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위한 주요한 동력으로, 사회의 다양한 문제해결, 정부의 공공재 공급의 보충적 역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의 옹호, 공론장과 사회적 자본 창출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대부분 비영리기반의 시민사회단체 공익활동가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어 지속가능한 공익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이들의 소진을 예방하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공익활동가 쉼 지원사업은 활동과 삶의 조화를 위한 쉼 활동 지원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익활동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지원사업입니다.

이 글은 2019 공익활동가쉼지원사업에 선정된 [인권교육센터 들] 정주연님의 후기입니다.

혼자 지내게 된다는 설레임

한때 내 별칭이 ‘로마’였던 적이 있다. ‘모든 길은 로 마로 통한다’는 말에서 유래했던 별칭으로 지인들이 나를 통하면 모르던 사이도 다 이어진다고 해서 붙여준 것이다. 그만큼 사람 좋아했고, 일 벌이기 좋아했던 내가 어느덧 활동 연차가 길어지고, 나이도 중년을 훌쩍 넘어서니 심신이 지쳐왔다. 사람과 만나고 변화를 일구려는 인권활동가의 길이 의미 있고 보람차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에너지의 고갈을 가져왔던 것 같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 속에서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나의 관심은 온통 나의 활동이거나 나의 주변인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2019년에 안식년을 맞이하여 그런 내게 오롯한 혼자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열망은 컸지만 익숙함이란 참으로 떨쳐내기 힘든 것인지라 나의 신경 레이더는 늘 나의 활동이거나 주변사람들로 맞춰졌다. 안식년을 맞아 여성주의 타로카드를 배우기 시작하며 나 자신을 잊고 살아온 나를 또렷이 마주하게 되었다. 타로는 질문을 구성해야 카드가 답을 주는데, 내 질문은 너무 허공에 떠있거나 나와 직접 관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이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인지, 궁금한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심각했다. 텅빈 것 같은 자아를 움켜쥐고…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 는 말을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이때 만난 아름다운재단의 공익활동가쉼지원사업은 내게 혼자서 지낼 수 있다는 설레임을 선사해주었다. 얼마만인가.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도 바빴지만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많아서 돌봄에 지친 내게 ‘나를 위한, 나만의, 나 자체로서’ 지낸다 생각하니 떠나기도 전부터 마음이 달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떠날 수 있을까? 프로젝트는 선정되었고 지원도 받았는데, 여전히 발목을 잡는 것들.. 연로한 엄마의 수술, 그리고 딸이 곁에 있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잡았던 일정을 우선 한차례 미뤘지만, 결국 나는 10월 2일 한국을 떠나 영국의 소도시 요크로 향했다. gogo~~쓩쓩~~

길에서 되찾은 나

길을 걷는 뒷모습

걷고  <정주연 제공>

또 걷고, 걷는 뒷모습

또 걷고, <정주연 제공>

황갈색의 헤더. 거친 바람에도 잘 견디는 헤더꽃. 영국의 강인한 여성들의 이름도 헤더~ &lt;정주연 제공&gt;

황갈색의 헤더. 거친 바람에도 잘 견디는 헤더꽃. 영국의 강인한 여성들의 이름도 헤더~ <정주연 제공>


길 위를 걸으며 희망을 써내려간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그녀의 책 <길 위의 인생>에서 “우리 각자의 가슴속에는 보라색모터사이클이 하나씩 있다. 우리는 그저 그걸 찾아내서 타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가 바로 걷기라고 역설한다.

요크에서 지낸 나날은 매일 매일이 이유도 목적도 없는 걷기의 일상이었다. 처음의 계획도 여행에 뜻이 있었다기보다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 지내며 걷기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비워진 마음자리에 새로운 사색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직선의 길로 구획된 내 고장 같지 않게, 요크에서 마주한 거리는 자연의 펼쳐짐따라 구부러지고 이어져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곤 했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음도 길 모양처럼 곡선으로 유연해져갔다. 마주치는 풍경과 간간히 마주쳐오는 사람들의 눈인사가 오히려 가까운 관계들보다 훨씬 큰 위로를 내게 건네는 것 같았다.

오늘은 동네탐방을, 내일은 성곽길을, 모레는 강변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아담하고 안온함이 느껴지는 카페를 발견하면 발을 들여 차 한잔 하고 쉬어갔다. 지나치다 오래된 서점을 발견해서 들어가면 폴폴 피어나는 묵은 책의 냄새. 청계천의 어느 고서점을 떠오르게 하는 그곳에서 낯섬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끼며 책장을 넘겼던 기억들이 벌써 그립다.

시일이 지나며 들판이 광활한 요크셔지방에 왔으니 더 멀리 나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미니버스 투어로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이 왜 이곳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실감하는 풍광과 마주하기도 했다. 그날, 삼킬 듯이 휘몰아치던 바람에 몸을 가눌 수 없었지만, 그 바람을 따라 들판을 달리는 말처럼 이리로 저리로 누비고 다녔다. 한창때는 보랏빛갈이 고운 헤더꽃들이 가을이 깊어지며 갈색으로 변해져 황량함을 더했지만, 그 황량함의 거친 풍경을 뛰어 다니고 나니 가슴속에서 박하향이 터지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멀리 서울에 두고온 나의 인연과 생활이 아득해지며 비로소 ‘나’와 만났다. 그렇게 그립던 ‘나’. ‘아, 나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 나였구나.’ 탄성이 터져나오는 시간을 보내고 오니 마치 오랜 명상 끝에 얼굴이 해맑아지듯 나의 굳었던 표정들도 풀어졌다. 처음 왔을 때의 억지 웃음의 인증샷과 달리 이날부터 찍은 사진에선 환한 미소가 저절로 퍼져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만일 마지막 순간에 포기했다면.. 이런 시간은 없었을 것을 생각하니 오싹하고,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길을 나선 내가 대견했다.

하늘에도, 길에도, 창가에도 온통 무지개 세상~

길을 걷다 자주 만났던 내 동심의 친구, 무지개~  &lt;정주연 제공&gt;

길을 걷다 자주 만났던 내 동심의 친구, 무지개~  <정주연 제공>

걷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일이다. 새로운 세상은 장소성으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다른 생각, 다른 꿈, 희망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요크의 길들을 걸으며 제일 자주 만났던 것은 무지개였다. 광활한 들판으로 나갔던 날에는 무려 무지개를 하루 동안 여섯 번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도시에선 무지개의 포물선 모양에 어느 부분만을 살짝 보게 되는데, 요크에서는 들판이 넓다보니 무지개의 시작점과 끝점을 모두 보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색상이 고와서도 무지개가 좋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렇게 다양한 색이 어우러져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무지개는 인권운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하늘의 무지개 만큼이나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은 창가에 드리운 무지개 깃발, 그리고 차별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무지개 선언.

“불은 차별하지 않는다. 우리 역시 그렇다.”라고 적힌 차량 &lt;정주연 제공&gt;

“불은 차별하지 않는다. 우리 역시 그렇다.” <정주연 제공>

창에 걸린 무지개 깃발. 이곳에선 흔한 풍경. &lt;정주연 제공&gt;

창에 걸린 무지개 깃발. 이곳에선 흔한 풍경. <정주연 제공>

하루는 길을 걷다 무지개빛깔이 고운 소방차를 보았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Fire doesn’t discriminate. Neither do we.”(불은 차별하지 않는다. 우리 역시 그렇다.)

동시대의 내 고향땅을 떠올리니 부러운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냥 부러워하고 서 있을 순 없다. 일정을 끝나면 나는 돌아갈 것이고, 안식년을 끝내면 나의 활동에 복귀할 테이니… 이곳에서 본 것, 느낀 것, 나를 찾았던 시간을 통해 얻은 새로운 기운들을 잘 품어두었다가 그때 요긴하게 쓰리라.

마음에 품은 무지개를 안고 다시 돌아왔다.

글, 사진 ㅣ 인권교육센터 들[(www.hrecenter-dl.org)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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