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눔/이른둥이 민지·문경이의 이야기

머니위크 연중기획 ‘함께 맞는 비’

      500g. 26주 만에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손바닥보다도 작았다. 의사는 부모에게 ‘포기하라’고 했다. 집안 어른들도 ‘사람구실 하겠냐’고 했다. 부모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나 귀한 생명을 차마 놓을 수 없었다. 겨우겨우 인큐베이터에서 생명을 유지하던 아이를 돌보며 지낸 세월이 벌써 6년. ‘살 수 없을 것’이라던 아이는 어느새 동네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 노는 말괄량이 꼬마 숙녀로 자랐다. 그 사이 꼬마 숙녀에게는 25주만에 450g으로 세상에 빛을 본 동생도 생겼다. 지난달 마지막 날, 일산에 살고 있는 이른둥이 가족을 찾았다. 어머니 김영유(32) 씨가 밝게 웃으며 취재진을 맞자 3형제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의젓한 첫째 오빠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 그 밑으로 민지(6) 양과 문경(2) 양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포기하라’ 했던 아이, 건강해지기까지 “선생님 저 사진 찍어요? 나 치마 입기 싫은데. 오늘 제 친구가 치마를 입고 왔는데요, 저는 치마를 안 좋아하거든요.”  낯선 취재진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온 민지는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꺄르르 웃었다. 그런 민지를 보니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아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지는 돌이 지나도록 산소 호흡기를 달고 다녔다고 한다.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해 신경이 예민해지고, 한때 자폐증 진단을 받기도 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첫달, 병원비만 해도 1000만원. 젊은 부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큰 돈이었다.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막막했다. 미숙아 지원금이라도 받아보려고 정부기관에 수차례 전화를 했다. 그러나 마치 지원금을 구걸이라도 하는 듯 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러번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김씨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만나게 된 건 민지가 돌을 넘기고 난 이후였다.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는 아름다운재단과 교보생명이 함께 진행 중인 이른둥이 지원 사업이다. 민지의 상태가 심각해져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더 이상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을 찾기도 어려웠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다솜이에 지원을 요청한 김씨는 200만원을 지원 받아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김씨에게는 새로운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사진=류승희 기자)

“조금이나마 돈 걱정을 덜어서 그런지 어느날 문득 거울 속 내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늘상 걱정을 떠안고 살았으니 내가 이렇게 찌푸리고 있었구나. 우리 민지에게 내내 이런 표정만 보여주고 있었구나. 민지가 자꾸 아픈 게 저 때문인 것만 같았어요. 엄마가 아이를 보고 웃어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어요.” 이때부터 김씨는 민지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됐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와 병원에서만 살았던 아이가 경험한 세상은 그것이 전부였다. 파란 하늘 한번 마음껏 보지 못하고 좋은 노래 한번 듣지 못했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할 때면 사람들의 시선에 아이를 감추기 급급했던 자신의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에게 세상 사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어요. 찬바람 들어온다고 싫어하던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어요. 파란 하늘을 보고 민지가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부터였다. 민지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자주 웃게 되고 건강도 좋아졌다. 1년 전부터는 밥 먹는 것도 훨씬 좋아지고, 지금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 만큼 자폐증도 호전됐다. 유난히 고생이 많았던 민지 덕분일까. 올해 2살이 된 동생 문경이는 이른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탈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민지 낳고는 며칠을 울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문경이를 낳고는 병원에 아이를 두고 전 산후조리원에 들어갔어요. 어쨌든 아이가 다시 제 품에 올 걸 아니까 내 몸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엄마가 씩씩해지면 아이도 씩씩해진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이른둥이, ‘정서적 지원’이 더 중요  사실 민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그동안 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그때마다 김씨는 이른둥이 엄마들로부터 수많은 전화를 받곤 했다고 한다. “조산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주변에서 이른둥이는 드문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엄마들도 하소연 할 공간이 없어요. 엄마들한테 전화가 오면 저는 그냥 듣기만 해요.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거죠.”  그가 특히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에 감사하는 것도 이 부분이었다. 두 아이의 치료비 등 경제적인 지원을 받은 것도 도움이 컸지만,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도 많이 얻었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던 아이와 함께 캠프 행사에 참여해 마음껏 뛰어놀고, 엄마들과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도 다솜이를 통해서였다. “이른둥이라고 모든 아이가 아픈 건 아니에요.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도 많아요. 그래서 초기에 부모의 대응이 중요한거죠.” 그는 부모노릇도 연습이 필요하고 배울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른둥이 엄마들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엄마들의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그 역시도 다른 엄마들의 얘기를 들으며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극을 받은 경험이 많다고 했다. “아이들이 건강하니 그것보다 감사한 게 없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이른둥이라고 하면 달리 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래서 엄마들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김씨. 그간의 마음고생이 그대로 읽히는 듯 하다. 그러더니 이내 “요즘은 사는 게 정말 행복하다”며 활짝 웃어보인다. 그가 요즘 새로 시작한 공부 얘기를 꺼내며 화제를 바꾼다. 대학원에 입학해 심리상담 공부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있다는 것. “다솜이를 통해 정서적 교육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더 필요한 것이 많아요. 언젠가는 저와 같은 엄마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민지나 문경이처럼 이른둥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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