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 드러나듯이 공익단체의 활동에 ‘스폰서’가 되기위한 지원사업입니다. 시민사회의 시의성있는 단기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2020년 6월 ‘스폰서 지원사업’의 선정단체인 인권연극제에서 활동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 아래 활동은 코로나19 방역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지키며 진행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질병을 몸에서 삭제해야 하는 배설물 같은 존재로만 본다면, 만성질환자를 포함해 질병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아픈 몸은 불행한 패배자로 살 수 밖에 없다. 의학으로 죽음을 삭제할 수 없듯이 질병을 삭제할 수 없다. 누구나 아프게 되고 죽게 된다. 질병이나 죽음 자체가 비극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겪어낼 수 없을 때 비극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된 노동을 무한히 반복해도 결코 아프지 않은, 무한히 노동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자연이 생명체에 부여한 생로병사를 낙인이나 차별없이 겪을 수 있는 몸, 질병권이 보장되는 잘 아플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12쪽

적지 않은 이들이 질병 경험을 숨긴 채 살아간다. 사회의 모순적 태도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난할수록 아프고,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아프다는 건강 불평등 현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주변에서 누군가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하면 ‘짜게 먹어서’, ‘술을 많이 마셔서’라며 개인의 생활 습관을 손쉽게 원인으로 ‘진단’한다. 질병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질병의 개인화’가 내면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건강을 스펙으로 만들면서, 아픈 몸을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의 몸으로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은 강도 높은 노동, 고도의 경쟁, 오염된 생태계, 불안정 고용, 차별과 혐오 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크고 작게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다.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리며, 그보다 많은 사람이 만성질환과 함께 사는 사회다. 하지만 아픈 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질병 경험이 낙인이 될까 봐, 아프다는 게 자기관리 실패로 여겨질까 봐, 취업이나 업무상 차별이 두려워서, 아프다고 말하는 게 구차해서 그리고 아픈 몸을 설명할 언어가 부족해서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이처럼 한국은 질병 경험이 드러나지 않는 사회이다 보니, 아픈 몸들에 대한 차별을 비롯한 ‘질병과 인권’은 아직 사회적으로 충분히 의제화되지도 못했다.

우리사회가 온전하게 아플 수 있는 ‘질병권’(疾病權)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려면, 질병을 둘러싼 이야기를 복원하는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다. 질병을 실패, 절망, 고통의 말로만 납작하게 포장해 놓은 그 이면을 더 많이 들추는 것이다.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로 꾸려지는 시민연극 제작을 위해 공개모집을 통해, 질병 이야기가 마음에 충분히 고여있는 여섯 명의 몸이 아픈 동료들을 초대했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어떤 순간’을 표현하던 날. 자기 차례가 돌아오자 허공을 향해 힘껏 주먹질한 참여자가 있었다. 그가 표현하는 게 무엇일지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상대에게 강한 펀치를 날리고 KO 시킨 위너가 아닐까 싶었지만, 이내 그것이 강제 입원당한 정신병동에서 나가게 해달라는 간절한 두드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묵직한 고통이 모든 참여자의 몸을 관통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함께 앓았다.

연극 워크숍에서 계속해서 주어지는 표현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이나 욕구들이 자극됐다. 즉흥극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흔들었고, 흔들리는 세계에서 지난 수십 년 소화되지 못했던 감정들이 툭툭 떨어졌다. 즉흥극이나 다양한 역할극 속에서 그 묵은 감정들이 털려 나가거나 새롭게 이름 붙여지면서, 감정은 각자의 자리를 향해 조금씩 떠나거나 여전히 머물렀다. 그렇게 3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동료들은 각자의 질병과 함께 살아왔던 고단함과 기쁨에 대해 느리게 말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밀도 높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아픈 몸들이 ‘의사나 정책전문가들에 의해 규정되던 식민화된 몸을 벗어나, 스스로 발화하는 몸으로 변이하는 과정’이었다. 아픈 몸으로 사는 시민배우들은 ‘질병에 관한’ 이야기를 연극 연습과 공연을 통해 ‘몸’으로 해보면서 경험한 연결과 치유를 무대 위에 올렸다. 여전히 건강 중심 세계의 언어에 익숙한 당신의 마음에 우리 질병 세계의 언어가 닿길 바란다.

  

 

+ 연극은 스탭들의 노동권을 존중하며 제작되었고, 문자 및 수어통역이 제공되었습니다.

 

🎬<연극 하이라이트 영상 보기>

✨연극에 쏟아진 찬사와 추천사

“이것은 ‘완전한 치유’가 아닌 ‘완전한 치유로부터 자유’를 말하는 혁명적인 질병 서사다.” – 은유 (작가)

” ‘아픈 몸’ 정체성을 통해 온전한 ‘나 자신-되기’를 선택한 이들” – 김효실 (한겨레 기자)

“아프면서 나를 가장 미안하게 만든 것은 나였다. 연극을 보고 나는 나와 화해하고 함께 변화하고 싶어졌다” –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아픈 사람도 당당하게 일하는 사회. 노동자 건강권 운동의 새로운 숙제 –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세계적으로 ‘사람 중심’ ‘환자 중심’의 의료가 새로운 건강 이념으로 주목받는 떄, 아픈 몸과 맘들이 스스로 그 중심의 중심으로 들어갑니다.” –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시민건강연구소)

“아픈 몸의 담론은 의료, 치료 담론에 예속된 환우회 담론에 저항한다.” – 박정수 (비마이너)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세상, 그곳이 천국이 아닐까” – 최원영 (행동하는 간호사회)

글/사진 – 인권연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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