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365일' 연재를 소개합니다
'무박 365일'은 IMF 사태로 온 가족이 집 없이 전전했던,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최근 일정한 주거공간없이 모텔·찜질방·PC방·친구 집 등을 전전하는 노숙위기청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잘 곳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노숙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온 경우가 많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중장년 위주로 설계된 노숙인 시설이 있지만 청년들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찾기도, 드러내기도 어렵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년들이 집이라 믿고 살아가는 곳들에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현실을 조금이라도 생생히 전하고 싶어 제 어린 시절 여행기를 꺼내봅니다.
중학생이었던 내겐 집에 들어가기 전 꼭 하는 루틴이 있었다.
먼저, 하교 후 오락실이나 코인노래방을 갔다. 적은 돈으로 최대한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락실에선 쉽고 오래할 수 있는 게임 위주로 하고, 코인노래방에선 간주 점프는 절대 하지 않고, 비교적 긴 노래를 선택해 불렀다. 리모컨을 이용하기 보단 노래방 책으로 곡을 찾는 것도 방법이었다. 2-3시간 정도를 보내고 나온 뒤, 하늘이 어둑어둑해진 저녁 때 쯤에야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은 큰 길이나 번화가보다 꼭 작은 골목길을 이용했다. 누가 따라오진 않는지 수시로 등 뒤를 확인하는 것도 필수였다. 마침내 집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는 맞은편 건물에 숨어 주변을 쭉 둘러봤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재빨리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스토킹이나 괴롭힘을 당했냐고? 아니, 우리 집은 눈치를 보며 들어가야 하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신마산 댓거리 골목에 있는 ‘달빛모텔’. 그곳이 우리 집이었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선 목돈이 필요하다. 전세금이나 보증금으로 쓸 목돈이 없던 우리 가족에게는 어디에 살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텔은 괜찮은 거주지였다. TV도 있고, 침대도 있고, 냉장고도, 에어컨도 있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수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의 배려로 세탁기도 이용할 수 있었다. 책상이 없어 공부하기 불편한 것 빼고는, 아니, 공부가 싫던 중학생인 나에겐 그것마저도 장점이었다.
문제는 외부에 있었다. 붉은 조명에, 헐벗은 누나들 사진이 있는 전단지가 널브러져 있는 모텔 건물 입구는 교복 입은 사춘기 소년이 아무렇지 않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위치라도 더 후미진 곳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가족이 사는 모텔은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코인노래방이 있는 건물 바로 옆 건물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내가 모텔에 드나드는 걸 친구들이 볼까 가슴 졸이며 등하교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조심하며 살았을 때였다. 비밀을 잘 숨기고 있다고 믿던 어느 더운 여름날, 등굣길이었다. 교문을 지나고 있는데 어느 일진 무리가 스탠드에 앉아 나를 보며 낄낄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친구가 외쳤다.
“어이! 달빛모텔!”
너무 놀라 발걸음을 잠깐 멈췄다가, 힘겹게 걸음을 내디뎠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얼마나 빨개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날 나는 학교 화장실에 숨어 몰래 울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오락실에서 보내고, 아주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 아니 모텔로 돌아갔다.
쉽사리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나는 모텔방 천장에 한 문장을 새겼다. ‘사는 곳’은 ‘이름’이 되기도 한다.
📽️ 주거위기청년 이슈에 대한 김 매니저의 생각
사회적 낙인과 '숨어 있는' 청년 노숙인
어린 내가 ‘달빛모텔’로 불린 건 다행히 잠깐의 놀림으로 끝났지만, 어떤 청년들에게 ‘노숙인(露宿人, 야외에서 자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은 꼭 피하고 싶은 낙인이다. 청년들은 낙인을 피하기 위해 겉으로는 노숙인처럼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사회적 이미지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시설에 들어가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그래서 청년들은 시설 및 거리노숙보다는 고시원, PC방, 모텔 등을 거주지로 선택한다. 노숙인이라는 낙인보단 나을지라도, 모텔 같은 비적정 주거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무게도 결코 가볍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선택이 노숙인 정책에서 배제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법에서 '노숙인'은 주로 '거리'나 '시설' 거주자에 국한되어 있다. 그래서 고시원이나 모텔 등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 배제되는 문제가 있는데, 2, 30대 청년들이 다수이다. 어떤 노숙위기청년들은 노숙을 지하철역, 공원 등 야외에서 생활하는 상황으로 이해하고, 모텔, 찜질방 등에서 생활했던 경험은 노숙이 아니라며 명확히 구분했다. ‘청년 노숙인’을 ‘숨어 있다’고 표현하는 이유도 이에 있다.
‘사는 곳’이 ‘이름’이 되는 정책. 그 이름을 피하고 싶은, 그래서 보호받지 못하는 청년 노숙인. 그들의 특수성까지 안아줄 수 있는 정책은 만들 수 없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그들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