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전력 노조위원장이 꽃집주인이 된 이유
 

남녘에서 봄꽃 소식이 간간히 들려오던 3월의 어느 날,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빌딩 1층 로비는 은은한 꽃향기에 취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코끝에 닿는 향기를 따라 시선이 닿은 곳에는 지난 밤 사이 누가 옮겨다 놓았는지 화분이 즐비한 간이 꽃집 하나가 차려져 있었는데요. 온실도 진열대도 없고, 판매원도 보이지 않는 수수한 간이 꽃집. 그리고 꽃집의 개설 이유를 적고 있는 벽면의 안내문 한 장.

“꽃을 판 돈 전부는 요금 미납으로 전기 공급에 제한을 받는 저소득 가구를 위한 ’빛한줄기 희망기금‘에 기탁하겠습니다.”

국내 굴지의 공기업 본사 로비에 느닷없이 좌판을 벌인 꽃집 주인의 사연은 무엇일까요?

과연 주인은 별 탈 없이 꽃을 팔아 바라던 일에 오롯이 돈을 쓸 수 있었을까요?

자, 지금부터 꽃향기 그윽한 나눔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개시한 지 단 2시간 만에 동났죠. 좋은 일에 쓰겠다는 종이 한 장 붙여 놓았을 뿐인데, 이렇게나 호응이 좋다니요. 기쁠 따름입니다.”

소탈한 말투와 선한 웃음이 매력적인 꽃집 주인이 전한 가슴 뿌듯한 소감입니다. 

100여 개에 달하는 꽃 화분을 단 2시간 만에 팔아치운 주인의 수완이 보통은 넘어 보이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수더분하게 보이는 이 분이 실은 한국전력공사 2만여 조합원들의 권익을 양 어깨에 짊어진 전국전력노동조합 김주영(46) 위원장이십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4일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16ㆍ17대에 이어 임기 3년의 제18대 노조위원장에 당선됐습니다. 3선 위원장의 탄생은 전력노조 6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네요. 그만큼 감격과 기쁨이 남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당선 직후 김 위원장은 말 못할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당선을 축하하며 도처에서 밀려든 100여 개의 축하 꽃 화분 때문인데요. 

‘일체 받지 않겠다고 미리 공지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기에는 이미 벌어져 버린 일. 김 위원장은 난감했습니다.

‘지인들에게 그냥 나눠 줘? 아님 꽃집에 되돌려 줘?’ 이 생각, 저 생각 떠올렸지만 마땅한 방도가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찰나, 김 위원장 뇌리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쩍하고 스쳐지나갔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지요. 꽃 화분을 되판 돈으로 전기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가구를 도우면, 보내 주신 분들의 고마운 뜻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두 배, 세 배 빛나게 할 수 있겠다 싶었죠. 다행히 취지에 공감해준 동료들이 너도 나도 꽃 화분을 사간 덕에 사내 구석구석에 나눔의 달콤한 향기가 골고루 퍼지게 됐습니다.”

지난 3월 11일 오전 10시부터 문을 연 꽃집은 그날 낮 12시, 단 2시간 만에 판매가 완료되어 좌판을 접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눔 꽃집의 판을 벌였던 김 위원장은 곧이어 “전기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가구를 위해 빛 한줄기 희망 기금에 써 달라”며 꽃 판 돈 220여만 원을 아름다운재단에 보내왔습니다.

 

사내 방송 한 번 없이, 단지 입소문에 기대어 벌인 나눔의 꽃집이 단 2시간 만에 대박을 터뜨린 데는 뭔가 숨겨진 다른 이유가 있을 법도 합니다.

‘혹시 위원장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강압 판매를…’라고 간사가 엉뚱한 생각을 하는 찰나, 김 위원장이 앉은 자리 뒤편 벽면에 걸린 현수막 하나를 가리키며 빙긋이 웃습니다.

“현수막에 쓰여 있듯 전기는 인권입니다. 전기는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권인 셈이죠. 때문에 기본적인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저소득 가구를 돕는 일은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우리 전력인들에게는 당연한 책무입니다. 때문에 그렇게나 동료들의 호응이 컸던 거죠. 요금 연체로 전기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가구의 고통을 당장의 정

책적인 해결은 어렵겠지만 오늘 전기 공급이 제한돼 힘듦을 겪는 이웃을 돕는 건 우리의 작은 관심과 실천으로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실천은 인간 중심의 운동을 지향하는 노동조합의 당연한 역할이기도 하지요.”

 

꽃집 이야기부터 시작해 공기업노조의 사회공헌, 그리고 공기업 민영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김 위원장은 이야기는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날 대화가 끝나갈 무렵 김 위원장이 머쓱해하며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실은 이 일이 바깥에 알려지면 화환을 보내주신 분들에게 예의가 아닐 것 같고, 또 노조위원장에게 무슨 화환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느냐는 비난을 들을 것 같아 애써 쉬쉬하며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사내에 소문이 퍼져 동료들이 다 알게 되었고, 아름다운재단에서도 이렇게 찾아오셨으니 이를 어찌할까요. 부끄러워서…”

꽃 향에 나비 난다고 했습니다.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김 위원장의 기발한 나눔 아이디어는 많은 동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온 천지를 나눔의 꽃 향으로 휘청거리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 이곳 전력인들이 꿈꾸는 일터의 ‘기쁜 소식’ 또한 꽃 향을 좇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오지 않을까요?

김 위원장의 아이디어 하나가 퍼뜨린 나눔의 향기는 오래도록 많은 이의 가슴에 짙은 여운으로 남을 것입니다.

빛한줄기희망기금이란?

지난 2003년 8월 조성된 ‘빛한줄기 희망기금’은, 저소득 가정의 전기요금 연체료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의 출연과 관계 전력사 및 임직원들 등의 자발적인 성금모금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 후 2005년부터는 사회봉사활동기금의 10%를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사회봉사활동기금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스스로 가입한 구좌 수에 따라 매월 급여에서 공제되는 ‘러브펀드’와 이에 비례하여 회사에서 후원하는 ‘매칭그랜트’로 구성된다.

빛한줄기희망기금은 경기침체로 전기제한 공급가정이 증가함에 따라 고통을 분담함으로써 이웃사랑 실현을 목적으로 지속적인 지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댓글 3

  1. 효율?!

    효율이라는 이름에 죽어간 노동자가 몇명인지………….

  2. 이젠 투쟁의 노조가 아닌

    이젠 투쟁의 노조가 아닌
    서민들의 진정한 어려움을 아는 노조가 됬음 좋겠군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노조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꽃가게 여신거 축하드리구요 ^^

    • mick

      좀 읽어 보고 쓰시길..

      꽃가게 열었다는 이야기인지..-_-;

      노조가 왜 투쟁을 하는지라도 좀 생각해보고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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