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서 지내던 임산부, 자립을 꿈꾸는 어엿한 부모로

공익사업팀 임주현 매니저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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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솔 씨(가명, 20살)와 이선재 씨(가명, 25살)가 살아가는 보금자리는 10평 남짓한 아담한 집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유아차와 분유 제조기, 젖병소독기, 문에 붙은 아기 사진들이 이 집의 ‘서열 1위’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지금은 이렇게 오순도순 살고 있지만, 불과 작년 초만 해도 두 사람의 삶은 지금과 너무 달랐다. 두 사람에게 아기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솔씨와 선재씨의 스위트홈

찜질방에서 지내는 임산부… 과연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친구들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연인이 되었다. 임신 사실을 깨달은 것은 2025년 1월, 다솔 씨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미성년이었고 선재 씨는 몇 살 더 많았어도 준비가 안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임신을 알았을 때 두 사람의 솔직한 심정은 ‘망했다’ 하는 것이었다.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차마 지울 수는 없었다. 힘겹게 부모님에게 상황을 알렸다. 다행히 선재 씨의 부모님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다솔 씨의 부모님은 딸의 이른 임신과 출산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솔 씨의 어머니는 “같이 병원에 가자”고 했고, 그 말이 듣기 싫었던 다솔 씨는 집을 나와 찜질방에서 지냈다. 가장 몸을 잘 챙겨야 할 시기에 바깥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당장 주거와 생계가 시급해 인터넷을 뒤졌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나 하나 머물 곳도 없어서 찜질방에서 지내는데 아기를 낳아 기른다는 게 가능하긴 할까? 우리가 부부이자 부모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내 인생은, 그리고 이 아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다솔씨는 임신한 몸으로 찜질방에서 지내야 했다

“정부 지원은 임산부 진료비 말고는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 다솔 씨

“걱정되는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제일 큰 고민은 아무래도 집이었죠. 당장 돈이 없는데 도대체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 “ – 선재 씨

그때 손을 내민 것이 청소년부모 지원단체 ‘킹메이커’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되어 “살려달라는 심정으로” 주거 지원을 신청했지만, 두 사람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청소년부모를 지원해 주는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 경쟁률이 높을 거 같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은 것이다. 힘든 상황에서 헛된 희망을 품었다가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내 집, 마치 꿈꾸는 것 같아요“

부부의 생각과 달리 킹메이커는 빠르게 응답했다. 킹메이커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청소년부모의 주거·생계·양육을 지원하고 자립 역량을 구축하는 청소년부모주거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주된 지원은 청소년부모에게 가장 절실한 주거 부문으로, ▲위기 임신·출산 상황의 긴급 주거지인 ‘119응급하우스’ ▲안정적인 임신·출산·양육 기반을 마련하는 중장기 주거지 ‘인큐베이팅하우스’를 지원한다.

두 사람에게도 이러한 지원이 제공되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배보은 킹메이커 대표는 두 사람에게 “먹고 싶은 것 없냐”고 묻고 따뜻한 밥과 김치찌개를 사주었다. 신청 한 달 만인 2025년 2월 두 사람은 응급하우스에 들어갔고, 2달 뒤인 4월에는 인큐베이팅하우스로 옮겨 안정적으로 생활을 꾸릴 수 있었다.

119응급하우스를 거쳐 인큐베이팅하우스에 입주한 부부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진 새집과 살림, 살뜰한 관심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는 몇 주가 걸렸다. ‘혹시 사기 아닐까, 나중에 몇 배로 물어내라고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찜질방에서 살던 다솔 씨는 “매일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곳,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내 공간”이 생긴 게 너무 좋았다.

집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을 물었더니, 다솔 씨는 “아기의 성장 사진으로 만든 탁상달력”을, 선재 씨는 “어린 시절부터 20년을 함께 한 애착인형”을 꼽았다. 각자 다른 아이템이지만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물건들이다. 이제 역사를 새로 그리고 함께 쓰기 시작한 부부의 집에 어울리는 것들이다.

아기의 성장사진 탁상달력과 아빠의 오랜 애착인형

엄마 아빠가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뱃속의 아기는 하루하루 컸다. 태명 ‘딱풀이’는 그 이름대로 엄마한테 딱 붙어있다가 2025년 9월, 18시간 진통 끝에 수술로 세상에 나왔다. 작고 쭈글쭈글한 모습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아기는 금방 포동포동 살이 붙었다.

3시간마다 깨서 밥 달라고 울던 아기는 어느새 목도 가누고, 뒤집고, 기고, “엄마”, “아빠”도 말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부모들도 함께 자랐고 더 단단해졌다. 다솔 씨가 성인이 되자마자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해 법적 부부가 되었고, 둘째도 가졌다. 겨울에 찾아와 ‘겨울이’라는 태명을 받은 아기는 2026년 가을에 태어날 예정이다.

둘째 겨울이를 기다리고 있는 부부

육아 조언, 살림 지원, 재정관리… 집을 기반으로 치밀한 사례관리

초보 부모의 하루는 생계 활동과 육아를 중심으로 바쁘게 돌아간다. 선재 씨는 오토바이로 배달을 나가는데, 폭염이 한창일 때에도 일을 쉬지 않는다. 오전 일을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저녁부터 새벽까지 다시 일한다. 피곤해도 집에 올 때마다 아기와 놀아주려 노력한다. 다솔 씨의 하루는 아기로 시작해서 아기로 끝난다. 아침·점심·저녁밥을 먹이고 씻기고 낮잠을 재우는 일이 매일 반복된다.

배달일과 육아로 바쁜 선재씨의 하루

지금도 이렇게 버거운데, 부부의 힘만으로 이 삶을 온전히 짊어져야 했다면 얼마나 허덕였을까. 살림과 육아를 차근차근 알려주고 학습도 이어가도록 묵묵히 도와준 킹메이커와 청소년부모주거지원사업이 없었다면 말이다.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에서 주거는 시작일 뿐이다. 집을 기반으로 치밀한 통합적 사례관리가 들어간다. 청소년부모의 상황을 꼼꼼히 살피면서 당사자들의 니즈에 맞춰 자립 역량을 강화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계와 의료는 물론 생활물품이나 육아용품을 지원하고, 부모교육과 재정관리 교육도 지원하고, 청소년부모의 학습과 취업도 지원한다. 청소년부모의 자립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지원한다. 한 마디로 ‘청소년부모의 부모가 되는 셈이다.

킹메이커 활동가들이 꾸며준 아이방

자립도 육아도 서툰 두 사람에게 이런 지원은 한 줄기 빛이었다. 부부는 킹메이커를 통해 육아와 살림, 재무 관리법을 배웠다. 부부의 집은 구석구석 킹메이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틈틈이 살림을 도와주던 킹메이커 활동가들은 얼마 전 아기방도 새로 꾸몄다. 점점 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아기의 성장에 맞춰 안전하게 놀 공간을 만든 것이다. 창고처럼 쓰이던 방을 확 리모델링했는데, 폭우에 비가 새서 곰팡이가 피었던 벽을 대대적으로 공사한 뒤 분홍색 페인트를 칠했다. 바닥에는 아기용 매트가 깔렸고, 책장에는 장난감과 그림책이 가지런히 담겼다.

삶이 안정되자 자연스럽게 부부 사이도 가까워졌다. 불안하고 예민하던 시절엔 자주 다퉜지만, 스트레스가 줄면서 짜증 낼 일도 함께 줄었다. 다솔 씨는 “여기 오기 전까지는 혼자 살아가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킹메이커가 하나하나 챙겨주니까 너무 든든하다”며 “지원을 못 받았다면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 심지어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 우리 곁에 있었을지도 상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기적과도 같았던 아이의 탄생

대학 진학, 원가족 관계 회복, 그리고 새로운 출발

킹메이커를 만나고 1년 반 만에 두 사람은 자기 삶과 한 생명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참 많이 성장했다. 지금 두 사람은 온라인 과정으로 사회복지학과를 다니고 있다. 이른 임신과 출산으로 진학은 생각도 못 했지만, 킹메이커의 제안을 듣고 ‘나도 대학에 갈 수 있구나’ 하고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일과 육아에 바쁜 두 사람이지만 새로운 기회 앞에 용기를 냈다. 이후 입학원서를 넣고 각종 행정절차를 밟고 과제나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킹메이커는 부부의 곁을 지켰다.

또 다른 성과는 원가족과의 관계 회복이다. 다솔 씨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부모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내내 서러웠다. 그러나 방싯방싯 해맑은 아기가 상처받은 어른들의 마음을 스르르 녹였다. 할머니·할아버지는 아기 앞에 백기를 들었고, 지금은 오히려 “언제 애를 데리고 오냐”고 성화다. 어찌나 손주를 예뻐하는지, 아기가 “엄마”, “아빠”보다 “하부부”라며 할아버지를 먼저 말할 정도다.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원가족과의 관계도 회복했으니 이제 킹메이커로부터도 자립할 때가 됐다. 부부는 내년 상반기에 LH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그날을 위해 두 사람은 기초적인 식비를 빼곤 아무 돈도 쓰지 않는 ‘무지출’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적금을 모으고 있다. 한참 유행하는 패션도 따라 해 보고 싶고 나가서 재미있게 놀고도 싶지만 일단 꾹 참고 무조건 아낀다. 단, 예쁜 아기 옷은 ‘근검절약’에서 예외 사항이다.

예쁜 아기옷으로 가득한 옷장

두 사람의 꿈은 여느 부부와 비슷하다. 다솔 씨는 “집도 사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싶다”면서 “킹메이커 대표님처럼 나도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선재 씨는 “그냥 평범한 아빠가 되고 싶다”며 “아기가 크면 같이 라이딩도 가고, 바닷가도 가고, 전국을 여행 다니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작은 소망을 이루는 게 이 부부에겐 참 쉽지 않다. 새 출발을 앞두고 다슬씨와 선재 씨는 고민이 많다. 공과금을 안 밀리고 낼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다. 불안한 미래지만, 부부는 가장 힘든 고비를 이미 넘었다. 고통의 시간을 함께하며 굳어진 신뢰와 애정, 더 나은 삶을 향한 의지가 이들 가족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파도를 맞아 휘청거릴 때도 부부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부모와 아기들을 지키기 위해 곁을 지킬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말이다.

글 박효원 작가
사진 임다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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