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인터뷰] NGO의 강직과 경직 사이 조절하겠다 – 권찬 사무총장

출처 링크 : 더피알

“기업이 공동체의 니즈를 세밀하게 전부 알 수는 없어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각종 시민단체 및 복지기관들과 네트워크를 맺어 정기적으로 교류하고, 그들의 자원을 연계한 사회공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CSR 전문가로 마주했던 그는 유독 NGO와의 협업을 강조했었다. 그리고 6년 6개월 만에 다시 만난 그는 스스로가 말했던 바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었다.

권찬 아름다운재단 총장과의 재회는 매거진 마감을 코앞에 둔 어느 주말 오전에 이뤄졌다. “정신없이 바쁘기도 하고 아직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라 대외활동은 자제하고 있다”는 그는 “CSR을 놓고 함께 고민한 더피알이기에 다소 이르게 첫 인터뷰를 하게 됐다”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서울 옥인동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아름다운재단의 소박한 분위기는 권 총장의 장난끼가 한창 더해지는 중이다. 취임식 날 ‘밥 잘 사주는 잘생긴 사무총장’ 현수막을 선물로 받는 순간, ‘딱 내 스타일이야’를 절감했다는 권 총장은 “2020년 스무살이 되는 조직이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성년을 맞을 수 있도록 안팎에서 균형 잡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화 내내 표정과 말투에서 소년 같은 신남이 묻어났다.

권찬 아름다운재단 신임 사무총장은 작은 옥상 정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20주년 성년기를 앞둔 재단이 성숙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 서영길

권찬 아름다운재단 신임 사무총장은 작은 옥상 정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20주년 성년기를 앞둔 재단이 성숙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 서영길(더피알)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으로 오랜만에 뵈니 더욱 반갑네요.

강 기자님도 그 사이 편집장님이 되셨네요? 저는 눈가 주름이 조금 늘었죠?(웃음) 원래 올해는 좀 쉬려고 했는데, 지인의 강력한 권유도 있고 해서 여기 딱 한 군데만 이력서 넣어보자 하고 지원했는데 사무총장이 돼버렸네요.(웃음) 재단에 와서 보니 오래 전부터 제가 동경해온 커뮤니티 문화가 있는 거예요. 지금 막 유행하는 인큐베이팅, 사회적기업,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창업대출) 같은 모델들을 진작부터 시작했더라고. 그래서 참 잘 왔다 이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어요.

듣기로 굉장히 깐깐한 검증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되셨다고요.

이번에 처음 경선식으로 진행했다고 해요. 제가 공채 프로세스를 밟은 첫 케이스인 거죠.(웃음) 과정이 터프하긴 했어요. 생전 처음으로 자기소개 글을 써봤고요, 레퍼런스 체크도 4명이나 거쳤습니다. 거기에다 20여년 만에 직접 프레젠테이션도 했고요.(웃음) 어느 조직이든 성년쯤 되면 바깥에서 역량 있는 분들을 모시는 것도 좋지만, 내부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외부에서 왔지만 아름다운재단의 열린 시스템을 만드는 시도로써 의미가 있다고 봐요.

더운 날씨에 옥상에서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권찬 총장과 대화를 이어갔다. 사진: 서영길(더피알)

더운 날씨에 옥상에서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권찬 총장과 대화를 이어갔다. 사진: 서영길(더피알)

인터뷰 전 편집국 기자들에 아름다운재단하면 뭐가 생각나느냐 물었는데 대개 ‘좋은 일 하는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 등을 이야기하더라고요. 나눔에 대한 참여를 독려하는 차원에서라도 재단의 존재감이 좀 더 드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펀딩을 받는 NGO 대부분이 늘 투명성과 신뢰에 대해서 고민해요. 그건 선진국도 마찬가지에요. NGO 활동을 하면서 사실 백만원, 이백만원이 모자를 때가 있고 천만원, 이천만원이면 꽤 지속가능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조달하기가 참 어려워요. 사실 정부도 그렇고 가족이나 지인들도 NGO 한다고 하면 누가 도와주고 했나요?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아름다운재단은 지난 18년 간 공동체의 파트너들과 단체들이 성장하도록 돕는 방법을 고민해 왔어요. 지금 로컬에 300개가 넘는 파트너 NGO들이 있어요. 그 동안엔 철저히 사업 중심으로 재단이 운영돼 왔는데, 이제는 그런 훌륭한 DNA를 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권 총장은 기업 홍보맨 출신이다. 삼성 에버랜드 홍보팀장과 한국MS 커뮤니케이션 총괄이사 등을 지냈다. MS에서 사회공헌의 맛을 안 뒤로 NGO 분야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아름다운재단이 NGO로서 이상적 모델을 갖추고 있다”면서도 “지금은 홍보인 특유의 멀티 기능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무엇보다 내부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름다운재단에 출근하신 지 한 달 정도 되셨는데요. 외부자 시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보셨을 때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요.

어떤 곳은 자기 조직의 규모, 인력만 키우잖아요. 근데 와서 보니 여기는 정말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브랜드 파워 때문에 최소 몇백명은 되겠다 싶었는데 웬걸요, 50명 밖에 안 되는 거야. 그걸 보고 이 조직이 쉬어가게끔 하는 미션을 받았어요. 사업적으로 드라이브는 걸되 몇 가지 멀티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저는 과거 기업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내부 고객 만족이 베스트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름다운재단은 NGO의 사명감 때문인지 너무 강직한 느낌이에요. 강직한 것만 계속 요청하다 보면 경직될 가능성이 있어요.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진짜로 그렇습니다. 강직과 경직 사이의 조절이 필요한데 제가 그런 이퀄라이징(equalizing) 역할을 하려 해요. 홍보인 출신들이 또 멀티 기능은 잘 하잖습니까.(웃음) 운 좋게도 아름다운재단이 제 커리어 톱니바퀴의 베스트 핏(fit) 같은 느낌이 들어요.(웃음)

권찬 총장은 인터뷰 도중 "이건 꼭 자랑하고 싶다"며 첫 출근날 직원들에게 선물 받은 현수막을 들어보였다. 펼치는 데 장혜윤 간사가 도움을 줬다. 사진: 서영길(더피알)

권찬 총장은 인터뷰 도중 “이건 꼭 자랑하고 싶다”며 첫 출근날 직원들에게 선물 받은 현수막을 들어보였다. 펼치는 데 장혜윤 간사가 도움을 줬다. 사진: 서영길(더피알)

조직문화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요.

수다 떨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세상을 변화하는 부분들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영리 기업은 절대 직원들의 시간을 100% 채우지 않아요. 왜냐? 크리에이티브가 들어설 자리가 없으니까. 근데 비영리 기업은 너무 일만 하려고 해요. 직원 타임스케줄을 보면 100%가 다 짜여 있어요. 작년에 하던 일도 다 하려 하고, 올해 새로 계획된 것도 무조건 하자는 생각 속에서 크리에이티브가 끼어들 틈이 있겠어요? 그래서 앞으로 최소한 10%는 자유롭게 사고하는 쪽으로 여유를 둘 겁니다. 멈춰야 멀리 보인다고 하잖아요.

비영리 공익재단만큼 퍼블릭 릴레이션스(Public Relations)의 본질에 신경 써야 하는 곳이 또 없다고 생각됩니다. 재단의 ‘관계 자산’을 늘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까요.

사실 충성도는 감시에서 나와요. 그냥 좋은 메시지만 일방적으로 가지고 갈 때는 절대 충성도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자들은 로열티가 상당히 강한데요, 그 이유는 의심(?)이 많아 수시로 질문하고 직접 찾아오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저희 직원들(활동가)도 한 명 한 명의 기부자들을 찾아가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소통의 기본이 잘 돼 있구나를 느껴요. 이런 활동을 계속 가져가되, 좀 더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으로 시스템화할 예정입니다.

요즘은 국내외 NGO나 공익재단도 디지털을 활용해 젊은층 대상 소통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합니다. 아름다운재단도 계획이 있나요.

온라인과 디지털, 소셜미디어 등을 이용해 사회 사업(social work)의 본질에 대해서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소셜이란 플랫폼을 타고 디지털 시대를 사는 분들 속으로 들어가려면 가장 쉬운 방법이 광고잖아요. 노출도를 높이려면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고, 또 반복적이어야 합니다. 타이밍을 뚫고 들어가려면 대기업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재단이 사업에 집중하고 디지털적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실패사례, 실패경험이 많지 않다는 건 제 입장에서 기회가 크다고 봅니다. 주변의 지인, 선후배 중에서 워낙 훌륭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온라인 활동을 통해 아름다운재단의 리마인딩, 재단과 연계할 수 있는 메시지를 놓을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나갈 생각입니다.

아름다운재단하면 아직도 창립자인 박원순 서울시장 그림자가 많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어느 측면에선 정치적 프레임으로 재단되어지기도 하고요.

그런 시각이나 지적,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 색깔이 있는 곳이었다면 제가 여기 안 왔겠죠. 친구들이 제 성격 깐깐한 거 정말 잘 알거든요? 여길 선택했다고 하니 ‘뭐든 찬이가 미리 다 검증했겠구나’ 하고 믿는 거예요.(웃음) 물론 박원순 시장께서 아름다운재단 창립자로서 초반에 좋은 기부의 토양을 인큐베이팅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정치권으로 가신 이후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아름다운가게와도 커넥션이 거의 없어요. 브랜드만 공유할 뿐 완전한 독립법인이니까요.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아름다운재단 총장 됐다고 하니까 얼마 전 지인이 이만~큼 기부품을 전달해 주는 거예요. 차마 ‘아름다운가게는 내 소관 아니야’라고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제가 직접 아름다운가게에 전화해서 물건 픽업을 문의했는데 그냥 알아서 가지고 오시면 된다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그 더운 날에 팔 걷어붙이고 땀 뻘뻘 흘려가면서 짐 싣고 나르고 했어요.(웃음)

사진 : 서영길(더피알)

사회가 팍팍해지면서 기업의 사회공헌도 점점 위축되는 느낌입니다. 가치소비, 나눔활동 등에 대한 말은 많은데 전통적 사회공헌, CSR에 대한 관심은 예전보다 훨씬 덜한 것 같아요.

요즘 CSR이 주목받기가 힘든 게 경영 상황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에요. 기업이 안정궤도에 있으면 CSR 출신들이 꽤 잘 나갑니다. 시장에서 이미지 싸움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좀처럼 불경기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굴뚝과 디지털의 싸움이 계속되면서 조직 역량을 전부 비즈니스에만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일단 생존은 해야 하니까요. 당장 내년도 예측이 안 되는 시대적 환경이 CSR을 돌아볼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아요.

올해가 딱 절반 남았습니다.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하는 하반기에 염두에 두는 점이 있다면.

당장 7월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주기를 맞아요. 김군자 할머니는 정말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모진 삶을 살면서 모은 5000만원을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우는 사람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하셨어요. 그게 아름다운재단 첫 기금이었어요. 지금도 살아계셨다면 가서 만나 뵙고 아양이라도 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퇴촌 추모공원에 가서 할머니를 기념하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저부터 조용히 갔다 오려고요.

마지막으로 아름다운재단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포부 한 말씀 해주시죠.

아직까지 우리사회도 그렇고 NGO 쪽도 손에 잡히는 것들을 보여 달라고 요구해요. 많은 분들이 엑셀 안의 숫자를 갖고 NGO를 평가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프트웨어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저의 장난끼가 아름다운재단의 크리에이티브와 만난다면 한국 뿐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선례가 될 수 있을 만한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웃음)

마지막 인사까지 하고 난 뒤에 권 총장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돌려 세웠다.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으로서가 아닌 ‘홍보 선배’ 입장에서다.

그는 “요즘 홍보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햇빛 쨍쨍할 땐 조직도 홍보의 의미, 홍보인의 가치에 대해서 잊어버리지만 어디선가는 반드시 누군가는 인정하고 있으니 본질을 잃지 말고 열심히 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제 본업은 NGO 리더가 됐지만 홍보 후배들이 찾아오면 언제든지 선배로서 소주 놓고 대화하는 걸 환영하겠습니다. 이 말 더피알에서 꼭 전해주세요.”

 

글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ㅣ사진 더피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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