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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섭 선수가 초구병살을 쳐서 롯데자이언츠가 졌던 플레이오프 1차전이 있던 날.
저는 파주를 다녀왔습니다.
비록 야구중계는 보지 못하겠지만,
야구의 아버지 쯤 되는 크리켓 경기를 봤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가 지원하는 WMA를 만나러 갑니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공동체 WMA는 해마다 크리켓 대회를 개최합니다.
파주 일대 이주민들의 뜨거운 감자, 과연 올해의 우승팀은 누가 될까요?

 

>>WMA 방문기 1탄 다시보기

 

띠뚜님, 의정부라더니… 여기는 파주잖아요. 

장장 3시간에 걸쳐 도착한 파주의 한 초등학교 교정에 들어서자,
터번을 두른 아저씨가 지나가고, 외국말들이 들립니다.
여기는 파주가 아니라 인도 꼴까타의 어느 학교에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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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기 시작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띠뚜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얼굴에 미안함과 걱정이 역력합니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사람들이 대회가 취소된 줄 알고 많이 못 왔답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본인도 많이 섭섭한가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밤을 새가며 몇 주를 준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괜찮다고… 이 정도면 사람들 많이 온 거라고…
혼자서 준비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다고, 위로와 격려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위로에도 불구하고… 저를 어디론가 이끕니다.
진~짜로 미안하게 됐답니다. -.-? 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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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저는 아름다운’‘단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손아섭 선수를 용서할 수 있었던 대인배로서,
저는 괜찮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푸하! 웃겨서 말을 제대로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다 ‘제단’이라고 잘못 썼기 때문에,
비가 온 거라고… 저번 여름애도 동해바다 보겠다고 캠프 갔을 때도 비가 오지 않았냐며,
천재지변조차도 책임지라고… 저는 계속 놀렸습니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요즘 안 그래도 힘들다며, 띠뚜님은 한숨을 쉽니다.
하나둘씩 친구들이 강제출국을 당하고,
같이 일하고 고민할 동료도 없이… 그는 힘들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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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는 한 나라였습니다.
서구열강이 물러가고 독립을 되찾은 2차대전 종전 후,
인도는 종교적 갈등으로 이슬람과 힌두, 불교가 대립하다가, 급기야 내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분열을 막다가 위대한 그 목숨까지 바쳤지만,
인도는 결국 4개의 나라로 쪼개지게 됩니다.
인디아의 네 나라는 지금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분단의 아픔이 서린 도시, 한국의 파주에서
네 나라의 이주민들이 친구가 되고 있습니다.
WMA가 마련하는 크리켓 대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함께하는 동료이자 이웃이 됩니다.

덕분에 공장이 밀집하여 이주노동자가 많은 파주에서는
이주노동자가 많은 다른 도시들보다, 이주노동자들 사이의 다툼이 적다고 합니다.
WMA의 노력이 작은 평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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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찾아갔을 때, 대회는 중반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더니…
슬픈 표정으로 띠뚜님이 “에이… 아시잖아요…” 라고 대답합니다.

결승전은 방글라데시를 이기고 올라온 스리랑카와
인도를 누르고 올라온 파키스탄으로 대결로 좁혀졌습니다.

내년에는 부디 방글라데시 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아울러 롯데자이언츠의 역투 역시도 절대기원합니다… 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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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뭔가 했습니다… 모두들 WMA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다른 세 나라 팀은 없나? (‘o’)?

그게 아니라… 띠뚜님은 이 대회를 WMA가 준비했으므로,
티셔츠에 모두 당연히 WMA라고 당당하게(?) 박았던 것입니다.

흰색은 인도, 파랑은 파키스탄, 핑크는 스리랑카, 녹색은 방글라데시였습니다.
특히 녹색은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국기 색상입니다.
색상 배정이 치열해서 추첨으로 뽑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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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규칙도 모르겠고, 생각은 온통 사직동으로 향해 있었던지라…
DMB도 안 터지는 스텐드에 앉아, 마냥 경기를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슬슬 따분해지려는 그 때.
갑자기 어느나라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경기중계 소리가 쨍쨍하게 울려퍼졌습니다.
드디어 누군가 마이크를 잡은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 듣겠지만,
관전하기에는 뭔가 박진감이 넘치기 시작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아~! 스리랑카가 쳤습니다!!! 스리랑카 돕니다!!!    
파키스탄! 파키스탄! 아 공을 놓쳤어요!!! 저 선수 뭔가요!!! 

뭐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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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스리랑카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딴 듯, 선수들은 함성을 지르며 기뻐합니다.
가만히 보니 스리랑카 팀은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흡사 아디아스처럼 보이는 츄리닝 바지도 맞춰 입었습니다.

우천으로 늦게 사작하기도 했고, 비가 온 뒤 쌀쌀해진 날씨 탓에
일찌감치 탈락한 방글라데시와 인도 팀은 이미 뒷풀이 자리로 향했고,
그 때문에 자리가 조금 비어 보이지만,
훈훈한 시상식을 하고 대회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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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뚜님이 시상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오늘의 대회는 한국말로 진행됩니다.
비슷비슷해서 서로 대충은 알아듣지만, 각 나라의 말이 달라서 공용어는 한국말입니다.

준비 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띠뚜님이 제게 인사말을 시킵니다.
얼떨결에 마이크는 잡았는데… 다들 표정들은 보니 춥고 배고파 하셔서,
“오늘 보기 좋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짧게 했더니 환호가 터집니다. 난 훗~ 센스쟁이 대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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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A는 이 대회를 매년 활성화하고자, 크리켓 장비를 각 나라 공동체에 전달했습니다.
이 장비로 열심히 연습해서 내년에는 좀더 멋진 경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크리켓 규직 좀 공부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트로피도 제대로 준비했답니다.
묵직한 트로피를 보고 사람들이 저마다 멋지다며 사진을 찍고, 들어도 보고 합니다.

이번 대회릉 위해 장소를 구하기 힘들었다는 WMA.
바라건데 파주에 크리켓에 어울리는 넓은 잔디밭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별다른 일이 없다면, 내년에도 대회는 이 초등학교에서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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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스리랑카는 준비를 잘 해왔습니다. 유니폼에, 국기까지…
결국 스포츠 경기란 준비를 많이 한 팀을 이길 장사는 없나 봅니다.
절치부심, 내년에는 만년 약팀 방글라데시 팀도 좋은 성적을 내기 바랍니다.

일단 방글라데시가 우승을 해야,
띠뚜님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펴질 것 같습니다.

아울러 롯데지이언츠도 준비를 쫌 단디해야 합니다!  문디 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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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떡입니다.
놓고 드시라고 펼쳐놓았는데… 띠뚜님은 각 나라별로 몇개씩 배분하면 되겠다고 합니다.
역시 공정한 띠뚜.
하지만
티셔츠에는 WMA라고만 적었습니다. -_-;;

저녁 뒷풀이도 함께 가자고 하였지만
괜히 제가 끼면, 손님이라고 어려워하실 것 같아서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버스 정류장을 몰라 주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인인줄 알았더니, 이주노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역시 파주에 사는 주민인지라 길도 잘 가르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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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거주민입니다.
이방인이 아닙니다.
내 이웃에 살고,
나는 그들이 만들어준 옷을 입고 물건을 씁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나와 함께 삽니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이, 추워…. 야구도 지고… 그날은 추웠습니다.
하지만 좋았습니다. 파주에서.

댓글 2

  1. 아름다운제단?ㅋㅋ 담에 또 기회 있으면 따라가고 싶네요.^^

  2. 지애킴

    재밌게 봤던 영화 ‘대단한 유혹’에 크리켓이 나와서 예전부터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크리켓 경기가 열리는걸 보니 뭔가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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