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통 깨고 헌혈증 모아 ‘따뜻한 우정’ 선물

오늘로 소년조선일보 ‘어린이 모금가 반디를 만나다’(이하 ‘반디’) 연재가 끝난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온 세계 각국 어린이의 사연은 지난해 9월부터 약 4개월간 소년조선일보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줬다. 오늘은 그 마지막 얘기와 함께 ‘나눔을 실천해 반딧불이처럼 세상을 환하게 밝힌’ 국내 어린이들을 직접 찾아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 글· 최민지 기자(merryclave@chosun.com)
 
“오늘 ‘혜정(가명)’이가 머리를 깎았어요. 머리숱이 많던 친구였는데 백혈병 치료를 위해 머리를 밀었어요. 혜정이가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난달 27일, 경기 동두천 생연초등학교 4학년 3반 교실. 위 메시지가 적힌 예쁜 손팻말을 든 이 반 어린이 6명(권윤진·조윤정·이하영·현선아·김예원 양, 민경호 군)이 취재진을 맞았다. 지난달 12일부터 1주일간 혜정이를 위해 발로 뛴 이들은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주목받게 돼 쑥스럽다”며 얼굴을 붉혔다.
 

▲ (왼쪽부터) 권윤진·이하영·현선아·김예원·조윤정 양, 민경호 군.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과 모금함, 헌혈증서는 반 친구 혜정이 돕기 성금 모금 당시 사용한 것들이다. / 사진·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씩씩한 울산 아가씨, 큰 병에 걸리다

울산 아가씨, 댄스 최강자, 태권도 소녀. 친구들이 전한 혜정이의 별명은 쾌활하다는 성격만큼이나 다양했다. 지난해 5월 울산에서 전학 온 혜정이는 친구들 앞에서 걸그룹 레인보우 노래에 맞춰 춤도 곧잘 추고, 여자 아이답지 않게 태권도 학원도 열심히 다니는 씩씩한 친구였다. 혜정이의 백혈병 발병 사실이 알려진 건 지난해 11월 말. 김예원 양은 지금도 그날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수업 시작 전, 혜정이가 제게 ‘배가 아프다’고 했어요. 한동안 괜찮은 듯했지만 결국 그 수업시간에 먹은 걸 다 게워냈어요. 바로 옆에 있던 저도 그 사실을 몰랐어요. 냄새가 나 고개를 돌려보니 바닥이 흥건했어요.” 그날 이후 아이들은 학교에서 혜정이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1주일 후, 고성선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얘들아, 혜정이가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는구나.”

◇매일 아침 전교 교실 돌며 본격 모금에

백혈병은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 혈액 구성 요소 중 백혈구에 생기는 암을 말한다. 백혈구의 역할은 몸속에 들어온 세균을 없애는 것. 백혈병에 걸리면 백혈구 수가 줄어들며 세균 방어 능력이 급격하게 약해진다. 치료가 시급했지만 형편은 여의치 않았다. 혜정이가 한부모(엄마) 가정 자녀인 데다 엄마마저 변변한 직업이 없었기 때문.

침울해하던 아이들에게 모금을 제안한 건 고성선 선생님이었다. 이후 학급 임원인 권윤진 양이 고 선생님과 함께 전교 어린이회의에서 ‘혜정이 돕기 모금’에 대한 협조를 구했고, 이후 본격적 모금 활동이 시작됐다. 권 양을 비롯한 ‘여성 모금가’ 5인방은 아침 자습시간과 쉬는 시간 틈틈이 모금함을 든 채 교실을 돌아다녔다. 조윤정 양은 “혜정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무거운 모금함도 가볍게 느껴졌다”며 웃었다. 현선아·이하영 양은 “혜정이를 전혀 모르는 한 2학년 동생이 오랫동안 모아온 돼지저금통 속 동전들을 기부했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열심히 모금한 덕분에 1주일 후, 이들에겐 840여 만원이란 큰돈이 모였다.


◇“어른 되면 ‘헌혈증서 기부’ 동참할 것”

‘생연초등 어린이 모금가들’의 두 번째 계획은 대한적십자사에서 발행하는 헌혈증서를 기부받는 것이었다. 백혈병 환자는 백혈구가 살아있는 건강한 피를 정기적으로 수혈(輸血·한 사람의 혈액을 다른 사람의 혈관에 넣는 것) 받아야 한다. 이때 드는 ‘피 삯’ 대신 지불할 수 있는 게 바로 헌혈증서다. 400밀리리터(㎖)짜리 헌혈증서를 갖고 있으면 수혈받느라 낸 비용 중 피 400㎖에 해당하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

현행법상 어린이는 헌혈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번엔 학교가 나섰다. 선생님들은 혜정이의 사연을 가정통신문으로 널리 알렸고, 이를 본 학부모들이 헌혈증서를 하나둘씩 4학년 3반 교실로 보내왔다. 학교 근처에 있는 군부대에선 헌혈증서가 무더기로 도착하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불과 한 달 만에 400개 이상의 헌혈증서가 모였다.

‘혜정이 소식을 학교 밖으로 널리 알리자’는 세 번째 계획은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로 활동 중인 민경호 군이 실천했다.(혜정이에 관한 사연을 소년조선일보편집실에 알린 주인공이 바로 민 군이다.) “전 혜정이가 꼭 나을 거라고 믿어요. 여러분이 조금만 도와주신다면요. 혜정이를 돕고 싶으신 분은 저희 학교(031-863-3387)로 꼭 전화해주세요. 참, 이번 일로 제 주변에도 혜정이처럼 아픈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저도 어른이 되면 그런 친구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헌혈할 거예요.”

 

 

2011년 빛낸 ‘어린이 모금가들’

“사랑받은 만큼 기부할래요”

전남 해남 땅끝마을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이 4㎞나 되는 통학 길을 걸어다니며 모은 돈을 불우이웃 돕기에 선뜻 내놓았습니다. 이 센터는 배우 문근영(25세)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시설이에요. 이곳 아이들은 지난해까지 벌써 4년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성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보내온 저금통엔 각종 동전 2058개와 1000원짜리 지폐 21매, 사용하지 않은 버스표까지 들어 있었다고 하네요.

88만원보다 값진 8만8000원

지난달 27일, 전남 여수시 둔덕동 주민센터에 한 꼬마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여수 미평초등 1학년 유선영 양(가명)이었죠. 선영이는 이날 3년간 어렵게 모은 돈 8만8000원이 담긴 돼지저금통을 기부했습니다. 유 양의 아버지는 폐지를 모아 근근이 생계를 꾸리는 형편이고 어머니는 장애인이에요. 도움을 받아도 모자란 형편의 선영이가 보여준 선행에 주민센터 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고 해요

“노래로 이웃 사랑 전해요”

지난달 12일, 충북 증평어린이중창단은 증평군청에 불우이웃돕기 성금 100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돈은 지난해 11월 26일 있었던 증평어린이중창단 정기공연의 수익금이랍니다. 김영애 단장은 “작은 정성이지만 소외된 이웃들에게 더 많은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수익금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 어린이 모금가 반디를 만나다 19회(마지막회) 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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