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고액, 고액을 쫓는 세상 

아름다운재단에서 주로 고액 기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손영주 간사입니다. <아름다운재단 모금팀에서 일한다는 것 ③편> 이후에 ‘여기서 마무리를 할까, 이러다 10편 가는 것 아닐까’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글을 적습니다. 위에 첫 소개에서도 ‘고액’ 기부 담당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고액이라는 단어는 시선을 끄는 단어인가 봅니다.

– 아름다운재단 이래 가장 고액의 기부금
– 캠페인 모금 사상 가장 최고액
– 우리 나라 모금 최고액 등등 

일단 고액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시선을 이끌기 충분한 단어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금융권에서는 VIP와 VVIP(*VIP보다 한 단계 높은 극소수의 상류층)를 넘어 또 상위 개념의 고객들을 표현하는 용어들이 등장했습니다. 하이넷워스 (High-Net Worth / 고액자산가), 울트라 하이넷워스 (Ultra High-Net Worth / 초고액자산가). 금융권 기업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하이넷워스는 10억 이상, 울트라 하이넷워스는 30억 이상의 자산가를 의미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단어를 보며 그 다음은 또 어떤 상위의 개념으로 표현되는 단어가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서점에 가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책 제목들은 단연 ‘돈, 부자’와 관련한 것들입니다. ‘더 부자 되는 방법’, ‘한 단계 높은 재태크의 고수’, ‘상위 1%의 부동산 투자’ 등. 지금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가도록 부추기는 많은 방법들이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갖고 있는 것에 안주하기만 하는 삶은 재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공부 할 것, 타인과 비교하며 안주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아주 은근히, 말이죠. 

 

모으기 위해 돈을 쫓는 사람들

나누기 위해 돈을 쫓는 사람들,

모금팀에서 특화나눔팀으로 부서명은 바뀌었지만, 계속해서 돈을 생각하고 돈의 흐름과 쓰임을 생각한다는 데서 어찌보면 저도 계속해서 돈을 쫓고 있는 사람이겠죠. 무엇보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며 다양한 ‘고액’ 기부자들을 만나면서 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글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도 그중에서 꼽을 수 있습니다. 

돈을 먹고, 쓰고, 꾸미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이롭게 쓰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는 많은 사람들을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만 알고 주변의 지인들에게만 넌지시 알리기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고액, 초고액으로 기부한 사람들에 대해 금액을 강조하며 집중 보도하기도 하지만, 제가 만난 기부자들은 사실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홈페이지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피하는 고액, 그리고 초고액 기부자들을 위하여 그분들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살짝 소개하겠습니다. 

1. 죽고 난 이후의 삶을 기약한 사람

자신이 죽고 난 후, 자신의 재산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한 기부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 한 유산 기부자가 보내온 글이 기억에 남아 공유합니다. 

“뜻하지 않게 저의 짠순이 기질이 폭로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자기가 쓰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다 하며 살다 보면 남을 도울 여지가 없어진다는 것을 어린 마음에 깨달았기에 한창 멋을 낼 나이인 20대에도 백화점에 가서 옷 한 벌 사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세월들이 쌓여서 오늘 날, 이런 뜻 깊은 기부를 약속하게 되었으니 제 감회가 어떠할지는 저만 알겠죠?”  

적지 않은 부를 쌓았고,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이렇게 자신이 죽고 난 이후의 삶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사람. 아름다운재단의 고액 기부자였습니다.

2. 재단 간사, 기금 출연자가 되어 돌아오다

비영리재단의 월급은 영리 기업의 월급과 비교해볼 때 매우 적은 수준입니다. 풍족한 복리후생을 기대하기도 어렵죠. 하지만 오랜 기간 아름다운재단 간사로 일하던 사람이 기금 출연자가 되어 돌아온 사례가 종종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돈이 많았던 사람이 아닌데도 재단의 업무 경험 이후에 다시 기금 출연자가 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면 또 어떤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을까요? 부자 되는 방법을 소개하는 한 책에서는 ‘내가 이미 많이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면’ 돈을 끌어당기게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는데요. 개인의 노력과 운을 넘어 ‘부’에 대한 생각의 크기가 부자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되새겨 보게 됩니다. 내가 지금 많이 없더라도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면 그들의 행동과 말투, 습관을 은연중에 따라 하게 되겠죠.

3. 나를 비웃었던 사람들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복수 

큰 금액을 기부한 한 기부자를 만났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책 한 권을 들고 걸어온 기부자는 수수한 옷차림이었습니다. 기부자는 특정 지원사업에 유독 관심이 많았습니다. 본인이 남들보다 조금 더 금전적인 여력이 된다며 겸손함을 표했던 그는 알고 보니 유명 기업의 창립 멤버였습니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오래 전, 지인들에게 본인이 훗날 지원사업에 대해 이룰 것이라 말하니,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고, 많은 돈을 축적하여 지금은 그 때가 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 나를 비웃었던 사람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지원 사업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본인을 비웃었던 사람들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복수, 기부. 그 고액 기부자의 느긋한 말투와 진심이 담긴 눈빛이 떠오릅니다.  

 

고액 기부자들의 다양한 모습들

남들보다 유독 더 뛰어난 점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행운입니다. 가령 엄청나게 큰 부를 거머쥐어본 적이 있다거나, 엄청난 미모를 가졌다거나, 비행기 사고에서 홀로 살아남는 것 또한 큰 행운이죠. 하지만 무언가 남들보다 유독 심한 결핍이 새로운 삶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참 다양하듯, 고액 기부자들 각자의 모습 역시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같은 것은 로또와 대박, 일확천금이라는 단어들이 좀 부자연스러운 사람들, 제가 만났던 고액 기부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마치 무언가 하나를 얻으면, 무언가 하나를 내어줘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반대로 먼저 타인을 위해 내어주고, 훗날 무언가 얻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죠? 

 ‘스스로가 행복한 삶’  그 가치를 알아가는 것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쯤, 대학 후배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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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 “저 로또됐어요” 
저 : “아 네, 축하드려요. 즐거운 하루 되셔요.” 
후배 : “거짓말 아닌데 로또된거… ㅋㅋ” 
저 : “거짓말이라고 한 적 없는데.. 축하해요 값진 곳에 쓰길 바래요.^^” 
후배 : “아 누나는 얼만지 안물어보네요? 되게 분위기가 성녀같아요” 
저 : “돈은 나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슬프게 할 수도 있어요. 스스로가 행복한 삶 살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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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할 만큼 많이 친한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는 제 반응이 낯설었나 봅니다. 오랜만에 발견한 이 기억 속에서 그 때의 제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때의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리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과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사회 안에서 자급자족이 불가한, 화폐를 통한 물물 교환을 해야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돈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액, 고액을 쫓는 사회 속에서 또 다른 방향의 고액, 초고액, 하이넷워스, 울트라 하이넷워스 기부자를 쫓습니다. 재단 안에서 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많이 봤고, 또 많은 자극을 받았기에 함께 일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점점 더 고액과 초고액 부자들을 쫓는 세상 속에서  

‘상위 1% 부자 되는 방법’보다 ‘상위 1% 고액 기부자 되는 방법

‘고액 연봉 버는 법’보다 ‘고액 기부금 내는 법’ 

‘평범한 월급쟁이 부자 되는 방법’보다 ‘평범한 월급쟁이 고액기부자 되는 방법

이런 내용들이 더 주목 받는 시대,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아름다운재단 앞 집 전경

[서촌 아름다운재단을 나서면 바로 마주하는 장미가 가득한 한옥의 담]

 

 
 글 | 손영주 간사

댓글 3

  1. 박태훈

    개인사업자가 부동산을 재단에기부하려면 무슨서류가있어야하는지요?

    • 안녕하세요? 박태훈 선생님, 아름다운재단 기부 상담 담당자입니다. 혹시 어떤 부동산인지 여부에 따라 (농지 임야인지 건물인지 등) 재단 쪽에서 공익 지원 사업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여부를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우선적으로는 기부하실 분의 신분확인증, 등기부등본 등이 필요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유선상으로 설명드리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아서요. 가능하실 때 연락주셔도 되고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인 기금 및 기부 상담 문의 02-6930-4549 / closerson@beautifulfund.org 입니다.

  2. 옆자리

    아 이런 생각 참 좋다.
    글도 참 잘 쓰시고..ㅎ
    기부자님들이 진심을 전해주실 때 받는 감동은 참 찌릿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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