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광고로 2관왕을 수상한 이 캠페인은 무엇일까요?

영상 속 출연인물은 단 세 명입니다. 내용도 단순합니다. 사진을 보는 딸의 반응이 전부입니다. 이 심플한 영상이 2019년 런칭 이후 국내외에서 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영상의 정체는 아름다운재단의 공익광고 ‘기억사진관’입니다. 치매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공익캠페인 <이름을 잊어도>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죠.

– 영상명 : 기억사진관
– 기획 : 아름다운재단
– 제작 : 대홍기획
– 내용 :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가 어린시절 딸에 대한 기억을 회고
– 수상내역 :
 1) 2019 올해의 광고상 공익캠페인 부문 금상
 2) 2020 Asia-Pacific Stevie Awards 비영리기구/NGO 이벤트 혁신상 은상
 3) 2020 대한민국 광고대상 공익부문 은상 

공익단체가 광고영상으로 상을 받았다니 의아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공익단체 역시 사회적 의제를 알리고, 해결하기 위해 마케팅과 브랜딩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캠페인 페이지를 기획하고, 좋은 카피를 만들어 이슈를 알리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거죠. 사람들의 마음에 닿지 못하면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으니까요.

‘기억사진관’ 역시 치매를 다룬 보통의 공익광고와 다른 기획이 이뤄졌습니다. 치매 증상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았고, 아픈 현실을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한 가족이 품은 평범한 이야기로 공감을 이끌어냈죠. 치매라는 낯선 주제를 보편적인 가족의 이야기로 끌어낸 이지희 간사를 통해 공익캠페인 기획 과정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아름다운재단 1%나눔팀 이지희 간사

아름다운재단 1%나눔팀 이지희 간사

 

“수상도 기쁘지만 매일 앞으로 나아가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기억사진관’으로 벌써 두 번째 상을 받으셨어요. 영상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치매 가정을 지원하기 위해 ‘이름을 잊어도’라는 캠페인을 이어오고 있었어요. 치매 당사자가 이름을 잊더라도, 그 존재는 변함없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알리는 캠페인인데요. 영상은 그 캠페인의 연장선상에서 기획했습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딸의 어린시절에 대해 들려준다면, 그 사랑을 더욱 느낄 수 있을거란 생각이었죠. 사진을 액자에 담아 걸었고, 당사자가 사진을 지나칠때마다 그에 맞는 추억들을 어머니의 음성으로 들려드렸어요.

Q. 영상을 보면 마치 미리님 어린시절 앨범을 옆에서 같이 보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A. 보통 앨범을 보면서 엄마한테 우리는 ‘이거 어디서 찍은거야?’, ‘이건 무슨 일이었어?’라고 물어볼 때가 있잖아요. 그럼 엄마는 ‘너 이때는 이랬고, 저때는 저랬다’고 척척 대답해주고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증거죠. 기억을 잃어도, 이름을 잊어도,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시간은 변함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Q. 영상을 보는 내내 엄마의 사랑이 느껴져서 정말 펑펑 울었어요. 제 옆의 동료들도요. 당사자인 미리님도 영상에서 많이 우셨는데, 촬영 이후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셨나요?

A. 본인도 몰랐던 어린시절 이야기라 더욱 감동 받았다고 전해주셨어요. 영상 마지막에 보면 ‘엄마가 너 두고는 눈 못 감는다’, ‘미리는 밤늦게라도 나 자는거 보고가’ 이런 이야기도 나와요. 어머님이 평소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줄은 몰랐다고 해요. 기억사진관을 통해서 본인도 몰랐던 엄마 이야기를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해주셨고요.

<기억사진관> 속 한 장면

<기억사진관> 속 한 장면

Q. 치매 당사인 정숙님이 아니라 미리님에게 집중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치매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치매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주시는 분들 중에서도 ‘삼촌이 치매입니다’, ‘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남겨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질병을 넘어서서 치매를 마주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죠. 저도 치매로 투병중인 할머니가 있는데 딸인 엄마에게 ‘언니’라고 불렀을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약을 꾸준히 드셔서 상황이 많이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속상할 때가 많고요. 치매로 투병중인 어르신들을 돌보는 가족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이지희 간사의 할머님이 쓴 글씨

이지희 간사의 할머님이 쓴 글씨

“안 되는게 어딨겠어요. 될 때까지 부딪히면 되는거죠.”

Q. 실제 사연이 주는 감동이 크지만 당사자들을 섭외하는게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당사자들을 만나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A. 맞아요. 치매 캠페인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당사자 섭외였어요. 투병 사실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섭외가 쉽지 않았거든요. 아름다운재단 사업 협력 단체를 통해서 알아봤지만 연결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어르신들의 동선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서울 지역의 치매 공공기관에 무작정 연락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가정을 노출한다는건 쉽게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그러다가 2018년 12월에 방영한 ‘KBS 거리의 만찬’을 보게 됐는데요. ‘기억사진관’에 출연하신 미리님이 나오는 거예요. 임신과 육아, 간병까지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겪고 있지만,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지금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방송을 보는 내내 미리님의 이야기를 캠페인 페이지에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작가님을 통해 연락드리고, 찾아뵈었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이름을 잊어도> 캠페인 페이지

<이름을 잊어도> 캠페인 페이지


Q. 어머, 그렇게 연이 닿은 사이시군요. 영상은 얼굴이 나와서 출연 결심이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수락하신 걸까요?

A. 아름다운재단과의 신뢰 덕분인지 허락해주셨어요. 본인과 같은 상황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해주신것 같고요. 미리님도 처음에는 치매 어르신을 돕는 보조기기가 있다는 것도, 또 보조기기를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는 것도 모르셨다고 해요. 그래서 홀로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있었고요.

Q. 미리님처럼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수원삼성 블루윙즈 축구단도 치매 어르신 손글씨 캠페인에 2년째 함께 참여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이벤트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수원삼성 축구단과는 2019년부터 함께 하고 있는데요. 올해도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에 맞춰 선수들이 치매 어르신들의 손글씨가 담긴 유니폼을 직접 입고 뛰었어요. 그 날 입은 유니폼은 경매를 통해 판매하고, 수익금을 전액 기부해주셨죠. 유니폼은 1분만에 매진되었답니다.

치매 어르신의 손글씨가 마킹된 유니폼

치매 어르신의 손글씨가 마킹된 유니폼

 

Q. 당일 뉴스에도 나왔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손글씨 유니폼 이벤트 기획은 어떻게 이뤄진건가요?

A. 초기 기획은 이름이 없는 유니폼이었어요. 선수 등판에 있는 이름은 선수에게 너무나 중요하잖아요. 멀리서도 선수의 존재를 알려주는 거니까요. 근데 등판에 이름이 없다고 해서 선수의 실력이나 명예가 사라질까요? 그건 아니거든요. 정체성은 변함없이 그자리에 있죠. 그 의미를 담아 2018년에 야구단 여섯 곳에 무기명 유니폼을 제안했습니다. 근데 여기서부터 고난이 시작됐죠.

Q. 설마 거절하셨나요?

A. 맞아요. 규정이나 스폰서 문제로 할 수 없다고 모두 거절하시더라고요. 그래서 2019년에는 어르신들의 손글씨로 이름을 새겨넣는 유니폼으로 전환했고,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 앞뒤로 경기가 잡힌 축구단 3곳에 제안했어요. 최종적으로 수원삼성에서 관심을 보여주셨고 진행하게 된 거죠.

2018년까지 미진행 아이디어로 머물러 있던 유니폼 이벤트

2018년까지 미진행 아이디어로 머물러 있던 유니폼 이벤트

 

Q. 이 정도면 집념의 간사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방송에서 처음 본 사람도 찾아가고, 축구 구단도 찾아가고, 거절당해도 또 부딪히고… 쉽지 않은 과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A. 우리가 주목한 이슈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어요. 그 비율이 비슷해서인지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속한 팀도 ‘우선 해 본다’는 DNA가 있어요. 해 보고 안 되면 또 다시 해 보고 그렇게 방향을 잡아가고 있죠.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니폼 이벤트 진행이 불확실했어요. 그럴 때마다 협력사업팀에서 너무 걱정말라고 다독여 주시고 여러 방법을 제안해 주셨죠. 팀 이름 그대로 정말 협력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한 멋진 시너지를 발휘했죠. 스스로 만들어 내는 원동력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팀들의 도움과 응원이 없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Q. 좋은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어쩌면 모든 직장인의 로망 아닐까요? 현재 공익캠페인 기획자로서의 삶에 어느정도 만족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막연하게 어릴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요. ‘평생 일을 해야 하는데 어느 곳에 속해서 내 노동력을 쓸까?’ 늘 고민했죠.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냥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알게 된게 비영리 섹터였어요. 어느 조직에서 일하든 세상의 좋은 부품으로 쓰이고 싶어요. 사실 모두가 다 덩치있는 부품으로 살 수는 없잖아요.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부품도 필요하고요. 저는 작지만, 단단하고 좋은 부품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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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인상깊게 본 책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기획은 문제가 되는 비루한 현실과 열망하는 기대사이의 간격을 줄여주기 위해 많은 사람이 고안해 낸 생각 방식입니다.”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변화, 그 격차를 메우는 캠페인을 보며 해당 대목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치매 가정의 어려움, 그리고 지금 사랑할 시간의 중요성…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그간 고군분투해온 이지희 간사의 노력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치매라는 낯선 주제를 접하게 됐으니까요. 좋은 부품이 되겠다는 소박한 그녀의 바람은, 어쩌면 이미 이뤄진게 아닐까요? 조심스러운 확신을 건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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