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아동양육시설 퇴소거주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장학생을 만나보고 왔습니다.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매진하고 있는 정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맘이 들었습니다. 좋은 노래를 저만 감상하고 와서 못내 아쉽네요. 여러분, 정민의 이야기에 잠시 귀기울여 주세요.

 

정민(가명)은 학창시절 공부를 곧잘 했다. 복잡했던 가정 상황 때문에 초등학교 3,4 학년때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어린시절 받았던 영재교육 덕분인지 5학년때 학교에 복귀해 어렵지 않게 학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정민이 자란 양육시설에서는 성적이 우수한 남자 여자 각 1명에게 학원비를 지원해주었는데 그 대상이 되어 학원도 다닐 수 있었다.

정민이 중학교 3학년 때 시설로 찾아오신 아버지는 정민의 후원 통장에 잔액이 100만 원 정도가 있는 것을 알고 갑자기 원가정 복귀를 신청했다. 집도 연락처도 없던 아버지와 모텔에서 2달간을 전전하다 삼촌의 도움으로 다시 시설로 돌아왔다. 정민은 하마터면 중학교 졸업도 못할 뻔 했다고 이때를 회상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일을 계기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정민을 바라보는 주변 시선은 냉담했고 눈칫밥을 많이 먹어야했다. 정민에게 지원되던 모든 혜택이 차단되었고, 정민이 쓴 신청서로 외부 장학금이 선정 되면 다른 아이들이 장학금을 대신 받았다.

이른 나이의 사회생활

실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고3때 현장에 나가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당시 법적으로 퇴소해야하는 만 18세에 이르지 않았지만 내쫓기다시피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머무를 곳이 없어 퇴소한 형들 집을 돌아다니며 얹혀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회사에서 대학교 등록금을 지원해주기로 해 부산의 모대학에 입학해 한 학기를 다녔다. 하지만 처음 하는 사회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사회에서도 시설에서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결국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껴 회사를 그만뒀다. 대학생활도 자연스레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회사생활을 하며 벌어둔 1,000만원, 퇴소할 때 받았던 자립정착금 200만원, 후원통장에 있던 150만원. 이십대 초반의 철없던 정민은 갑자기 손에 들어온 큰돈과 여유 시간을 어찌할 줄 몰랐다. 오랫동안 공동생활에만 익숙한 탓에 도시가스비는 왜 내는지, 샴푸 가격이 얼만지도 몰랐고 자연히 경제관념이 없었다. 그 후 6개월간 1,000만원의 돈이 술값으로 날아갔다. 20살 어느 가을날, 그는 흥청망청 물 쓰듯 하던 돈이 똑 떨어져 통장 잔고가 20만원을 찍은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위기감이 몰려왔다. 
 

정민은 음악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앞길을 모색하던 정민은 모 4년제 국립대학에 자체시험 전형이 있다는 것을 알고 2달간 공부에 매진했다.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 사학과에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게 합격했다. 주변에서는 실업계 고등학교 나온 애가 일반고 아이들보다 더 대학을 잘 갔다며 놀랐다. 대학을 진학해 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며 장학금을 받고, 대학생 임대주택 지원을 받아 생활이 폈다. 1학년 때는 성적이 그저 그랬지만 2학년 때는 밤새워 공부도 해보고 성적도 3점 후반대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평온하던 시절은 갑작스러운 일을 계기로 급전환되었다.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기간, 정민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유언을 남기셨다. 할아버지는 생계유지 때문에 음악을 계속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셨다고 했다. 악기를 다루던 아버지도 적극 밀어주지 못한 것도 아쉽다고 하셨다.  

할어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음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들어왔다. 대대로 뮤지션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노래실력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던 정민은 학교를 휴학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 때가 23살 가을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음악

학교 앞 실용음악학원을 찾아가 수업을 받았다. 다행히 학원 선생님과는 마음이 잘 맞았고 정민과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오신 선생님은 정민의 상황과 마음을 잘 이해해주셨다. 공부도 공부지만 휴학 이후 모든 지원이 끊어졌기 때문에 정민은 이모의 소개로 거제도 조선소에 가 6개월간 일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정신없이 일하며 음악에 대한 꿈이 희미해져 가던 그때.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부산의 모 대학 실용음악학과에 지원서를 내 놓았으니 시험을 보라는 말씀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라는 선생님의 조언은 할아버지의 유언을 다시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고, 정민은 용기를 내어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했다. 정민은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2학년까지 국가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학교에서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수 없었다. 거제도에서 벌어두었던 돈으로 입학금을 냈고, 2학기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정민이 불러준 노래 ‘서른즈음에’ 악보

 

새로운 학교에서 1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던 24살 가을, 시설의 선생님이 아름다운재단 장학금에 지원해보라며 연락을 주셨다. 워낙 자신이 신청한 장학금을 다른 아이들이 받는 상황이 빈번했던지라 마음에 상처를 입어왔던 정민은 ‘이런 일로 다시 연락하지 말라‘며 모질게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은 지원 혜택이 많은 장학금을 정민이 놓치는 것이 아쉬워 다시 연락을 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면접심사에 참여했고 아름다운재단 장학생이 되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장학생이 안되었으면 아마 학자금 대출을 받았을 꺼에요”
아름다운재단 장학생으로 선정 되었을 때 소감을 묻자 정민이 이렇게 답했다.

등록금 이외에 장학생에게 지원되는 학업생활 유지비로는 필요했던 교재나 마이크도 사고, 공연 관람, 학원 수강 등을 위해 알뜰하게 썼다. 등록금 지원은 졸업학기인 이번 학기까지이지만, 내년에는 장학생 특전 중 하나인 자기계발프로젝트에 지원해 학점은행으로 학점을 쌓아 4년제 대학 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정민은 올 한해 아름다운재단 장학생 경상도지역 자치모임 회장을 맡았다.

“정보 공유가 잘 되면 좋겠어요. 장학생들이 활동에 적극적으로 잘 참여해 주면 좋을 것 같구요. 제주도 여름캠프는 너무 좋았어요. 그런 기회가 잘 없으니까”

꿈은 이루어지니까

간절히 원하고 두드리는 자에게 꿈은 ☆이루어지니까

 

정민은 지금 2개 실용음악학원에서 각각 주 3회씩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무대에 서고 싶었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조금 아쉽지만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실용음악을 하는 사람들 중 90%가 전공을 살리지 못한다고 하는데, 인기강사 정민의 경우 다른 학원에서도 섭외가 들어온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견디는 삶이었다면, 앞으로는 나아가는 삶이 되고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걸 계속 하고 싶구요. 힘들어도 재미있으니까요.”   


노래를 한 곡 청하자 정민이 좋아한다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악보를 꺼냈다. 이년 전부터 독학으로 배웠다는 건반 실력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정민의 감미로운 노래 소리가 이내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실력파 가수의 라이브를 혼자 듣는 느낌!! 

정민은 지금 25살 가을을 살고 있다. 서른 즈음에는 뭘 하며 살고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른 까지는 음악을 계속 할꺼에요. 그리고 아마 가정을 꾸리고 있겠죠?”

현실에 파묻혀 꿈을 잊고 사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찾아 매진하고 있는 정민이 대견했다. 찾아오는 길은 굽이굽이 험한 길이었으나, 앞으로는 그에게 탄탄대로가 열리기를,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열리기를 응원한다. 또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간절히 원하고 두드리는 자에게 꿈은 ☆이루어지니까. 

 


‘아동양육시설 퇴소거주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은?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인 ‘김군자할머니기금’을 기반으로 아동양육시설 퇴소, 거주 대학생들의 학업유지 및 졸업을 통한 안정적인 사회정착을 위해 교육비를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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