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보기] ← 아름다운재단 모금팀에서 일한다는 것 –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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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신, 인생의 Up & Down 버텨낼 자신감이 있나요?

저는 재단에서 고액 기부자분들을 뵙고 기부금을 원하는 목적에 쓰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다 보니, 주위 지인들에게 정말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도 그 사람처럼 고액 기부자가 되고 싶다. 

일부 주위 사람들의 인식 속에 고액 기부자는 돈이 많아서 큰 돈을 탁탁 기부하는 것처럼 비춰졌나 봅니다.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나도 그들처럼 사회에 크게(큰 액수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좋아’ 라고 대답했죠. 이렇게 지인들에게 했던 저의 대답에 관한 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0110507-08_이른둥이 가족캠프

 

  •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 계셨던 아버지 때문에 생계가 어려웠던 한 기부자는 공부를 더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업은 이어갈 수도 없었고, 어릴 때부터 새벽에 일어나 시장에서 물건을 사다 파는 등 온갖 고생을 하며 오랜 기간 혼자 살았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몸에는 원인 모를 병도 얻었습니다. 그런데도 열심히 살면서 축적했던 그 많은 재산을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살아온 아이들의 등록금으로 사용해달라며 기부하셨습니다.
  •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배운 것이 없어 닥치는대로 돈을 벌면서 많은 부를 누리던 중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것이 아닌데도 감옥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누나, 동생, 어머니를 차례로 먼저 보내고 죽을 각오로 수 없이 노력하면서 지금은 큰 기업 대표가 되었고,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고액의 기부금을 내어놓았습니다.
  • 제가 뵌 어르신 중 ‘이렇게 훌륭한 인품을 갖고 계신 분이 더 있을까?’ 싶을 정도의 어느 기업의 대표는 우연한 사고로 유일한 아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후 아들의 사망 보험금을 기부하며 시작된 나눔은 매 년 이어지며 부모 없이 자라온 아이들의 주거비로 지원되었습니다.

 

이 사례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몇 십년은 모아야 할만큼 거액의 기부금을 재단에 기부한 고액 기부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주 특이한 사례만 선별하여 고른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고액 기부자들의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기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가족, 배움, 건강> 부분에 남들과 다른 ‘깊은 상처’를 갖고 있었습니다. 기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분은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얌전히 살아오려고 노력하신 분 같은데, 왜 이렇게까지 인생에 많은 일들이 일어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운명, 팔자, 업보(業報) 등 온갖 철학, 종교 용어도 떠오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정말 선하고, 겸손한 태도를 가진 기부자들이 나이도 어린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이실 때는 재단 간사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 그 삶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안타까움, 분노의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저는 ‘인생 총량의 법칙’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을 잃고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일’로 극복한 사람, 죽고 싶은 생각이 수 없이 들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큰 기부금을 내어놓으며 웃는 기부자의 모습, 깊은 상처의 한(恨)을 타인에 대한 나눔으로 대신하려는 사람 등. 인생의 모든 슬픔과 고난과 역경은 다 이유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교도 없고, 처음부터 비영리에서 일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이곳에서 일하면 저처럼 생각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도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은 존재합니다. 자기 배부른 것만 챙기며 살아온 사람들보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 사람들에게 왜 하필 인생의 힘든 굴곡이 존재했을까요. 그 해답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옛 위인이 남긴 글이 있어 아주 조금 의미를 찾았습니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천장강대임어사인야) 인대 必先勞其心志(필선노기심지)하고

苦其筋骨(고기근골)하고 餓其體膚(아기체부)하고 窮乏其身行(궁핍기신행)하여 拂亂其所爲(불란기소위)하나니

是故는 動心하고 忍性(시고동심인성)하여 增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이니라

-맹자(孟子)>「고자장구(告子章句)」下 15장

*(해석)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 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할머니 장례식 사진

남들과 다르게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한편으로 내가 가진 것을 내어줘야 하나 봅니다. 반대로 무언가 크게 잃은 것이 있으면, 다른 기대하지 못했던 큰 것을 얻기도 하구요. 인생 굴곡의 의미, 그리고 평범함이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글 | 손영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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