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은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들고,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공익활동, 특히 ‘시민참여와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공익활동’ 지원을 핵심가치로 합니다. 2017년의 변화의 시나리오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가고 있을까요?

지난 9월 19일~26일 성북구 복합문화공간 미인도에서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기획전시 ‘다시 보다’가 열렸습니다. 미인도라는 공간은 미아리 고가 하부의 어둡고 불편한 공간을 일상예술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재생프로젝트로 탄생한 공간이기에 미아리 재개발과정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삶과 경험을 사진과 예술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의 의미도 있었다고 생각듭니다. 이번 전시에는 5명의 작가가 참여하였는데요. 전시회 첫날 작가님들을 만났습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에서는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 과정에서 배제된 성매매 여성의 삶과 현실을 살려내는 새로운 도시 재생 담론을 형성하고,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문제에 함께 개입하고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민사회단체를 발굴하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향후에 미아리 공간의 변화(미아리 성매매여성 자활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 등)를 위해 ‘미아리, 변화의 씨앗 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아리의 기억과 경험, 다시 보다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기획전시 현장-

170919_W04

존엄도 재개발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김도희 작가 노트 中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계획이 확정된 건 2006년이지만, 경기 침체를 이유로 중단된 채 십여 년이 흘렀다. 곳곳에 생긴 빈 건물만큼이나 영업 중인 성매매 업소도 많다. 경찰은 하월곡동 일대에 아직까지 99개의 성매매 업소와 201명의 성매매 여성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속칭 ‘미아리 텍사스’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이곳에 성매매 집결지가 생겨난 건 1960년대 말이다. 당시 종로에 있던 성매매 집결지가 대대적으로 철거되면서 서울 각지로 성매매 업소가 흩어졌는데, 그중 한 곳이 성북구 하월곡동이었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고, 2005년 화재 참사로 성매매 집결지 안 ‘감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사회는 높은 방음벽과 가림막을 세워 이곳을 마치 없는 곳 취급했다. 박혜정 활동가(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모두가 쉬쉬하지만, 국가에서 성매매 집결지를 관리해온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성병 검진을 와요. 집결지 바로 앞에 파출소도 있고요. 국가가 관리하는 공간인데, 아무도 이곳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죠. 길음역을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공간이에요. 가려져 있지만, 청소년 출입금지라는 푯말도 크게 붙어 있고요. 그런데도 주민들은 ‘거기가 아직도 있냐?’고 말해요. 엄연히 존재하는 공간인데도 말이에요.”

박혜정 사무국장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박혜정 활동가

박혜정 활동가는 재개발과 함께 사라질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이 시급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재단 지원 사업을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인 『미아리. 기억. 경험』을 발간하고, 그 기록을 근간으로 이번 전시를 열었다. 전시에 참여한 다섯 명의 작가는 이전에 관련 작업을 했든, 아웃리치(현장 방문 상담)를 했든, 어떤 식으로든 이곳과 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초대했다.

성매매는 우리의 ‘비밀’이 아닌 그들의 ‘비밀’이었다.
– 『미아리. 기억. 경험』 中

김도희 작가는 하월곡동에 사는 주민이었다. 성매매 집결지까지 십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살았지만, 그 존재를 잘 몰랐다. 그러던 그녀가 <더 텍사스 프로젝트>라는 전시 공간과 연을 맺으며 집결지의 빈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더 텍사스 프로젝트> 옥상을 통해 점프해서 빈 건물들을 다녔어요. 바로 옆 건물이 화재 이후로 버려져 있었죠.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청소를 했어요. (뭐가 나오던가요?) 쓰레기요. (웃음) 먼지, 화재 쓰레기, 동물 사체 같은 게 나왔죠. 사실 작업할 때는 몸 힘든 거 말고는 없었어요. 한 달 동안 출퇴근하며 청소(작업)를 했어요. 오가며 만난 사람들이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장사 안된다고 불평도 하고, 교회도 나가 헌금도 내는 평범하고 건실한 시민들. 왜 아예 이야기조차 하지 않을까. 이걸 드러내면 돈 문제, 사랑 문제, 위계, 차별 문제가 다 드러나잖아요. 사회의 모순된 많은 것들이요. 커튼 한 장 차이라고 생각했어요. 분명 존재하는데 커튼 한 장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공간인 거죠. 동네 주민으로 늘 스쳐 다니던 곳인데 그제야 만난 거예요. 저는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연민으로 뭔가 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냥 내가 본 그대로 단순하게 얘기하자고.”

김도희 작가

직접 디자인한 전시포스터 앞 김도희 작가

그녀의 작업은 화재로 타 버린 업소 건물을 닦아내는 과정 그 자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업 과정에서 수집한 오브제와 기록 사진을 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그녀가 닦아낸 벽을 촬영한 사진이다. “불탄 검은 벽지를 계속 닦았더니 결국 벗겨지고 그 아래로 장미무늬 벽지가… 그 아래로 들꽃무늬 벽지가… 그 아래로 꽃병이 놓인 테이블 무늬 벽지가…” 한 겹인 줄 알았던 벽지가 닦아낼 때마다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이 한 장이 사진이 드러내는 건 이 장소에서 여성들이 경험한 겹겹의 시간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의 겹이기도 하다.

마송은 작가에게 이번 작업은 그 목소리의 다층성에 한발 다가가는 경험이었다. 그녀가 듣고 싶었던 건, 성매매 여성이 “쉽게 돈 번다”고 비난하거나 “불쌍하다”며 동정하는 목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던 당사자들의 목소리였다.

“저는 아웃리치(현장 방문 상담) 활동가였어요. 아웃리치 통해 ‘언니’(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 듣다보니 그냥 내 옆에 사는 이웃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들의 토크쇼에 간 적 있는데, 한 분이 “우리가 이 사회의 배출구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남성들이 와서 아무한테도 못할 말을 ‘언니’들한테는 너무 쉽게 한다는 거예요. 마치 이 여성들이 자기들 비밀을 당연히 지킬 거라는 듯이.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침묵하는 존재라는 거죠. 그렇게 침묵을 강요받으며 산 거예요.”

마송은 작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 다른 시각에서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영상을 제작했다

마송은 작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 다른 시각에서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영상을 제작했다

그녀는 ‘성매매 여성’을 마치 없어져야 할 존재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여기 버젓이 그들이 살아있지 않냐고. 하지만 업소를 직접 촬영하진 않았다. 기존 미디어처럼 자극적으로 소비하기보다는 성매매 여성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나영 작가는 이번 전시를 “실패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아웃리치를 갈 때마다 한 번도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아리. 기억. 경험』 의 기록을 통해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글로 읽었는데 마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어요. 한 인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 삶과도 겹쳐지더라고요. ‘언니’들의 말을 받아쓰는 심정으로 광목 커튼에 그 말들을 옮겼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로의 말들 (허나영 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로의 말들 (허나영 작가)

‘언니’들의 목소리가 적힌 광목 커튼을 통과해 나오면, 160*200cm 크기로 바닥을 둘러싼 직각의 레이스가 보인다. 정원연 작가가 실제 성매매 업소 방의 크기에 맞춰 만든 작품이다. 벽에는 이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던 이수남 작가의 사진도 보인다. 그는 주로 성매매 집결지의 낮의 모습을 촬영했다. 콘크리트 회벽을 허옇게 드러낸 낮은 건물 사이로 바닥에 빗물이 고여 있다. 그 물 위로 고층 아파트의 모습이 비친다. 사진은 곧 철거될 이곳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 불길하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서울에 사라져가는 골목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박혜정 활동가는 “이대로 재개발이 되면 업주와 건물주만 경제적 이득을 보고, 성매매 여성은 오갈 데가 없는 처지가 된다”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성매매 여성에 대한 보상과 생계 대책이지만, 지금은 이 문제를 논의할 장조차 부족하다. 작게라도 꾸준히 공론의 장을 여는 게 그녀가 ‘미아리’에 새롭게 심고 싶은 ‘변화의 씨앗’이다.

이제는... (마송은 작가)

이제는… (마송은 작가)

미아리가 제게는 기억하기 싫은 공간이지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기억하고 싶은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 『미아리. 기억. 경험』 中

덧. 아쉽게도 전시는 이미 끝났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미아리. 기억. 경험』은 일반 서점에서 구입 할수 없는 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관심있는 분은 아래  ‘여성인권센터 보다’ 에 문의주시면 구입안내를 받으실 수 있다고 합니다.

글 우민정 | 사진 김권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로고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전국적으로 11개 지역(2010년 현재)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의 반성매매운동 연대체입니다. 2000년 군산대명동 화재참사대책위와 2002년 군산개복동 화재참사대책위활동을 중심으로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이끌었으며 2004년 6월9일 발족한 이래 서울 미아리 화재참사 대책위활동, 2005년 광주송정동 화재참사대책위 활동과 함께 매년 9월에는‘민들레 순례단’ 활동을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연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성적착취행위인 성매매를 반대하고 성산업을 옹호하면서 수요를 창출하는 그 어떠한 행위도 묵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사회 여성과 약자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고 성매매여성들의 비범죄화를 위해 여성들을 옹호하고 지원하며 함께하는 활동을 진행합니다.
http://www.jkyd2004.org
보다 로고여성인권센터 보다는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에 반대하며, 성평등한 사회를 지향합니다.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성착취로 보며, 성산업을 가능케 하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대해 문제제기 합니다. 성매매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성매매에 대한 이론, 사회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활동합니다.  (02)982-0922

 

댓글 2

  1. 이누리

    구입문의 드립니다. 1권

    • 아름다운재단 공식블로그

      안녕하세요 이누리님 🙂 해당 책은 ‘여성인권센터 보다’ 에 문의하면 구입안내를 받으실 수 있다고 해요! (02)982-0922 번호로 문의주세요 ! 문의 고맙습니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