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배의 아픔, 스무 배의 행복

하준, 하은 아빠. 이렇게 편지 쓰는 거 정말 오랜만이죠?

연애할 때는 가끔 편지를 쓰기도 했었는데, 결혼한 뒤에는 쉽게 편지를 쓰게 되지 않더라고요. 아마도 이런저런 바쁜 일상 때문이겠죠. 그래도 이런 기회를 통해 당신에게 편지를 쓰니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네요.

아이들이 우리에게 찾아온 지도 벌써 138일. 지난 일들이 마치 꿈같아요. 벌써 목도 가누고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며 옹알이를 하는 하준, 하은이를 보면 더욱 그렇죠. 당신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한 후 행복했던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마음에는 한가지 소망이 있었어요. 바로 당신을 닮은 예쁜 아기를 안겨주는 일이요.

하지만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던 당신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선‘시험관 시술’이라는 좀 더 어려운 과정이 필요했어요. 첫 시험관 시술에서 ‘자궁외 임신’이 되어 내가 고생하는 걸 본 당신은 ‘나는 아이 없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어요. 꼭 아기를 안겨주고 싶었거든요.

괜찮다는 당신을 어르듯 ‘마지막 한번만 더 해 보겠다’며 준비한 세 번째 시험관시술에서 하준이와 하은이가 한꺼번에 찾아왔던 그 날의 흥분은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루에 딱 한 번, 20분 동안만 허락된 아이들과의 만남. 그 짧은 시간을 보기 위해 면회를 가고, 하루하루 좋아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 힘겹게 하루를 버티는 아이들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었지만 적게 나오는 터라 제대로 먹이지도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어요. ⓒ 이하준, 이하은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하준이와 하은이를 품고 지내는 시간은 참 힘겨웠어요. 입덧에, 자꾸만 자라는 자궁근종까지. 엎친 데 덮친다고 하나요? 근종 때문에 12주부터시작된 통증만으로도 힘든데 임신 18주가 됐을 때는 ‘양수과소증’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녔죠.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나았던 듯도 싶어요. 내 몸 하나 힘든 건, 그저 버티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당신, 기억나요? 임신 32주, 평소처럼 받았던 정기검진에서 두 아이의 몸무게 차이가 500g이상 나니 당장 입원하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잖아요. 근데 입원한 다음날 새벽 갑작스레 양수가 터지고 하준, 하은이가 찾아왔죠.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당신도 그랬겠지만, 난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빨리 만날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도 못했거든요. 아마 당신도 많이 놀라고 힘들었을 거예요.

제왕절개 후 내가 마취에서 깨어나기 전,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우리 하준, 하은이를 보고 정말 많이 울었다고 했죠? 나는 아기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했으니 실감은안 나더라고요. 다음날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아이들을 봤지만, 그때도 실감이 안났죠.

하지만 인큐베이터 안에서 그 작은 몸으로 광선 치료에, 주렁주렁 호스를 달고 있는 하준, 하은이를 보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그제야 조금씩 실감이 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엄마 뱃속에서 좀 더 편안히 있어야 하는데 무엇이 32주 만에 세상 구경에 나선 우리 아이들… 1.3kg, 1.8kg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그 가벼운 몸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자책도 많이 했죠. ‘내가 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하는 생각에 하루종일 울었던 것 같아요.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에 올라온 미역국을 보니 우리 아이들은 아파서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데, 그래도 아기 낳았다고 이렇게 미역국을 먹는 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가슴이 아팠어요. 그 뒤 50일은 당신과 나, 그리고 아이들에게 참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하루에 딱 한 번, 20분 동안만 허락된 아이들과의 만남. 그 짧은 시간을 보기 위해 면회를 가고, 하루하루 좋아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 힘겹게 하루를 버티는 아이들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었지만 적게 나오는 터라 제대로 먹이지도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어요.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하준이가 서혜부 탈장 수술을 하던 날은 내가 직접 가보지도 못해서 얼마나 마음이 짠했던지. 이제 생각하니 그 조그마한 몸으로 힘든 수술도 잘 견뎌준 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네요.

건강 상태가 달라 따로 병원에서 퇴원해야했던 아이들. 하은이가 집에 오던 날은 눈이 정말 많이 와서 온갖 고생은 다했던 거 기억나요? 하준이가 집에 오던 날은 또 얼마나 추웠는지. 십여 개의 진단명을 달고 퇴원했던 우리 아이들. 그래도 집에만 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매주 2,3회 진료 받으러 병원에 가야하고, 모세기관지염에 폐렴까지, 정말 줄줄이 병에 걸릴 때는 너무 힘들었죠.

그런데 벌써 그런 일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네요. 6, 7kg을 훌쩍 넘긴 하준, 하은이. 좀 더디지만 목도 가누고 옹알이, 조금씩 뒤집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싶기도 해요. 잘 먹고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죠. 당신도 그렇죠?

조금 일찍 태어나 생긴 여러 가지 문제들도 조금씩 해결되고, 아이들도 저렇게 건강하니,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쭉 자라준다면 걱정이 없겠어요. 둘이다보니 처음엔 눈물도 두 배였지만, 둘이기에 지금은 행복이 두 배, 아니 스무 배는 행복한 것 같아요. 하준이, 하은이 제각각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둥이 가족’만이 느끼는 행복이 이런 것 아닐까 싶어요.

 

벌써 그런 일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네요. 6, 7kg을 훌쩍 넘긴 하준, 하은이. 좀 더디지만 목도 가누고 옹알이, 조금씩 뒤집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싶기도 해요. 잘 먹고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죠. 당신도 그렇죠? ⓒ 이하준, 이하은

여보, 이렇게 행복이 찾아오기까지 당신에게 참 고마운 게 많아요. 아이들 때문에 전처럼 당신에게 신경도 못 써서 미안한 것도 많고요. 아이들만큼 당신도 나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사람인데, 늘 피곤에 지쳐서 도와주지도 못하고… 그래도 항상 웃음 지으며 날 도닥여주는 당신을 보면 정말 고맙기만 해요. 동시에 두 아이들이 울면, 다른 아빠들처럼 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죠?

하지만 속상해하지 말아요. 그런 건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니까요. 오히려 내 마음 다 받아주고 짜증도, 신경질도, 속상함도 다 받아주는 당신에게 항상 고마울 뿐이니까요. 또 어떻게든 당신 여건에서 날 항상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여보, 우리 하준, 하은이를 만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면서 난 참 많은 걸 배웠어요. 엄마가 된다는 게, 부모가 된다는 일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인내해야 하며 절제해야 한다는 걸. 그렇게 많이 힘든 일이지만 참 행복한 일이라는 걸 말예요.

우리에게 하준, 하은이 엄마, 아빠라는 또 다른 이름이 생겼으니 우리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요.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은혜의 아이들이니, 기도와 지혜로 건강하게 키워요. 그래서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정을 이루도록 함께 노력해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 아이들만큼이나 당신도 건강해야 하는 것 잘 알죠? 그래야 우리 하은이 시집가는 것도 보죠.

힘든 시기마다 당신이 있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또 앞으로도 지금처럼 항상 내 곁에서 든든히 서 있어줄 거라 믿어요. 하준, 하은이 아빠 늘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하준, 하은이 엄마

 

힘든 시기마다 당신이 있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또 앞으로도 지금처럼 항상 내 곁에서 든든히 서 있어줄 거라 믿어요. 하준, 하은이 아빠 늘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 이하준, 이하은

2009년 11월 24일 1,365g 1,875g으로 태어난 이하준, 이하은 이른둥이는 2010년에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로부터 재입원 치료비를 지원받아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 이 편지는 2010년에 발간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수기집 <가족>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느보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김진아 간사 함께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낙천주의자. 존 레넌의 연인이자, 전위예술가인 오노요코의 “혼자만 꾸는 꿈은 꿈일 뿐이며,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란 말을 좋아합니다. 이른둥이를 지원하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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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1. 하은 하준이 2년하고 8개월.음.. 32개월 됐겠네요. 잘 컸을 꺼예요. 그쵸?
    엄마 아빠도 건강하게 씩씩하게!

  2. 소민맘

    잘버티고 건강하게 자라고있는 하준,하은이가 고맙네요.
    하준,하은이 부모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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