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과 ‘안 당연’

아직 나이가 많진 않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당연’과 ‘안 당연’의 경계가 상당히 애매하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이 ‘진실’은 아니라는 것은 더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되죠. 예를들면 사랑은 이성간의 결합만을 의미한다 던가, 지위가 높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던가, 열심히만 살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던가 하는 것들이죠. ‘당연’ 이라함은 사실 특정 인식에 많이 노출되면서 생긴…’이식’ 이나 ‘학습’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생활하면서 세상 다 안다고 생각했었더랬습니다. 이 정도면 두루두루 남들보다 많이 만나고 남들보다 많이 알지 않나? 하는 거만한 생각 말이에요. 하…그런데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해보니 아니었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7개월. 세상은 내가 지금껏 몰랐던 ‘안 당연’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느낌일수도 있지만 아름다운재단에 다니면서 느낀 ‘안 당연’ 한 것들, 아름다운재단 창립기념일인 8월 22일을 앞두고 당신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

1. ‘기금’은 돈 많은 사람들만 개설할 수 있다. 당연?? 안 당연!!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인 <김군자할머니기금>은 김군자 할머니가 5,000만원을 기부해 시작된 기금입니다. 5,000만원! 처음 듣기엔 큰 돈인것 같지만 이 돈은 지난 2000년 기부 당시 76세 이던 김군자 할머니께서 평생 모은 전재산을 기부하신 것입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때마다 수억, 수십억을 면죄부처럼 기부하지만 생활엔 조금의 지장도 없는 기업가들에 비하면 50년 넘게 모진 고생을 겪으며 모은 김군자 할머니의 기금은 쌈짓돈 정도의 턱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돈이 지닌 가치를 무게로 달 수 있다면 저울은 어느 쪽으로 기울까요?

2000년 8월 30일, 김군자 할머니의 기금전달식이 있었습니다.

 

아동양육시설을 퇴소한 대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는 <김군자할머니기금>은 지금 600명 가까운 시민들이 함께 하며 어느 기금보다도 뿌리가 튼튼한 기금으로 자라났습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액수의 많고 적음보다도 나눔을 향한 할머니의 마음, 아름다운 기금의 취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그로부터 13년, <김군자할머니기금>은 여전히 아름다운재단의 1호 기금, 가장 오래된 뿌리입니다.

 

2. 장학금은 성적순으로 줘야한다. 당연?? 안 당연!!

아동양육시설을 퇴소했거나 잠시 유예기간을 얻은 대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의 <아동양육시설퇴소거주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는 앞서 소개한 <김군자할머니기금>을 비롯, 모두 6개의 기금이 쓰이고 있습니다. 학비 지원…즉, “장학금”을 주는 사업인데요,
일반적으로 장학금을 주는 기준은 ‘성적’ 입니다. 하지만 학비를 주며 공부만 하라고 하기에 양육시설을 떠나야 하는 대학생들의 삶은 너무나 팍팍합니다. 하물며 가족없이 모든 생활을 혼자 힘으로 감당해야 하는 그들에게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삶은 잡을 수 없는 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는 어느 양육시설퇴소 대학생의 등록금 고지서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은 이들을 지원할때 성적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대신 각계 전문가들이 현재 상황과 학업계획, 장래의 꿈 등을 객관적,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어느 대부업체에서 성적을 보지 않고 추천만으로만 장학금을 준다며 대대적으로 광고했었죠? 광고에선 자신들이 최초라고 말했지만 아닙니다. 아름다운재단은 13년전부터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3. 돈을 많~이 모아야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당연?? 안 당연!!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당연히 돈을 많이 모아야 한명이라도 더 도울 수 있는거 아냐?’ 하실테지요. 일면 맞는 말입니다. 모금이 잘 되면 좋습니다. 지원받으시는 분들이 더 많이 늘어납니다. 모금 단체의 규모가 커집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없다면 똑같은 일이 또 반복됩니다. 기부를 하는 우리는 가난이나 질병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어지길 바라지만 한 단체가 지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어쩔 수 없이 제한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은 정책의 변화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지갑 속 쌈짓돈까지 기부해가며 지키고 싶은 누군가의 삶이라면 그것을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아름다운재단에게 나눔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구체적인 실천인 동시에, 이들이 더이상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길 바라는 뜻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003년부터 5년간 진행한 <저소득층 단전가구 지원사업>. 지원 가구수는 1만 8백여가구에 불과했지만 이를 통해 불기 시작한 ‘에너지 복지’ 에 대한 여론은 2006년 에너지 복지와 관련된 국내 최초의 법인 ‘에너지기본법’ 제정으로 꽃을 피우게 됐습니다. 120만 가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에너지 빈곤층’이 이 법의 혜택을 받게 됐습니다.

가장 최근에 진행된 <나는 반대합니다 시즌2> 캠페인. 1520원에 불과한 아동양육시설 한끼 식사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SNS등 여론의 확산만으로 배우 유아인씨가 뜻깊은 기부를 하기도 하셨죠. 석달여간의 캠페인으로 모금된 돈은 3억 7천여만원. 하지만 이 돈으로는 고작해야 3군데 정도의 시설에 1년치 급식비를 지원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캠페인에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한번 움직인 여론의 힘은 무서웠습니다. 국회 공청회장을 가득메울 정도의 뜨거운 관심은 국회의원들이 알아서 공청회장에 참석하도록 만들었고, 하반기 추경예산에 무려 549원이 인상된 2,069원이 급식비로 반영됐습니다. 시설수급자 규정에 따르는 아동양육시설의 급식비가 오르면서 장애인, 노인시설의 급식비도 덩달아 인상! 9만여명에 이르는 시설수급자의 하루 식비 인상분만 1억 4천 8백만원이 넘습니다. 이만큼의 금액이 7월부터 12월까지 지원되는 것이니 나눔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엄청나지요? 이렇게 ‘나눔’을 통해 기부자님과 함께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가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재단의 방식입니다.

2013년 4월 22일 진행된 국회 공청회.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이 외에도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재단에서 보낸 그동안의 시간은 스스로 ‘사춘기가 다시 왔다’고 말할만큼 치열한 고민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반년 넘는 시간동안 서서히 아름다운재단 기부자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에 감동받고 적응됐나 봅니다. 재단의 13번째 생일을 맞아 제가 없었던 지난 12년 조금 넘는 시간을 돌아보니 ‘나눔’이 당연을 안 당연으로 바꿔온 변화가 얼마나 어마무지했었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용을 써봐도 그때의 감동에 미치진 못하겠지요.

 그리고 지금, 저는 다시한번 꿈을 꿉니다. 아름다운재단이 공익활동의 길라잡이로, 어려운 이웃과 풀뿌리 단체들의 다정한 이웃으로, 기부자님께 기쁨드리고 사랑받는 공익재단으로 더 튼튼히 자리잡는 꿈입니다. 13살, 이제 막 사춘기를 맞이한 아름다운재단의 생일을 축하해주시고 더욱 잘 자랄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리는 것은…당연일까요, 안 당연일까요^?^

생일의 축하보다 13년을 함께 해 주신 기부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연’에 당당히 도전해 온 아름다운재단의 힘은 수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여전히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공익재단으로 사회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댓글 3

  1. 간사님의 뜨거운 열정과 치열한 고민이 느껴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이 공익재단으로 자리잡는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저도 함께 동참하고 싶어요!

  2. 빗물

    치열한 고민에 많이 힘드셨겠지만, 그 고민이 재단을 이끄는 힘이라고 하면 너무 긍정적인 결론일까요. 앞으로도 많이 고민하고 도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3. 마음에 참 와닿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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