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 집으로 가는 길 

몽골 부부의 자녀, 토야(가명) 이른둥이 이야기

   

엄마 품에 안긴 토야

   몽골에서 한국으로 떠나온 지도 어언 6년.   사르네(가명)는 그간 소망했던 대로 한국에서 대학원 졸업은 물론, 은행에서 직장 생활까지 성실한 삶을 살아냈다. 결코 만만치 않은 타국살이였지만 아무래도 사르네에게는 퍽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은 설렁거(가명)라는 남편을 만난 데다 자르갈(가명)이라는 아들이 태어나 축복 어린 가정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사르네는 자르갈의 동생, 토야(가명)도 임신 중이었다.   다만, 그즈음 설렁거는 취업 비자가 만료된 터라 불법 체류의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한국에서의 여정을 매듭짓고, 고향인 몽골, 울란바토르로 돌아가기로 고심 끝에 결정했다. 곧 토야만 출산하면 떠나가리라. 그들은 울란바토르에 살 집을 마련하고, 큰 짐도 부치며 그들만의 행복을 한껏 그렸다.    어떻게 살아 있는 생명한테 그럴 수 있냐고    느닷없이 토야의 태동이 심상치 않았다. 임신 22주째, 토야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진단에 사르네는 긴박하게 입원했다. 그녀는 병실의 침대에서 옴짝달싹하지 않은 채 토야의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대소변조차 누워서 가렸다. 수일에 걸친 처절한 사투, 그 모성으로 토야는 그나마 활기를 띨 수 있었다. 그러나 조산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일순 설렁거와 사르네는 치료비가 덜컥 염려됐다.   “의사 선생님한테 우리는 돈이 없어서 아기를 포기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막 야단치셨어요. 어디서 그런 얘기가 나오느냐고, 어떻게 살아 있는 생명한테 그럴 수 있냐고, 너희 나라는 그러냐고……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이 병원의 사회사업팀이랑 연결해 줬어요.“   사르네는 토야가 그대로 배 속에 머무를 수 있도록 간절히 품었지만, 열흘 만에 토야는 세상의 문을 두드렸다. 토야는 830g의 초극소저체중아인 채 수두증과 심장주격결손 및 동맥관개존증으로 여러모로 속상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토야를 낳고, 큰아이는 몽골의 친언니한테 맡겼어요. 왜냐하면 토야를 돌봐야 되잖아요. 토야가 어느 정도 나을 때까지 한 2년은 한국에 더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몽골에는 토야를 치료할 만한 병원이 없거든요.”   

   아픈 만큼 사랑해줘서 고마운 그들    실제로 토야는 인큐베이터에서 인공호흡기를 의지한 채 150여 일을 지새웠다. 설렁거와 사르네는 토야의 생명력이 그다지도 감사했다. 아니 게 아니라 집중 치료실에서도 한 달을 버틴 것은 물론 토야의 심장은 3분간 멈춘 적도 있었다. 게다가 현재 토야의 심장에는 세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가 하면 폐는 30%밖에 활용할 수 없고, 43㎝까지 부어 버린 머리에는 배까지 이어지는 관을 삽입해서 머리에 차오르는 물을 빼내고 있다.   “그런데 몇 번의 수술 중에 토야의 다리 혈관이 터졌거든요. 그때 의료진이 혈관을 한 시간 정도 잡고 있었는데, 균이 들어갔는지 토야 다리가 이렇게 부었어요. 뼈 자체가 부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지금은 어려서 수술을 못한다고 하고요.”   집 안의 한편으로 가득 쌓인 토야의 약통. 자그마한 생명은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달력은 소아과부터 안과를 거쳐 정형외과까지 토야의 진료 스케줄로 빼곡했다. 설핏 봐도 감당하기 까마득한 벅찬 현실. 설상가상 그들은 그 이면의 치료비 역시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모두 1억 6천만 원이었다. 이삿짐센터에서 근무 중인 설렁거의 벌이로는 약값만으로도 빠듯했기에 몽골에서의 삶을 위해 장만했던 집도 되팔았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방 한켠 달력에는 토야의 진료스케줄이 빼곡히 적혀있다

방 한켠 달력에는 토야의 진료스케줄이 빼곡히 적혀있다

   “토야가 병원에 있을 적에는 교통비 아끼려고 토야를 10분 면회하자마자 환승하려고 뛰어갔어요. 쓸 데만 쓰는데도 지금도 월세가 밀려 있고. 그래서 십자수나 토야를 돌보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되는 대로 하고 있어요.”   여간하지 않은 그들의 사정.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병원의 사회사업팀 하며 몇몇 복지단체의 나눔이 그것. 게다가 외국인이 아닌 인격체를 향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의 이른둥이 초기 진료비 지원 역시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내내 모자라고, 더러는 설렁거가 불법 체류라는 이유로 지원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또한 지금은 한결 낫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우리의 상황을 배려해 줘서 남편한테 비자를 내 줬어요. 2015년 2월까지요. 며칠 전에 비자를 찾아왔거든요. 합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돼서 너무 좋아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서서 나누다   아무래도 토야는 재활치료가 꼭 필요하다. 설렁거와 사르네는 토야가 영영 홀로 생활하지 못할까 봐 자못 염려된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행복을 향한 소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들은 토야의 상황만 호전되면 고향으로 떠날 계획이다. 그저 몽골, 울란바토로의 인근에서 시골 풍경 속에 터 잡아 설렁거, 사르네, 자르갈 그리고 토야…… 도란도란 네 식구가 농사짓고 살고 싶다.    
머나먼 타국 몽골에 떨어져 지내고 있는 형을 지금은 사진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머나먼 타국 몽골에 떨어져 지내고 있는 형을 지금은 사진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사실 설렁거와 사르네는 지금도 33개월로 막 접어든 큰아이, 자르갈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나마 다행으로 자르갈은 이모들 및 사촌들과 더불어 곧 한국에 다녀갈 예정이다. 그런데 사르네는 자르갈도 자르갈이지만, 그 사이 감동스럽게도 하나의 나눔을 작정하고 있었다.   “자르갈이 오면 치료받으려고 한국에 들어온 토야 같은 몽골 아기들을 위해 통역을 하려고요. 그때는 언니도 있고, 토야를 돌봐 줄 사람이 있으니까요. 사실 그 몽골 아기들은 자기 돈 내고 치료받으러 오는 거잖아요. 괜히 통역비가 따로 들면 힘들잖아요.”   그야말로 한국에서 도움을 많이 받아서 그렇다는 사르네. 그녀는 한국사람, 한국 문화, 한국 생활…… 한국에서의 삶을 아름답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한국에 머무르는 날까지, 끝까지 한국을 찬연하게 추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리라.   가만히 돌이키면 설렁거와 사르네는 머나먼 타국에서 자르갈 그리고 토야와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사실 국경을 가로지른 이국에서 가족은, 남편은, 아내는 자녀들은 실질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다. 그토록 전부를 위하여 이역만리에서 삶을 전력 질주하는 그들. 그렇게나 눈부신 그들은 이제 토야의 생명력이 경이로운 기적으로 화답할 때, 한국에서 몽골로 이어지는 하늘을 날고 있을 터였다.    울란바토르, 집으로 가는 길. 바야흐로 그들의 여정이 꿈결처럼 펼쳐지길 두 손 모아 응원한다.  

글. 노현덕 | 사진. 정김신호

      토야 이른둥이는 2013년 8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초기입원 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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