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 드러나듯이 공익단체의 활동에 ‘스폰서’가 되기위한 지원사업입니다. 시민사회의 시의성있는 단기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2020년 3월 ‘스폰서 지원사업’의 선정단체인 환경정의에서 활동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 아래 활동은 코로나19 방역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지키며 진행되었습니다.

영주댐 건설과 함께 쫓겨난 평은면 사람들의 11년 후 이야기

성장 중심의 국가주도 개발정책은 개발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과 개발에 따른 부담을 떠안은 지역주민 사이에 불평등을 발생시켰고, 개발정책의 계획 수립 과정에서부터 실행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공공의 참여가 배제되면서 심각한 사회갈들을 야기시켜 왔습니다. 개발정책으로 인한 지역 간, 세대 간 불평등과 사회갈등을 줄이고 환경훼손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책수립 과정에서부터 균형 잡힌 정보의 제공과 충분한 검토와 숙의과정을 거친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는 점은 그동안의 수많은 개발사업을 겪으면서 얻은 뼈아픈 교훈이었습니다. 환경정의연구소는 자연환경의 생태적 가치와 지역주민의 삶에 대한 고려 없이 개발 사업이 어떻게 추진되어 왔는지 영주댐 개발 지역 주민을 직접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사라진 댐 건설 계획, 4대강사업으로 부활

처음 댐 건설 계획의 시작은 1999년 송리원 다목적댐 건설 계획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낙동강 하류 수질을 2등급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환경개선용수 공급을 위해 ‘송리원댐’이라는 이름으로 계획되었습니다. 그러나 계획한 낙동강 하류 수질 개선을 위해서 댐을 개발하더라도 오염배출량이 획기적으로 감소하지 않는 한 수자원이 모두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하류 수질의 개선은 어려워보였습니다. 이렇게 사라지는가 싶었던 댐 건설계획은 ‘4대강 마스터플랜’에 포함되면서 2009년 ‘영주댐’으로 이름을 바꿔 부활하였습니다.

물문화관에서 바라본 영주댐 사진

물문화관에서 바라본 영주댐

영주댐 건설 이후 변화된 내성천 식생 설명 사진

영주댐 건설 이후 변화된 내성천 식생 설명

400년 이상 된 문화유산 사라져

댐 건설 계획으로 터전을 잃게 된 평은면 마을주민 500여 세대는 이주를 결정하였습니다.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유교문화와 관련 있는 중요 지정문화재 15점이 해체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장석우 가옥, 장씨고택, 이산서원 등이 해체되었고 경북 북부지역 최초 교회인 내매교회와 교회에서 설립한 영주지역 최초의 사립학교인 사립기독내명학교도 해체되었습니다. 영주댐 건설로 인하여 문화적 자산이 그 본래 모습을 잃었을 뿐 아니라 400년 이상 전통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전승해온 문화적 자산이 사라지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마을 주민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역사성을 부정한 보상비

댐 건설이 시작되자 수자원공사(이하 수공)에서는 내성천 수몰예정지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하고 보상을 시작했습니다. 400년이 넘게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농촌의 공동체는 보상 앞에 형편없이 깨졌고, 보상금이라는 작은 돌멩이는 가족 간에도 파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수몰예정지에 있던 내매교회는 1909년에 설립된 사립기독내명학교(기독교사적지)를 품은 역사적인 건물이었지만 수자원공사는 건물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오래된 건물이니 감가상각이라 2천만원을 보상금으로 정했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의 자리에 이사해 건물을 복원하고 나니 교회는 오히려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보상금 때문에 가족해체를 겪은 사례도 많습니다. 어느 노부부는 보상금을 받아 자녀들에게 나눠주고 나서 아무도 노부부를 모시지 않아서 안타까운 선택을 했고, 수공이 제공해주는 이주단지에 입주하려고 준비하던 젊은 부부는 이주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어린 자녀들을 남기고 세상과의 작별을 선택한 경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해체되는 내매교회 사진

해체되는 내매교회 (사진제공 : 내매교회)

이전복원한 내매교회 사진

이전복원한 내매교회 (사진제공 : 내매교회)

수공의 보상금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간 마을 공동체를 깨지게 만들고, 가장 끈끈한 가족까지도 해체되게 만들었습니다. 댐 건설과 관련한 정보를 빨리 접한 사람들은 그나마 보상을 더 받을 수 있었지만, 나이 든 노인들은 적은 금액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몰지역 주민들은 이주단지 안에 있는 빌라에 세입자가 되거나, 운이 좋거나 땅이 조금 있다면 영주 시내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분들이 아스팔트로 가득한 시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온종일 텔레비전을 보거나 아파트 노인정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났던 수몰지역 주민들은 최근 다시 교회를 중심으로 출향민 모임을 시작하면서 사라진 공동체 문화가 회복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내매교회에서 만난 목사님은 보상을 둘러싼 가족 해체의 아픔은 자연을 죽이고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어둠의 힘 때문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미 수몰지에 대한 보상은 끝났지만 수몰 이후 주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려는 노력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하며, 개발로 인해 이주할 수 밖에 없다던 주민을 위해 공동체를 유지하고 삶의 근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독일이었다면 국립공원이 되었을 내성천

내성천은 한국에서 모래가 가장 발달한 강으로 주목받는 곳입니다. 영주댐 인근 무섬마을에서 만난 독일의 생태 전문가는 독일에 내성천이 있었다면 어쩌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것이라고 하며 아쉬워했습니다. 영주댐은 건설 계획 초기부터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과 생태 훼손에 대한 문제가 큰 개발사업이었습니다. 하천에 만들어 놓은 유사조절지는 물과 모래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유속이 빨라지고 모래 알갱이가 굵어지면서 과거 멸종위기종이 살던 내성천은 영주댐 건설 이후 생태계 변화와 녹조피해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정의연구소는 영주를 찾아 댐 개발 이후 지역사회와 내성천의 변화, 주민의 삶의 변화를 들어보았습니다. 수질개선용 댐이 정말 필요했을까? 개발정책 수립 당시로 돌아가 다시 질문한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개발이 이루어지는 현장의 환경파괴와 공동체 해체, 그리고 그 영향을 받는 주민의 삶의 문제까지 고려하는 개발계획에 대한 윤리적 접근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 [사업 발간물 다운로드] 영주댐 건설과정으로 보는 개발주의에 대한 생태적 회고

글/사진 환경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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