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위한 주요한 동력으로, 사회의 다양한 문제해결, 정부의 공공재 공급의 보충적 역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의 옹호, 공론장과 사회적 자본 창출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대부분 비영리기반의 시민사회단체 공익활동가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어 지속가능한 공익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이들의 소진을 예방하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공익활동가 쉼 지원사업은 활동과 삶의 조화를 위한 쉼 활동 지원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익활동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지원사업입니다.

이 글은 2020 공익활동가쉼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활동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은종님의 후기입니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단체 5년 차 안식휴가를 받은 저는 활동가이자, 팀장이자, 엄마가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꼭 있었으면 했습니다. 제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제주도를 천천히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제주에서 나홀로 버스 여행을 시도했습니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한 번도 지나보지 못한 제주의 곳곳을 보게 되었고요. 남편과 아이 혹은 누군가의 동료가 아닌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움직이고 또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무척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때로 누군가에겐 그래서 혼자 하는 여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불혹을 넘어서 알게 되었네요. 제 발길을 축복하듯 네잎클로버도 발견해서 기분 좋게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는 여러분께도 행운이^^)

네잎 클로버 사진

사진 김은종

함덕해변 사진

사진 김은종

첫날 함덕 해변과 함덕 서우봉을 걸으며 아름다운 바다를 만끽했던 여운을 뒤로하고 둘째 날은 버스를 타고 월정리로 향했습니다. 제주도 밭담길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월정리 밭담길을 천천히 걸으며 자가용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제주의 마을과 돌담길을 경험하였습니다. 돌담 넘어 이어지는 밭에는 땡볕에도 아랑곳 않고 삶을 이어가는 어머님들을 뵐 수 있었고 아름다운 공간인 제주에서의 4.3과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김은종

월정리를 거쳐 종달리 초등학교부터 숙소까지 이어진 올레 1코스에서 우연히 책약방을 발견했습니다. 무인서점인 책약방에서 만난 글귀에 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쉼없이 달려온 서로에 대한 위안의 글이었습니다. 그 글귀들을 읽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행과 쉼이 주는 위로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에게만 그 시간들이 지치고 힘든 시간이 아니었으며 누구나 그 시간을 견디며 다시 시작한다는 사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와 위로를 주었습니다. 해질녘 숙소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종달리 해변을 걸으며 머리로만 싸움하던 일상에서 벗어난 몸의 피곤함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진 김은종

다음날은 숙소에서 일찍 나와 아침식사를 하고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긴 길을 걸었습니다. 맑은 하늘, 선선한 바람, 짐은 무거웠지만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걷는 길 자체가 치유와 위로의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발길 받는 대로 걷는다는 것, 계획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그 다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사진 김은종

그리고 다음 숙소에서 남편과 아들, 가족들과 재회를 하였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인적이 드문 제주에서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들게 했는데 또 가족들을 만나니 안도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 또한 시민운동 단체에서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었고, 외동인 아들은 코로나로 원격수업을 하며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지난 시간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주도에서 걸었던 긴 길들과 빛나는 바다, 하늘, 구름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간에도 그들은 그 순간에 있었을텐데, 현재 이것이 내게 치유와 위로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내 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나, 나의 어려움, 나의 고통를 중심으로 세상을 읽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깊이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지금의 일에 대해서도 나의 한계보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사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 김은종

다음날,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충분한 쉼을 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숙소 근처의 카페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며 박수기정으로 해가 넘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진 김은종

그리고 산책을 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체는 10년 만에 새로운 도약기를 준비하는 바쁜 시기였습니다. 저 또한 새롭게 직책을 맡게 되면서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늘 쫓기듯이 1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으로 다시 숨을 고르고 더 깊이, 더 넓게 현재와 나를 바라보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밤에는 별빛 아래에서 가족들과 이번 제주여행을 통해 느낀 점을 나누었고 가족들 또한 제가 이번 여행을 계기로 다시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사진 김은종

생각보다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이 시간이 준 쉼과 비움과 성찰의 시간은 제가 다시 운동화 끈을 고쳐맬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필요했던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약방에서 보았듯이 저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저는 운 좋게도 그 시간을 선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시민운동은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때론 그 미션이 버겁다고 느끼지만 어쩌면 누구나의 삶 또한 늘 도전과 굴곡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라고 좀 더 다른 측면에서 저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나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더 넓게 더 깊게 그리고 침착하게 삶을 마주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감사합니다.

글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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