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마케팅, 영어로는 뉴메릭 마케팅(Numeric Marketing). 숫자를 통해 브랜드, 상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 기법입니다. 한 달 내내 새로운 맛을 제공한다는 31가지 맛 아이스크림 브랜드. 500mg 고함량의 비타민을 내세운 비타민C 음료, 전자레인지에 3분이면 완성된다는 즉석 짜장과 카레. 설명만 들어도 어떤 브랜드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나요? 숫자가 가진 힘 덕분일 겁니다.
대표적인 브랜드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아름다운재단 역시 숫자 마케팅에는 제법 자신이 있습니다.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기부문화와 사회문제를 아름다운재단만의 숫자로 풀어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다섯 개의 숫자 캠페인, 지금 소개합니다!
1 :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1%나눔 캠페인
20여 년 전만 해도 기부는 ‘부자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혹은 김밥을 팔아 평생 모은 돈을 선뜻 내놓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여겨졌죠. 그 틀을 깨고, 기부를 누구나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 놓은 캠페인이 있었는데요. 바로 ‘1%나눔 캠페인’입니다! 누가 누가 더 큰 금액을 기부하는지에 관심이 많던 시대, ‘1’이라는 가장 작은 자연수가 기부의 패러다임을 바꿀지 누가 알았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슬로건에 공감하며 1%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월급의 1%, 용돈의 1%, 생활비의 1%, 축의금의 1%, 심지어 금연으로 아낀 돈의 1%까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지속할 수 있는 나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기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는 연대. 그래서 1%나눔 캠페인의 ‘1’이라는 숫자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거대한 한 사람이 아니라, 작은 마음을 내어 놓는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사실. 1%나눔 캠페인은 그 단순하고도 강한 진실을 보여준 캠페인이었습니다.

18 :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하는 나이, 열여덟 어른 캠페인
열여덟 어른 캠페인은 묻습니다. “당신의 열여덟은 어땠나요?” 우리는 모두 ‘열여덟’을 지나왔기에 압니다. 그 나이가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그리고 이제 ‘500만 원’이란 돈으로는 자립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죠. 그렇기에 만 18세가 되는 순간, 500만 원의 자립정착금을 받고 홀로 자립해야 하는,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의 현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안타까움을 남겼습니다.

캠페인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보호 종료 연령이 만 24세로 확대되고, 자립정착금 역시 늘어났습니다. 반가운 변화입니다. 하지만 숫자가 커졌다고 해서 삶의 어려움까지 단순하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의 현실은 여전히 복잡하고 치열합니다.
‘열여덟’ 그리고 ‘500만 원’이라는 이 숫자들이 자립준비청년의 현실을 더 쉽고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냈지만, 그들의 삶을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캠페인 담당자로서, 열여덟 어른 캠페인은 숫자 마케팅이 아름다운재단에 남긴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앞으로도 자립준비청년이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더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60 : 나눔은 시간도 선물한다, 60일의 건강보험증
숫자 중 가장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저는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재단에는 시간이 캠페인명에 포함된 캠페인도 있었는데요. 바로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입니다. 당시에는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연체하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생계가 어려워 보험료조차 내기 힘든 사람들은 병원비 부담 때문에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했죠.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연체 보험료 중 단 1회분만 납부해도 60일 동안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건데요.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은 병원 진료가 시급한 분들에게 우선 건강부터 돌볼 최소한의 시간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됐습니다. 건강보험 체납료 1회분을 지원하고, 60일간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지원사업은 종종 ‘돈’이나 ‘양’으로 평가되곤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사업들을 보며, 지원사업의 가치는 ‘얼마나’보다 ‘어떻게’에 있다고 느낍니다.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 역시 단순히 60일 동안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생계형 체납자들의 60일 이후까지 고민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집단 결손처분을 신청하여 체납보험료 탕감을 추진하고, 체납자 실태조사와 제도 개선 연구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60일’은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건넨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47,000 : 10만 분의 1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마음, 노란봉투 캠페인
너무 큰 숫자는 때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2013년, 정리해고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그랬습니다. 그 소식을 접한 한 아이 엄마는 “10만 분의 1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아이의 태권도 학원비 47,000원을 보내왔습니다. 편지에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겠다”는 마음과 함께, “다른 9만 9999명이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는 문장이 적혀있었습니다. 배춘환 기부자님은 아셨을까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숫자들을 만들어낼지.

총 기부자 수 47,547명, 보내주신 노란봉투 수 1,422통, 총 모금액 14억 6,874만 1,745원. 엄두조차 나지 않던 큰 숫자 ’47억’의 약 3분의 1에 가까운 금액이 모일 수 있었던 건, 작은 숫자도 함께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연대의 믿음이 47,000이라는 숫자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 태권도 학원비, 가족의 하루 외식비, 화장품 하나 살 돈을 아껴 노란봉투에 담아주신 수많은 기부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산재,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 등 여전히 남아있는 노동 문제를 알리는 <다시, 노란봉투> 캠페인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0 : 숫자가 당연한 곳에서 숫자를 지우다, 수상한 복덕방 캠페인
부동산 유리창에는 늘 숫자가 가득합니다. 보증금, 월세, 평수, 층수. 집을 구할 때 중요한 정보들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집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곰팡이 핀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입양까지 고민했던 청소년부모에겐 ‘햇볕이 잘 드는 집’이 필요했고, 가정폭력으로 노숙 위기에 놓인 청년에게는 아버지가 찾을 수 없고, 문을 안전하게 잠글 수 있는 집이 필요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에서 시작된 것이 <수상한 복덕방> 캠페인입니다. 캠페인 속 가상의 복덕방 매물지에는 숫자가 없습니다. 대신 이런 문장들이 적혀 있습니다. ‘가족이 헤어지지 않는 집’, ‘문을 잠글 수 있는 집’, ‘보호종료가 없는 집’. 숫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숫자가 없으니 너무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낯섦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집의 진짜 의미는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수상한 복덕방> 캠페인은 숫자를 지움으로써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집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진심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아름다운재단의 숫자 캠페인들을 소개했습니다. 아마 느끼셨겠지만 아름다운재단의 숫자들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결국 그 안에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이야기를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전달하고,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묶어주는 도구일 뿐이죠. 기부자, 지원자, 협력단체 담당자 분들의 이야기가 없다면, 그 숫자들은 금세 의미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기부도, 지원사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크게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진심이 없다면 기부도 지원사업도 오래 마음에 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름다운재단과 함께해 주시는 기부자, 지원자, 협력 단체 담당자님들의 진심 덕분에 아름다운재단의 지난 25년이 더욱 빛날 수 있었습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앞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캠페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글공익마케팅팀 김태형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