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은 뒤에도 사는 사람이 될 테야! 그런 뜻에서 신이 나에게 글을 쓰게 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자기를 발전시켜 가는 재능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 나는 글을 쓰고 있을 때면 모든 것을 떨쳐 버릴 수가 있어. 슬픔도 사라지고 용기가 솟아올라. 그러나 (그것이 큰 의문인데) 나는 앞으로 과연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을까? 1944.4.4. _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중

70여 년 전 아우슈비츠,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 안네 프랑크의 글이다. 안네의 훌륭한 글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울림을 주고 있다. 안네의 일기를 읽을 때 많은 부분에 밑줄을 쳤으나 ‘글을 쓰고 있을 때 슬픔이 사라지고 용기가 솟아올라’라는 문장이 크게 공감이 되어 따로 적어두었다.

어릴 적에 나는 글쓰기 숙제를 하면 선생님의 빨간  글씨와 밑줄로 뒤덮인 원고지를 돌려받아서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다. 친구들이 써낸 멋진 글을 읽을 때면 소심하게 손톱이나 뜯으며 ‘글쓰기는 재미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했다. 글쓰기에 대한 환상이나 소망 따위는 없었다. 그냥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읽은 책은 많다고 했던가. 새로운 책을 펼칠 때마다 크고 넓은 세계와 세상을 안내하는 멋진 글이 가득했다.

어떤 글은 내 머릿속 편견과 고집을 깨는 망치가 되기도 했고 어떤 글은 상처를 끌어안는 온기와 열기를 건네주기도 했다. 이렇듯 글이 가진 다양한 힘을 느낄수록 ‘나도 이런 힘을 키우고 싶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 일기와 습작, 블로그 등을 통해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던 생각들을 정리하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적으로 글 쓰는 시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글을 ‘잘’ 쓰기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래서 기생충 박사이자 날카롭고도 유쾌한 칼럼을 쓰는 ‘글쓰기 고수’ 서민 교수님의 글쓰기 강의를 무척이나 기다렸다. 강의를 듣고 나니 글쓰기에 대한 나의 간절함이나 노력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끄응….)

서민적글쓰기특강 - 잘쓰고싶당 포스트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4월 21일 봄날, 서민 교수님의 글쓰기 강의를 듣기 위해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이 모였다. 가장 먼저, 서민 교수님은 다양한 사례와 이미지를 통해 기부문화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재단 간사들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며 자료를 준비한 센스! 하트 뿅뿅!!!)

교수님은 엘론 머스크와 빌 게이츠와 같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따뜻한 마음은 왜 생길까?’라는 궁금함이 생겼다고 했다. 교수님은 가장 큰 이유로 ‘독서’를 꼽으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 사고의 폭을 넓히는 힘”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의 콤플렉스가 글쓰기의 기회’가 되었다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수님은 스스로 외모 콤플렉스로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래서 더욱 ‘책으로 떠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교수님은 글쓰기를 위한 좋은 방법으로 두 가지를 소개했다. 첫 번째는 일기 쓰기. 억지로 쓰는 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 많은 작가가 별도의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썼던 일기가 그 작가의 글쓰기 전부였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기에 무엇을 썼느냐 보다 어떻게 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는 독서감상문 쓰기. 책을 읽은 이후, 자기만의 감상 기록을 적어두었을 때 더욱 잘 기억하며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독서감상문은 블로그 콘텐츠를 채우는 수단으로도 좋으며 그해 몇 권을 읽었는지 집계하는 기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읽은 책을 기록하면 책을 더 읽고 싶은 동기가 생긴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글쓰기 강연 PPT를 보는 장면

교수님은 글을 잘 쓰면 좋은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첫 번째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다는 것. “전문가라서 책을 쓰지만 책을 쓰면 전문가가 됩니다.”라면서 실제로 기생충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에 대해 책을 썼던 서민 교수님에게 취재 및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는 사례를 들었다.

두 번째는 ‘잘 쓴 글’은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꼭 문학 분야가 아니어도 자기 전문 분야의 경험(과학, 법조계 등)을 토대로 좋은 글을 쓰는 많은 작가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교수님은 아름다운재단 간사들도 전문 분야와 기부에 대한 자기만의 글을 쓰고 책을 만들기를 바란다는 응원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글은 약자의 수단’이라는 것. 그 예로 소설 [도가니]가 유명해지고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실제로 형량을 조금 받았던 사람이 다시 형량을 더 받게 된 일을 이야기했다. 또한 일과 성희롱과 성추행을 고발하며 이에 맞서는 법을 써 놓은 책을 사례로 들기도 했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한권의 책이 될 때가 있으며 법과 언론이 강자 편이 되었을 때, 약자가 기댈 곳은 글 밖에 없다는 말을 전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의 억울함, 사회의 약한 부분을 알리는 것도 결국 글이 가진 힘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노트에 적어두었다. ‘막상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글 쓰려고 하지 말고 평소에 연습하자!’

서민 교수님은 여러 저서를 썼지만 스스로 ‘나는 왜 쓰레기 책만 쓰는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글을 너무 못 쓰니까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수술을 잘 하기 위해서 수술하는 것을 많이 봐야 하듯이,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봐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교수님은 서른 살까지 책을 거의 안 읽었다고 고백했다. 그 이후부터 글쓰기 지옥훈련으로 ‘한 달에 10권 읽기, 하루에 2편 블로그 글쓰기’를 해왔으며 글쓰기에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하다며 ‘독서’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책은 다른 책으로 향하는 창문이에요!”

열심히 강의하는 서민교수님

열정적으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민 교수님

꾸준하게, 매일 조금씩

웃음이 빵빵 터지던 강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Q&A 시간이 왔다. 글을 잘 쓰는 법을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서민 교수님은 대부분의 글쓰기 문제는 조급함에 있다는 것을 짚으며 ‘매일 조금씩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이전에 내가 쓴 글이 한심해 보일 때가 있다면 글 실력이 향상된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글쓰기 노트를 준비해서 항상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적는 것을 추천했다. 주제는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으니 사소한 소재일지라도 일단 글로 적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쓰세요!” 그리고 글을 쓸 때 정보 80% 유머 20%로 쓰기와 인용 글이나 자기 이야기 또는 충격적인 서론으로 글을 시작하는 것도 글쓰기 기술 중에 하나임을 알려줬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에게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저마다 전문 분야가 다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 널리 알리고 다양하게 글을 써주신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맺음으로 강의를 끝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짝짝짝짝!)

나는 서민 교수님이 자신의 상처로부터 글이 나온다는 말을 할 때 꽤 인상 깊었다. 그 이유는 안네 프랑크의 ‘나는 글을 쓰고 있을 때면 모든 것을 떨쳐 버릴 수가 있어. 슬픔도 사라지고 용기가 솟아올라’라는 글과 맥락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조정래 소설가의 글도 떠올랐다. 

우선 그 순서를 다독, 다상량, 다작으로 고치십시오. 그다음으로는 노력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입니다. 다독 4, 다상량 4, 다작 2의 비율이면 아주 좋습니다. 이미 좋다고 정평이 나 있는 작품을 많이 읽으십시오. 그다음에 읽은 시간만큼 그 작품에 대해서 이모저모 되작되작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p47

글을 무난하게 잘 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글을 물 흐르듯이, 그러면서 의미가 깊도록 쓰고 싶으면 많은 책을, 정신 모아, 유심히 읽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앞에서 몇 번씩 강조했던 말입니다. 남의 눈길에 끌리게, 남의 마음에 담기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p297

[황홀한 글감옥/조정래]

아무리 찾아봐도, 글을 잘 쓰게 하는 ‘고속도로’는 없다.
그저 꾸준하게, 매일 조금씩,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듯이 읽고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남의 눈길을 끄는, 마음에 담기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 없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본다.
그렇다. 꾸준히, 쓰고 싶다. 잘 쓰고 싶다.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글 | 장혜윤 간사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