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메이커와 함께 재활치료를 완주하다

메드윌병원 남영주 의료사회복지사

ⓒ 아름다운재단

 

지구가 네모라고 믿는 사람에게 지구가 동그랗다는 것을 믿게 하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상 끝까지 달려가도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는 걸 보여주거나 함께 달리거나! 그렇게 이제까지 믿고 있던 신념 혹은 편견, 미신을 재구성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불안과 두려움이 걷히고 가능성이 드리워진다. 전혀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 가만 보면 재활치료전문병원 부산 메드윌병원 남영주 의료사회복지사(이하 ‘복지사’)가 하는 일이 그렇다. 그녀는 결코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상황과 용기를 품기 어려운 시절을 멋지게 재구성한 뒤 희망을 선사한다. 막막한 현실에 빛을 그려 넣고 앞뒤좌우위아래를 살피도록 돕는다.

 

“저희 병원에 오시면 접수하고 의사 선생님 만난 후 반드시 저를 만나게 됩니다. 재활을 처음 접하는 어머니들이 ‘3층 사업사회실로 가세요’라는 쪽지를 들고 제 방을 찾으시죠. 그렇게 마주하면 일단 치료 방향, 어떻게 진행될지 이야기해요. 더불어 아이에게 맞는 지원 정보를 알려드리고요. 음,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한 어머니들 상담도 필수입니다.”

 

장애진단 충격에 목이 쉬도록 울고 오신 어머니들을 뵙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개개인이 가진 ‘장애’에 대한 백 가지 편견 때문에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서다. 이때 필요한 건 사실과 오류를 구분하고 걱정과 편견을 구별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먼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귀를 열어야 한다. 100% 알고 있는 사례일지라도 섣불리 조언하려 들면 낭패를 본다. 남영주 복지사가 제일 잘 하는 일은 그래서 듣는 일이다.

 

“치료는 강제로 밀어붙여서 되는 게 아니에요, 아시겠지만. 어머니께서 좀 더 치료에 가까이 오시려면 불안과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돼요. 경제적인 부분이 문제라면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을 연계하고 편견이 문제라면 객관적인 정보로 가능성을 제공하죠. 저를 찾아온 99% 아이들이 재활치료를 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꿈꿔온 소아재활치료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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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주 복지사가 메드윌병원에 적을 둔 지 3년 5개월이 지났다. 처음엔 왜 유아교육을 전공한 복지사가 필요할까 의아했는데 일을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이 분야에 맞춤한가를 알게 됐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에서 비장애인 어린이를 가르치면서 통합교육에 대해 고민했어요. 장애인 어린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까 막막했죠. 돌보는 것도 할 수 없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저희 병원에서 하려는 사업이 제가 오래 전부터 꿈꿔 왔던 거라니 놀랍지 않아요?”

 

2009년 가을, 병원 오픈과 함께 출근해서 보니 정말 아무것도 세팅돼 있지 않았다. 책상도 없는 소아 치료실 방 가운데서 문득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올라왔다. 그때 서울에 있는 재활병원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아이디어를 얻고 싶어서였다.

“서울에 올라가서 많은 정보를 얻었죠. 그 중에서도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공고를 본 게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기뻤죠, 실질적으로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손에 쥔 거니까. 내려와서 치료가 비는 시간을 활용해 미술치료(종이접기 포함), 동화, 언어치료 같은 프로그램을 돌렸어요. 그렇게 조금씩 틀을 잡아 나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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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주 복지사는 요즘 하루 평균 5건, 한 달 200여건의 사례를 상담하고 있다. 3년여를 꾸준히 성심껏 복지사로 지내온 결과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라면 어머니들과의 유대관계를 들 수 있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경계심을 내비치던 어머니들이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열고 고민을 드러낼 때 남영주 복지사는 깊은 유대를 느낀다. ‘나’와 ‘너’가 만나는 ‘우리’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을 새삼 확인한다.

 

“대개 처음 가정 이루고 아기 낳아 알콩달콩 살아보려는 순간 찾아온 절대적인 위기잖아요. 그때 저 같은 유경험자를 만나니까 언니처럼 편하고 좋은 거죠. 그래서 꼭 지원 받는 게 아니라 부부 관계, 가족 관계도 상담 받곤 해요.”

 

 

극한의 갈증을 달래주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아이의 장애가 발단이 돼서 이혼한 소득 없는 싱글맘, 경제적 이유로 조부모 밑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장애아이… 3년 동안 남영주 복지사를 속상하게 만든 안타까운 사연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는 말 그대로 구세주와 같았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픈데 다른 지원은 막혀 있을 때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만 생각하면 속이 따뜻해졌다. 웬만해선 포기를 모르는 남영주 복지사라서일까. 그간 여러 재단에서 받은 지원액만 무려 1억 원여. 그 중의 절반이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의 지원이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누락되는 사람이 없도록 커트라인을 높인 게 주요했다.

 

“누군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만나고 어머니들과 가까워졌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어요. 말로만 도와드리겠다는 게 아니라 행동할 수 있어서 굉장히 뿌듯하고 좋아요.”

 

소아재활치료는 물론 학습도 가능한 재단을 만들고 싶다는 남영주 복지사. 그녀는 장애를 가진 이른둥이의 양육을 장거리마라톤에 비유했다. 다른 질병과 달리 급히 달리면 소진돼서 고꾸라지기 쉬운 소아재활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에, 아이와 엄마가 지치지 않고 잘 뛸 수 있도록 격려하고 속도를 조절해주는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 같은 조력자가 바로 자기 자신 ‘의료사회복지사’이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의 지원은 극한의 갈증을 날려버리는 생수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사업, 정말 고맙죠. 매번 전화해서 조르는 건 죄송하고요(웃음). 물론 지원액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지원되는 부분이 확장됐으면 좋겠다, 후불이 아니고 선불이면 좋겠다 싶지만 그건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이제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좋은 파트너로 지내길 바라요. 장거리마라톤 주자 이른둥이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힘차게 뛰어요.”

 

 

 

글. 우승연 사진.정김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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