘 주거지원사업을 통해 경계선에 서 있는 청년들의 자립에 가장 필요한 안정적 주거와 함께 이들의 자립에 도움을 주고자 노력해 왔다. 이 여정의 시작부터 함께한 두 명의 자문위원을 만나 2021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청소년 주거지원사업을 돌아보았다.

(좌측부터) 지구덕 원장, 이병모 소장

이중고 겪는 경계선지능청소년

지구덕 : 경계선지능청소년은 말 그대로 지적장애와 평균 이하 수준의 지능 사이에 있는 지적기능을 가진 청소년을 말합니다. 수치로 말씀드리면 IQ가 70대 정도(70~80 미만, 때로는 70~84 정도)에 해당하는 경계성지능수준 진단을 받은 친구들이에요.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국내외 연구에선 인구의 12∼15%를 경계선 지능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지적장애 3급의 지능지수가 IQ 50에서 70이기 때문에 경계선지능청소년은 장애인이 아닙니다. 학습장애 기준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지적장애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계선에 있어요. 진료실에서 경계선지능청소년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면 언 듯 기본적인 의사소통과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대부분 상황 판단이나 대처능력이 부족합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선에 놓여있는 것이지요.

이병모 : 청소년 쉼터에서 15년 정도 근무하면서 많은 아이를 만나왔는데 아동복지시설이나 가출청소년 쉼터에도 경계선지능청소년이 다수 존재합니다. 생활 시설 이용 아동의 37%가 경계선 지능이 의심되고 아동복지시설 중 80% 이상 종사자들이 경계선 지능 아동을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서 지구덕 원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친구들은 상황 판단이나 대처능력이 다소 부족하므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학업성취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소위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학력이나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자립 이후 성인이 되면 큰 고비를 맞이하게 됩니다. 경계에 있어 사회나 제도적으로 별다른 관심이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죠.

지구덕 : 쉼터를 퇴소한 경계선지능청소년은 미성년자가 아니고 장애 판정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성인이 되면 최소한의 보호막도 사라지고, 학교, 기관 등의 울타리마저 사라지면서 혼자가 되는 것이죠. 취업은 쉽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더라도 적응이 어려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에요.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자립

경계선지능청소년을 위한 자립 지원모델로 의미 있는 첫 시작이 되길 기대한다

이병모 : 그런데도 경계선지능청소년에 대한 지원은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 있어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각종 지원에서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느린 학습자 지원법’으로 불리는 2016년 초·중등교육법 개정도 있었지만, 초등학생 이전 및 고등학생 이후 학습자는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경계선지능청소년’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청년기 직업훈련 등 다른 지원법이 전혀 없고요.

지구덕 :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느린 학습자는 말 그대로 천천히, 반복적인 교육과 훈련을 하면 충분히 사회적인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동의 경우 초기에 세심한 개입과 맞춤형 교육이 있다면 정서적 문제나 관계적 어려움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름다운재단 2021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청소년 주거지원사업은 경계선지능청소년을 위한 인프라나 지원정책 서비스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자립 지원모델로 의미 있는 첫 시작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경제적 자립부터 심리적 자립까지 지원사업의 발자취

이병모 : 사업 전반적으로 경계선지능청소년을 위한 토탈케어를 목표로 했는데 비교적 잘 진행되었다고 봅니다. 직접주거비 지원, 커뮤니티하우스 지원, 생필품 및 생계비 지원, 직무능력을 위한 교육 훈련, 교육형 인턴제 나아가 정식 채용을 위한 도움까지 온전한 자립을 위해 필요한 내용이 통합적으로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사실 경계선지능청소년의 경우 주거비 지원만으로는 자립이 어렵습니다. 홀로 생활을 꾸려나갈 훈련이 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요. 지원사업이 이 부분을 심도 있게 접근했다고 봅니다. 특히, 커뮤니티 하우스 모임을 손꼽고 싶습니다. 경계선지능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사회성 부족으로 인한 부적응입니다. 커뮤니티 하우스 모임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들끼리 모여 자신의 생활, 고민, 어려움을 나누도록 한 것인데, 위로와 격려의 시간을 통해 얻은 소속감과 유대감이 자립 후 주거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지구덕 : 저는 취업 연계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습니다. 심리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계선지능청소년 친구가 있었는데 말이 안 통한다며 따돌림 받고, 계속 실패를 경험하는 일이 쌓여가면서 자존감이 많이 무너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원사업을 통해 취업 후 큰 변화를 겪는 걸 목격했습니다. 인턴으로 막 시작했을 때는 일도 서툴고 사회생활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조금 기다려주니 서서히 이겨내더군요. 취업을 통해 의욕이 생기고 성취욕을 느끼니 표정도 밝아지고 우울감도 없어졌어요. 내면에 힘이 생긴 거죠. 그 친구의 변화를 보며 진료실에서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부분들을 해결해주는 건 취업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조금은 느리지만 꽃피울 청소년들의 삶을 지지하며 지원사업과 함께하는 자문위원

지구덕 : 아쉬운 점은 인적자원 인프라에 대한 것입니다. 행동 습관과 활동하는 모습, 심리 상태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 청년에게 필요한 심리 정서적 지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특성과 욕구를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가능할 것입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원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경계선지능아동지도 인력을 확충해 지원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입한다면 좀 더 깊이 있는 지원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병모 : 경계선지능청소년들을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인프라와 지원정책 서비스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정책기반의 시도가 이루어진 점이 고무적이다 보니 더 많은 친구가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경계선지능청소년은 사회구성원으로 필요한 대우와 관심을 받아야 합니다. 학습부진 뿐 아니라 생애주기에 맞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고요. 앞으로 이 지원사업을 모델로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정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사실 개인이나 기관이 해결하기엔 인력과 재원을 감내하기 어려우므로 국가가 개입해야 합니다. 진단 중심의 장애 판정 기준을 기능 중심으로 바꿔 돌봄 사각지대를 줄여,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손 내밀어 주길 기대합니다.

지구덕 : 소장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원사업을 떠나 사회적으로 더욱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원 대책과 컨트롤타워가 지역사회 차원에서 필요합니다. 아동 시기부터 심리적 문제가 있는 아이는 심리상담을 받고, 경계선지능청소년에게는 그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협력기구를 운영하는 등의 안전망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본 사업이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는 시작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조금 느려도 반드시 꽃피우는 청년들을 응원하며

이병모 : 2020년에 발행된 한 보고서를 보니 아이들의 꿈은 빈곤과 생애 부정적 경험이 미친다더군요. 쉼터 아이들은 3배나 더 부정적 경험을 하고요. 현장 전문가가 포기하지 않고 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조금씩 어려움의 파도를 넘어 언젠가 아이가 원하는 항구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함께 같은 꿈을 꾸었기에 이 지원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을 겁니다. 앞으로도 함께 꿈꾸고 응원하며 성장하고 함께 걷기를 바랍니다.

지구덕 : 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친구가 얼마 전에 정직원으로 취업을 했어요. 그 친구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조금씩 꾸준히 포기하지 않는 경계선지능청소년을 위한 제도와 관심이 더해진다면, 반드시 빛나는 시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희망의 증거를 만들고 있는 2021 청소년복지시설 퇴소청소년 주거지원사업에 참여한 모든 분께 응원과 애정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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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유진ㅣ사진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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