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노인 방문의료 지원사업을 시작하며

김문희(가명, 82) 씨는 얼마 전 허리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마쳤지만, 재활 훈련이 필요했다. 하지만 퇴원 후 집에서 누워서만 지내니 하지 근육이 소실되어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무릎을 구부릴 수 없어 누운 자리에서 한 발도 못 나갔던 그가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방문의료 덕분이다. 8차례의 방문의료를 통해 그는 무릎을 당겨 굽히고, 엉덩이를 밀고 이동하며 아들 방과 거실을 오가며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정도로 회복하였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은 김 씨와 같이 병원에 올 수 없어 진료를 포기하던 이들을 위해 그간 방문의료를 진행해왔다. 2022년부터는 방문의료 경험을 더 확장하고, 축적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2022 재가노인 방문의료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재가노인 방문의료 지원사업을 시작하며 두 분의 전문가를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봤다

방문의료는 돌보는 의료다

일선 현장에서 방문의료를 해온 김종희 의사(원주의료사협 밝음의원)는 의사는 병원에 있고, 아픈 사람이 의료기관에 와야 한다는 통념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령화 사회에 아파도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가 늘고 있어요. 그런데도 의료 서비스는 여전히 병원 안에 있고, 대리처방이 늘어나고 있죠. 검사와 대면 진료 없이 처방하는 게 과연 안전할까요? 대리처방은 불안하고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 사회의 의료 시스템은 병이 커진 상태에서 응급환자만 치료하는 구조가 될 거예요. 응급 환자가 되기 전에 평상시에 집에서 진료를 받으며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는 방문의료가 고령화시대에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김종희 의사)

방문의료는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 진료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만, 기존의 병원 중심의 의료를 돌봄의 관점으로 전환한다는 면에서도 중요하다. 병원에서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며 질병중심으로 환자를 만나게 되는데, 방문의료를 가면 환자가 놓인 삶의 환경 전체를 한꺼번에 마주하게 된다. 그 환경 속에서 발견한 생활 속의 문제목록들이 건강의 결정요인이 된다. 그 삶의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목록들은 의료를 포함한 ‘지역사회 돌봄’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방문해보면 의외로 칫솔이 없는 집도 많아요. 그래서 칫솔 교육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한 소년은 처음에는 칫솔질을 극구 거부했어요. 부모님도 지적장애가 있어 어릴 때부터 위생 관리를 해본 경험이 없는 거예요. 치아 관리는 영양 상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거든요. 치아뿐만 아니라 방과 거실 부엌에는 쓰레기가 뒤섞여 있어요. 이런 생활환경이 몸에 배어버린 청소년이 어떻게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치료사, 돌봄종사자,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실천적인 대화가 필요한 거예요. 이 가정에는 장애인건강주치의 방문진료와 방문간호 뿐 아니라, 방문구강팀을 연결하여 구강건강실천활동을 하고,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정리정돈과 동료상담가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김종희 의사)

김종희 의사(원주의료사협 밝음의원)

의사 중심의 방문진료가 아닌 ‘팀 중심의 방문의료’를 하는 이유

민앵 이사(한국의료사협연합회)는 <2022 재가노인 방문의료 지원사업>의 주요한 특징으로 3인 이상의 의사, 보건의료인 등으로 구성된 ‘팀 중심 방문의료’를 꼽았다. 그중에서도 여러 지역 자원을 연결하고 관계자들의 역할을 조율할 코디네이터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이다.

“실제 방문의료를 해보면 의사만 가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 많아요. 이 사람이 질병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주거 환경이라든가, 영양 문제라든가, 관계망의 문제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면 의사, 간호사뿐 아니라 작업치료사, 재활치료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팀을 이뤄 움직여야 해요. 이들을 조율하고 지역 자원을 연결할 코디네이터의 역할도 중요하고요. 그래서 저희가 방문‘진료’라고 하지 않고 방문‘의료’라고 부르는 거예요.

정부는 2018년 포용적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한 정책으로 ‘지역사회통합돌봄’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요. 전국 16개 지역에서 시범 혹은 선도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간의 복지 사업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요. 의료가 따로 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요에 대응하여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정부의 정책사업은 팀의료를 중심으로 한 코디네이터의 기능에 관심이 없이 의사의 진료 중심으로만 접근하고 있어요. 이것이 <2022 재가노인 방문의료 지원사업>에서 다양한 직종의 의료인과 코디네이터의 활동 지원에 비중을 두게 된 이유입니다.” (민앵 이사)

민앵 이사(한국의료사협연합회)

김종희 의사는 현장에 나갈 때마다 팀 의료 체계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한 사람 마다 삶의 조건에서 마련해야 하는 해결방안은 매뉴얼로 정리되지 않는 도전적인 과제들이 많다. 그 도전적인 과제 앞에 한 사람의 삶 전반을 관찰하고, 묻고, 의논하며, 지역사회 돌봄으로 연결하는 코디네이터의 자세가 필요하다. 실무적인 코디네이터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지만, 팀원 모두가 통합적으로 다가가는 코디네이터의 마음을 가져야 팀방문의료가 가능하다.

“한 환자는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심했어요. 그분은 보행기로 이동을 했는데 장애인 등록이 안 되는 분이라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태였죠. 방문했더니 현관 밖 길로 나서는데, 20cm의 턱이 있어서 보행기를 밀고 외출을 할 수가 없어요. 그 사소한 턱 하나가 어르신의 생활을 5년간 집안에 가두었어요. 그래서 지역사회팀과 연결해 1미터 길이의 경사로 나무 데크와 난간을 설치했어요. 지금은 매일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신대요. 의사 단독으로는 할 수 없는, 오로지 팀으로만 할 수 있는 일들이었죠.”

현재 정부에서도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과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통해 방문의료를 지원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의사 중심’의 방문진료와 교육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수가도 장애인주치의사업의 방문간호를 제외하고 의사에게 집중되어 있다. 민앵 이사는 수가 체계 자체가 팀 의료 구조로 전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번 사업을 통해 사례를 만들고, 그 사례를 공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분이 함께 집필에 참여한 신간 <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 책을 들고

“이번 사업을 통해 방문의료의 사례를 만들 뿐 아니라 실무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실무 안내서나 사례집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어요, 그걸 통해서 방문의료에 관심 있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요. 무엇보다도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팀 중심의 방문의료와 코디테이터가 제도적으로 도입되면 가장 좋겠어요. 방문의료가 누군가의 과도한 헌신이 있어야만 진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보편적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는 것, 그게 우리가 꿈꾸는 거예요. 그런 지점에서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이 지금의 의료 공백을 채워주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2022 재가노인 방문의료 지원사업>은 올해 5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선정해 팀 중심의 방문의료를 진행할 계획이다. 병원에 오지 못하는 지역의 고립된 환자들을 구석구석 찾아 나서는 의료가 당연해지고, 누구나 자신이 사는 곳에서 충분한 의료 돌봄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때까지 아름다운재단과 한국의료사협연합회의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글 ㅣ우민정, 사진 ㅣ김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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