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에게 쓰는 편지

 

오늘 덕수궁미술관에서 하는 사진전에 다녀왔어. ‘임응식’작가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거든.

이 분은 일제시대와 해방시기에는 주로 회화적인 예술사진 소위 ‘쌀롱사진’이라고 하는 사진을 찍었데. 초기 작품들보니까 정말 추상적인 작품들과, 굉장히 회화적인 사진들이더라구. 
그런 작가의 삶에 일대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6.25전쟁 종군기자로 발탁되어 첫 임무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게 된거야. 

작가는 당황했데. 늘 ‘아름다운’ 대상을 ‘아름답게만’ 담고자 노력하던 작가에게, 대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하는 종군사진기자의 임무는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고 해. 그것도 전쟁이라는 처참한 현장을 기록하는 일이 어찌 쉬웠겠어.
그래서인지 작가는 처음 전쟁터에 투입된 사흘간은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을 수 없었데.

구직 1953년 ⓒ임응식

 

 

그때부터 작가는 역사와 시대를 기록하는 ‘사진의 힘과 역할’을 깨닫게 되었지. 그 ‘6.25전쟁’이라는 사건이 한 예술사진가를 ‘기록사진가’, ‘생활사진가’로 변화시킨거야. 그 후로 임응식 작가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사람들을 기.록.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전쟁의 처참한 풍경과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을 담아.
전쟁 후에는 그의 ‘기록’은 계속되어 당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의 초상이나 우리 역사를 담은 문화재,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을 담는 ‘명동’시리즈 등을 작업하지.
 

핫팬츠 1971년 ⓒ임응식

 

오늘 전시에서 본 그의 어떤 유명한 작품들보다 기억에 오래도록 남은 사진 한 장이 있었어.
피난촌 판자집들이 쭉 늘어서 있는 배경으로 한 소녀가 지나가는데 카메라를 보고 그랬는지… 수줍게 웃는 사진이었어. 
그 사진을 보는 순간 한 문장이 떠올랐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어쩌면 오늘 전시의 한 줄 감상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산 1950년 ⓒ임응식

 
 
전쟁의 한 가운데서도 그 수줍게 웃던 소녀의 모습이, 참 위로가 되고 그녀에게 고맙단 생각이 들었어.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고마운 내 마음,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네 생각이 났어. 그래서 이 맘을 네게도 전해주고 싶었어. 
오늘 나의 사진감상기가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방황하는 이 순간에도 삶은 계속되기에 포기할 수 없는 거겠지… 
예술사진가가 삶을 기록하는 위대한 사진가가 된 인생의 결정적 계기와 시간이 있었듯,
지금의 힘든 시간이 네게 그런 시간이 될 거라 믿기에… 힘내자, 곧 올거야 그런 날.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 너를… 
 

노점수레 1950년 ⓒ임응식

 

 

임응식 사진전 – 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 ㅣ 덕수궁미술관, 2012년 2월 12일(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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