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 1세대의 기록 ② 숫자로 다시 읽는 그 시절의 모금

1%나눔팀 최율 매니저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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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 1세대 × 동시대의 기록 ② 숫자로 다시 읽는 그 시절의 모금

모금 1세대로서 2000년대 후반의 기록을 작성한 동료의 글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이 시절의 기록들이 어떤 숫자로 남았을지 궁금해졌다. 과거 선배들은 기부자들에게 지로용지를 보내곤 했는데, 용지 한 장이 만들어낸 기부금이 과거 통계 어디에 찍혀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진 거다. 매달 300원을 한 번도 거르지 않으시던 할머니의 지로 납부가, 그 해 ‘개인 기부금 총액’ 한 줄에 얼마만큼 기여했을까? 그 정성이 숫자로는 어떻게 포착됐을까? 같은 시절을 같은 자리에서 보냈지만, 나는 조금 다른 것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그때 어디 서 있었는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개인 기부금이 가장 가파르게 늘어난 시기가 디지털 이전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가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통계를 보면,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개인 기부금 총액은 2.2조에서 5.4조로 늘었다. 6년 만에 145% 증가했다. 이 속도는 이후 어떤 시기보다 가팔랐다.

어쩌면 지로용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가고, 수기로 영수증을 끊던 그 모든 수고가 쌓여 만들어진 숫자 아닐까? 기부하기 가장 불편하고 번거로웠던 시절, 기억에 남을 만큼 고된 일이었지만, 기부금의 증가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빨랐던 걸 보면 말이다. 동료들의 고생과 기부자들의 진심이 만났던 시절이자 한국의 기부문화가 태동하던 때가 아닐까?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개인 기부금은 5.7조에서 6.2조로 늘었다. 앞서 조성된 기부문화를 기반으로 어려운 시기를 나눔으로 이겨내고자 하는 시민들의 나눔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본다.


거리모금의 시대, 무슨 일이 일어났나

2000년대 후반, 우리는 거리로 나갔다. 동료의 글 속에도 그 이야기가 나온다. 봄여름가을겨울, 주요 지하철 역사 앞에서, 박람회나 페스티벌에서 서명을 요청하고 기부를 제안했다.

거리캠페인은 실제로 숫자를 움직였다. 2006년부터 2012년 사이, 개인 기부금 총액은 5.4조에서 7.8조로 44% 증가한다. 같은 시기 국제 NGO가 전문 대면모금(F2F) 방식을 본격 도입했고, 5년간 신규 기부자 1만 명 이상을 거리에서 만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거리모금의 강점은 명확하다. 기부를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을 기부자로 전환하는 힘이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기부 의향이 있는 사람을 연결하지만, 거리에서는 의향이 없는 사람과 대화를 하며 의향을 만들어낸다. 설령 의향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인지는 시키고야 만다.

물론 비용도 달랐다. 전문 캠페이너를 두고, 운영 비용을 감당하고, 기부자 이탈률을 견디며 1년 이상 지속해야 효과가 쌓이는 방식이다. 뿌듯했다는 그 기억 뒤에는, 꽤 무거운 운영의 부담이 있었다.

정체했던 시간을 다시 보면

안타깝게도 2012년 이후 5년간, 개인 기부금의 증가세가 주춤했다. 2012년 7.8조에서 2017년 8.3조로, 5년 동안 6%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3년 7.9조에서 2014년 7.7조로 오히려 줄어든 해도 있었다. 기부 참여율은 2013년에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고, 그 하락세가 이어졌다.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2014년, 기부금 세제 방식이 바뀌었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고소득 기부자에게 돌아가는 세금 혜택이 줄었다. 소득에서 기부금을 빼주던 방식에서 세금에서 일정 비율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소득이 높을수록 컸던 혜택이 모두에게 같은 공제율(15%)로 통일됐다. 형평성은 높아졌지만, 고액 기부자의 세제 유인은 그만큼 줄었다.

동시에 대형 비영리단체의 회계 불투명 이슈가 연이어 보도됐다. 기부자들의 신뢰가 흔들렸다. 거리에서도, 온라인에서도 기부금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구가 좋아지고, 채널이 늘어났는데도 기부는 멈췄다. 그 시절은 모금의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였다는 것을 숫자가 보여주고 있다. 동료가 말한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이 데이터에도 새겨져 있다. 신뢰가 무너지면, 어떤 도구도 기부자를 붙들지 못한다.


온라인이 바꾼 것, 바꾸지 못한 것

2014년, 주요 온라인 기부 플랫폼에서 모바일 기부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이후 결제 기부자 수는 연평균 564% 증가했다. 2015년 간편결제 기능이 더해지면서 기부 금액도 따라 뛰었다.

실제로 기부를 접하는 방식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2024년 기빙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기부 정보를 접하는 채널로 거리모금을 꼽은 응답자 비율은 2021년 41.7%에서 2023년 순위권 밖으로 사라졌다. 방송모금도 55.2%에서 34.9%로 20%p 넘게 떨어졌다. 2023년 2위부터 6위까지는 모두 온라인 매체다.

온라인 기부가 만든 것은 기부의 대중화다. 클릭 한 번으로 기부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재난이 발생하면 수십만 명이 하루 만에 연결된다.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때 온라인 모금함 중 하나는 4개월 목표액을 하루 만에 넘겼다.

실제로 개인 기부금은 2017년 8.3조에서 2021년 10.3조로 다시 가팔라진다. 모바일 간편결제가 자리 잡고, 코로나19 재난기부가 온라인으로 몰리고, 2021년 세액공제율이 한시적으로 상향되면서 멈췄던 성장에 다시 속도가 붙었다. 정체를 끝낸 것은 결국 새로운 도구와, 그 도구를 통해 다시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기부 방식이 바뀌었어도, 기부를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관계다. 2023년 기빙코리아는 기부자가 요청한 정보를 기관이 충분히 제공하고 소통할수록, 기부자가 자신의 기부로 만들어진 변화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숫자가 많아졌지만, 연결의 질은 더 어려운 과제가 됐다.

같은 현장, 다른 시선

동료가 그 시절을 몸으로 기억한다면, 나는 그 몸의 기억이 숫자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보고 싶었다. 300원짜리 지로 한 장이 기부금 총계 어딘가에 찍혀 있다. 저금통 속 꼬마 편지가 그해 소액 기부자 통계를 조금 움직였을 것이다. 거리에서 만난 서명 한 장이 신규 기부자 유입에 기여했다. 그 정성이 숫자가 되어 20여 년의 기록으로 쌓였고, 개인 기부금만으로도 11조 원을 넘어선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숫자의 변화를 살펴 보면서도 결국 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모금은 연결이라는 것. 가장 불편했던 시절에 기부가 가장 빠르게 늘었고, 도구가 가장 풍부해진 시절에 한 번 멈춰 섰다는 사실은, 결국 모금을 움직이는 것이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였음을 말해준다.

지로용지를 접어 봉투에 넣던 그 손끝이 연결이었고,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던 그 순간이 연결이었다. 플랫폼이 바뀌고 채널이 다양해진 지금도, 연결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수치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왜 그 일이 가능했는지는, 동료의 글 속에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모두를 위한 변화, 변화를 만드는 연결을 미션으로 건강한 기부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기빙코리아 시리즈 / 국세청 국세통계연보 / 더나은미래 / 네이버 해피빈 20주년 공식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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