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닮은 다른 두 차원이 있다. ‘공감’(共感, empathy)과 ‘연민(憐憫, sympathy)이다. 전자가 타인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위라면, 후자는 손쉬운 다독거림이다. 타인의 공간으로 들어가 그의 눈과 귀, 피부로 고통을 그리는 공감은 ‘수평적 관계’일 때 더 큰 힘을 발휘하지만, 연민은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관계의 우위’를 동력으로 둔다. 공감과 연민, 어느 것에서 시작했느냐에 따라 유대(紐帶)와 연대(連帶)의 범위가 달라지고, 기부와 후원, 지원과 지지의 결이 다른 차원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고받는 대상 모두가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면 공감에 기반 한 나눔이 이뤄져야 한다. 2006년부터 아름다운재단이 7년 동안 진행해 온 ‘장애 아동·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 대상자를 올해 처음 보행훈련 보조기구 사용자로 확장한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관심 영역으로 이끄는 작업은 ‘공감’ 없이 불가능하다. 

아름다운재단의 사업 파트너인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김혜원 연구원은 기립 보조기구나 보행훈련기구 지원 사업이 그리 많지 않은 현 시점에 학습보조기구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확대경, 발보조기 등이 아닌 보행에 관련한 지원에 관심을 가졌다는 게 의미 있다”고 이야기한다.

보행훈련 보조기구

 

장애 아동·청소년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며 ‘자립하는 인간’에 방점을 찍었기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녀는다양한 장애유형에 따른 2만5천여 가지의 보조기구가 장애인의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지급되는 보조기구는 손에 꼽을 정도. 그래서 쉽게 국가적 급여 품목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기립기구나 보행훈련기구 지원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보행훈련 보조기구는 단지 운동을 돕는 게 아니에요. 누워있던 아이가 서는 게 가능해지는 거고 걷게 되는 거예요. 직립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져요. 당사자는 물론 보호자의 노동 강도도 재활 효과도! 다른 차원의 미래를 그려보는 겁니다.”

뜻밖의 시련을 받아들이기까지

“올 봄에 2달 동안 공지를 띄우고 한 달여 간 신청 접수를 받는다더라고요. 이런 기회가 또 어딨을까 싶었죠. 꽤 오랫동안 구입하고 싶었는데 엄두를 낼 수 없었거든요.”

1차 서류심사가 끝나자 현장평가가 진행됐다. 신체기능은 어떤지, 목 가눔은 되는지, 시·지각은 어느 정도인지 인지는 어떤지, 아이가 걸으려는 동기부여는 어떤지… 꼼꼼한 현장평가를 마치고 지난 7월, 드디어 15명의 보행훈련 보조기구 지원 대상자에 기훈이(가명/37개월)가 올랐다. 손꼽아 기다리던 보행훈련 보조기구였다. 어머니 성인옥(가명) 씨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감사는커녕 웃을 일조차 드문 꽉 막힌 일상에 뭔지 모를 바람이 불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집에서 낮 병동을 다니려니 보행훈련 보조기구가 절실해지더라고요. 대근육 운동이 안돼서 이동이 어려우니까요. 아이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서 이동하니까 아이도 힘들고 저도 힘들고… 제발 걷기만 했으면 좋겠다 싶을 때, 재활치료사님과 의사선생님께 물어봐서 점진적 보행기를 소개받았는데 450만 원이라기에 망설이던 차였어요.”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구입하는 것이 최선이자 최상이었으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미 이래저래 들어간 돈이 만만치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태변을 못 봐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심장에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후엔 황달로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생후 7개월에 찾아온 고열로 관련 수술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지나가는 폭풍우라고 생각했다. 기훈이가 용케도 잘 버텨줬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돌이 지나면 기고 일어나고 그러잖아요. 그런 게 전혀 안 돼서 소아과에 갔더니 발달지연이 의심된다고 해서 서울대학교병원에 갔어요. 여러 가지 평가해 보고 발달이 늦다고 재활을 받으라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 치료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강직이라더니 뇌성마비가 의심된다기에 서울대학교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봤죠. 그러곤 원인을 알 수 없는 뇌성마비라고 했어요.” 

뇌 MRI, 척추 MRI, 염색체 검사, 대사이상 검사를 마치고도 원인 모르는 병이라니…. 어쩌면 오진일 지도 몰랐다. 그래서 세브란스병원도 가고 아산병원도 갔지만 마찬가지였다. 남은 것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나이 마흔에 낳은 늦둥이 기훈이의 재활치료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방과 서울 그리고 분당에서 아들과 병원 생활을 하며 지내는 성인옥 씨의 소원은 단 하나, 기훈이의 보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50만 원짜리를 구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사설치료센터에 갔을 때 이런 사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추천도 받았어요. 옵션이 굉장히 많은 기구인데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면 기훈이가 설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보행이 가능해지겠죠. 생각만으로도 기뻐요.”

보행훈련 중인 기훈이

사각지대를 비춰 자립을 지원하다

여러모로 지쳐 있을 즈음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지원 같은 건 늘 남의 얘기였어요. 치료비를 비롯한 여러 지원을 다양한 루트로 중복해서 받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우리는 보험이 없어서 전부 저희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데도 소득 조건이 안 맞아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게 속상했어요. 지금 이 순간, 치료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을 아이에게 해줄 수 없으니 마음 아팠거든요. 잘 알지 못하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려요.”

그녀는 사각지대를 비춰준 아름다운재단에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틀에 갇혀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아이가 아프면서 주변을 살피게 되었어요. 옛날엔 앞만 보며 살았는데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 기부하며 돕는 사람들과 재단…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게 눈앞에 다가오니 놀랍기도 해요.”

어린이 병원에는 기훈이 외에도 많은 아동들이 입원해 있다.

 

그녀는 ‘소득이 낮고 장애가 있는 게 불쌍해서 돕는다’라는 전제가 틀렸다는 걸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차별과 차이를 구분 짓는 세상의 미묘한 경계도 알게 됐다. 걷지 못하는 아이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기훈이를 보낼 수 없게 된 이후부터다. 

그리고 요즘 부쩍 장애인의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생각하고 이동권을 고민한다. 그 생각의 언저리에서 종종 ‘자립’에 의미를 둔 아름다운재단의 촘촘한 지원 사업을 떠올린다. 자신의 고단함을 공감해 준 누군가의 적극적인 나눔. 그것은 기훈이가 걸을 수 있다는 희망만큼이나 그녀를 따뜻하게 위로한다.  

글 | 우승연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약자 지원영역인 ‘사회적돌봄’이 바라보는 복지는 “사회로 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이며, 주거권, 건강권, 교육문화권, 생계권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의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지향을 담은 ‘장애 아동 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은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와 협력하여 장애 아동과 청소년들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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