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월요일

여기는 몽골 울란바타르 11구역입니다. 따르릉.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따뜻한 목소리. “혹시 19일 면접에 오실 수 있으신가요?”
기다리던 전화. 이 순간, 아름다운재단으로 가는 ‘급귀국 길’이 시작됩니다.

계약 일주일 조기종료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함께 일하던 몽골 직원분들께 이별을 고합니다.
행운을 빌어주는 동료들.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은 해도해도 쉬워지지 않습니다.

하필이면 19일 이전 도착 비행기 모두 만석.
17일 자정 비행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일단 기다립니다.
몽골에서 체류하다 출국하려면 출국비자가 필요합니다.
아앗. 출국비자 날짜가 18일 부터라
17일 표가 있어도 못 나갈 상황입니다.
급행으로 출국비자를 재발급 받고
15일 부터 출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 만에 1년 간의 살림살이를 정리하는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최소한으로만 살리라 매번 결심하지만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양입니다.

부랴부랴 박스를 구하고 짐을 싸고 운송회사 선박화물로 보냅니다.

 

3월 16일 수요일

마지막 출근. 작별인사를 나누며 눈물이 찔끔합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몽골이라는 나라가 이제는 아주 애틋해져 버렸습니다.
몽골에서 신세졌던 지인들께 감사와 이별전화를 드렸습니다. 귀국길이 조금씩 실감납니다.

3월 17일 목요일

비행기 출발 6시간 전. 항공사에서 걸려온 전화. 

“오늘 기상이 안 좋아 새벽 1시 30분으로 지연되었습니다.” 
하루종일 강풍이 불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연되었습니다.
변덕스러운 기상으로 워낙 항공기 결항이나 지연이 많은 몽골이라
놀랍지 않습니다.
비행기 바퀴가 안으로 쑥 들어가야 비로소
‘아, 뜨는구나’ 합니다.

밤 11시 울란바타르 칭기스칸 국제공항. 
배웅나온 지인들께 남은 투그릭(몽골 화폐)을 몽땅 털어
커피 한 잔씩 쏘았습니다.
다행히 비행기가 지연된 시간에 제대로 뜬다는 소식. 
무사히 입국장을 통과했습니다. 안녕, 몽골.

3월 18일 금요일

새벽 5시 인천국제공항. 안녕 한국.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 화사한 한국의 여성분들.
자기반성을 대충 해봐도 결론은 ‘미장원부터 가자.’
미장원을 다녀와서 하루종일 몽롱한 상태로 디데이를 기다립니다.

3월 19일 토요일 D-Day

아직도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몽골의 긴 겨울 내내 몸의 일부와도 같았던 내복과 털부츠를 벗어 던지고
오랜만에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으니 어찌나 어색한지 모릅니다.

오후 2시 면접. 최대한 멀쩡하게 보이고자 노력했으나 비몽사몽이었나봅니다. 
다행히 큰 사고없이 마무리 되었으나, 지나고 보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3월 21일 월요일

저녁 K문고 광화문점. 무심코 고개를 들었더니 눈 앞으로 스쳐지나가는 낯설지 않은 얼굴.
‘앗, 면접관님?!’ 알고보니 모금배분국 H간사님이셨습니다. 복선, 길조, 혹은 행운의 마스코트?!

3월 22일 화요일

최종결과발표날.친구가 오전 10시 부터 10초에 한 번씩 재단 웹페이지를 새로고침 합니다.
그러기를 10여 분. “꺄악!” 
본인이 세계 최초로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며 기뻐합니다.

3월 23일 수요일 부터 4월 3일 일요일

첫 출근까지 남은 시간 열흘.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에 내려가 비로소 귀국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가지고 갈 짐을 쌉니다.
5일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집 구하기 시작합니다. 감사하게도 두 번의 시도 끝에 적당한 집을 구했습니다.
집 대청소를 하고, 부산에서 용달차로 올라온 짐을 받고 정리하다 보니,
어느 새 첫 출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옵니다.

4월 4일 월요일

두둥. 아름다운재단 첫 출근날입니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 몽골에서 부터 정신없이 달려온 가회동 오는 길.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무언가에 홀렸던 걸까요.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하루하루 찾아보려 합니다.
보물찾기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연구교육국 김혜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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