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2020년 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총 3년 동안, 사각지대 및 긴급지원이 필요한 청소년부모(청소년미혼모/부/부부)의 안정적인 사회 기반을 돕는,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부모의 안전한 출산과 자녀양육, 성장과 자립을 돕는 적정주거 지원, 청소년부모의 자립지원모델 확산 및 인식개선에 중점을 둔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 ‘인큐베이팅하우스’는 ‘킹메이커’와의 협력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에 참여한 홍수영, 한승민(모두 가명) 부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랑의 다른 이름, 책임

“임신소식 들은 날이요? 스무 살 9월이었는데… 그냥 서로 되게 좋아했어요(웃음). 부모님께 어떻게 알리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그런 걱정 없이 아기가 생겼다는 게 기뻤어요, 감사하고. 승민이랑 맛있는 거 먹고 파티도 했어요.”

밀레니엄에 태어난 올해로 스물두 살 동갑내기 홍수영, 한승민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냈다. 스스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도록 곁에 머물렀다. 자원이 많아서 가능했던 게 아니다. 손에 쥔 게 없었는데도 망설이지 않았다. ‘너’에게 손 뻗는 순간 ‘나’에게 지워질 짐에 무릎이 꺾여도 ‘함께’가 아닌 선택지를 떠올리지 않았다. 재원(생후 9개월, 가명)이 합류하며 부부의 인연은 더 공고해졌다.

“4년 전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고 사지마비 진단을 받았어요. 그때 수영이가 자주 병문안을 왔어요. 그땐 그냥 친구였는데 그게 엄청 고맙더라고요. 이후 연인이 돼서도 늘 밝게 저를 맞아줬어요. 병원에 치료 받으러 간다고 하면 기다려주고, 그러다 해가 져서 달랑 밥 한 끼 먹고 헤어져도 싫은 내색 한 번 안하고요. 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손에 힘이 없고 왼쪽 다리 절거든요. 저 같으면 다른 사람들 신경 쓰일 것 같은데 그런 거 전혀 없어요. 그냥 고마워요 모든 게.”

정작 홍수영 씨는 한승민 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그와 보폭을 맞춰 걷느라 세상 시선 따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기에 위축되지 않았다. 워낙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즐기는 성격이기도 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 제일 쉬웠다. 재원이를 임신하고서도 비슷했다.

'주거'가 공공의 권리로 인식되는 사회를 위한 시작

‘주거’가 공공의 권리로 인식되는 사회를 위한 시작

 

동아줄이 되어준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

기댈 곳은 부모였으나 양가 모두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허락 없는 결정이니 그마저도 책임지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담담히 받아들인 어린 부부는 집 보증금과 출산비용을 마련할 방법을 궁리했다. 홍수영 씨는 출산 2개월 전까지 간호조무사로 근무했고, 한승민 씨는 어린이집 파트타임 보조교사로 일했다. 그렇게 둘이서 240만 원을 벌면 무조건 100만 원을 적금통장에 넣었다. 출산할 때쯤 1,000만 원여를 모았지만 출산비용과 출산 후 생활비를 제외하면 보증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 500만 원 남짓이었다.

“집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이제 곧 애가 나오는데 굶어죽을 순 없고. 그때 잠깐 아무것도 쥔 것 없이 너무 큰 결정을 했나 자책했어요. 안되면 미혼모주거지원을 받자고 결심했죠. 한데 장모님이 우시더라고요. 진짜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알아보자하고 ‘청소년부모지원’을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킹메이커’가 맨 위에 뜨는 거예요. 거기 들어가서 주거지원을 받고 싶다고 썼죠. 딱 한 달 후 집을 얻었어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을 만큼 간절했지만 기대하진 않았다. 몇 가지만 묻고는 바로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해준다기에 ‘이거 사기구나’ 의심했다. 되게 절묘한 타이밍으로 검색되고 뭘 자꾸 해주겠다고 하니까 헷갈렸다. ‘청소년부모’라는 것만으로 지원이 가능하다는 걸 믿기 어려웠다. 처음 봤는데 ‘이제 걱정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대표도 이상했다. 아마 이거저거 서류 달라고 했으면 사기를 확신했을 거다.

“사실 우릴 도와줄 이유가 없잖아요. 부모조차도 뭘 해주려고 안 하는데 글 몇 자 보고 집을 해주겠다니 진짜 이상하죠. 세상에 그런 공짜가 어딨나, 나중에 뱉어내라고 하면 어쩌지, 뭐 그런 불안이 있었는데, 또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냥 붙들었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게 아름다운재단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이었던 거예요.”

1년 동안 보증금 500만 원과 월세 48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 홍수영, 한승민 부부가 가진 500만 원을 보태 보금증 1,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짜리 아파트를 얻었다. 비로소 빛이 잘 드는 안식처에서 쉴 수 있었다. 이사한 다음날인 5월 13일 소중한 재원이를 출산했다.

고단한 길을 함께 걷는 고마운 사람들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이 담긴 따뜻한 공간, 집

홍수영&한승민 부부는 아름다운재단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그 덕에 행복한 집에 살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안정돼 있지 않을 뿐이란다. 아직은 수입이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사회복지학과 재학 중인 한승민 씨는 지난 가을부터 대면수업 학사일정으로 더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한다. 현재 홍수영 씨가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받는 월급이 유일한 수입이다.

“돈을 더 모으고 번듯한 직장 잡아 결혼했더라면 아내도 아이도 안정됐을까 가끔씩 생각해요. 대학 등록금도 있으니까 생활비를 졸라맬 수밖에 없고. 재원이 어린이집 보내고 집안일하며 공부하는 것이 미안해서 휴학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빨리 졸업하는 게 돕는 길이래요. 병원 진료 받는다 생각하고 공부하래요. 고맙고 미안하죠.”

홍수영 씨의 긍정적인 성격이 초조함을 설렘으로 바꾸었다. 아내 덕분에 한승민 씨는 힘들 때마다 가족이 함께 산다는 중요한 사실을 되새긴다.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이 담긴 따뜻한 장소. 그래서 안정되진 않아도 행복하다.

“남편한데 그랬어요, 집 못얻으면 모텔 달방이라도 잡으면 된다고. 근데 이렇게 따뜻하고 볕 잘 드는 곳에서 살잖아요. 그거면 된 거죠. 최대 2년 지원이고 1년마다 재심사라고 하는데 다시 될 거라고 기대 안하고 있어요. 다시 되면 좋겠지만 우리보다 더 힘든 분들, 우리처럼 절박한 청소년부모를 생각하면 욕심 같아서요.”

어린엄마를 고깝게 보는 부당한 사회생활이 녹록할 리 없다. 가끔 “지금 아기 낳으면 어떻게 지내냐, 제대로 살 수 있냐”는 말에 웃긴 하지만 비수가 아닐 리 없다. 그럼에도 홍수영 씨가 기운을 낼 수 있는 건 재원을 잘 키워야지, 건강한 가정을 꾸려야지, 그 단단한 목표 때문이다. 그리고 선뜻 주거비용을 지원해주고 출산용품과 세간살이마저 채워주는 낯모를 사람들이 떠올라서다.

“솔직히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너무 대단해요. 그 생각을 금전적인 것으로 실천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나는 할 수 있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워요. 외면하기 쉬운 저희를 찾아 지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시절, 한줄기 빛이었어요 정말. 저희를 지원한 게 헛되지 않도록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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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승연ㅣ사진.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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