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나누고픈 내 아이의 생일 떡

나눔의 선순환, 박상현 이른둥이의 생일 기부 이야기

   

숫자를 좋아하는 상현이는 시계모으기가 취미이다. 엄마와 함께.

   상현이의 언어는 표정과 몸짓이다. 흡족한 미소, 그건 아니라는 단호한 도리질, ‘쪼금’과 ‘많이’를 표현하는 크고 작은 동작들. 관심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상현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박, 시계를 좋아하고 퍼즐 맞추기와 사진 촬영을 즐기는 상현이의 취향과 개성을 알 수 있다. 기실, 카메라는 상현이가 추억을 이야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상현이는 자신이 찍은 사진 속에 기억하고픈 과거의 한 순간을 찾아내, “그때, 정말 재미있었어”, “여기 또 가고 싶어”와 같은 소감을 전한다. 100피스짜리 퍼즐도 척척 맞추고, 이미지와 공간 기억력이 뛰어난 아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혜경씨는 상현이의 언어를 가장 빨리 알아듣는 사람이다. 말로 하면 쉬울 것을 온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아이가 안타까워 더 주의 깊게 듣고, 숨소리까지 기민하게 살피는 혜경씨는 아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아니, 눈을 뗀 순간조차 상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엄마이기에 가능한 초감각이다.   혜경씨는 2007년부터 매년, 상현이의 생일에 맞춰 정기 기부를 한다. 기부단체는 아름다운재단을 비롯해 심장재단과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까지 3곳. 모두 상현이가 겪어낸, 또 지금도 앓고 있는 질환과 관련된 기관들이다. 2005년 11월, 상현이는 선천성 심장 기형과 염색체이상 희귀질환을 가지고 이른둥이로 태어났다.   

   “상현이는 백일도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지냈어요. 백설기를 병원에서 돌렸죠. 그때 생각했어요. 퇴원하면 상현이의 이름으로 해마다 생일 떡을 나누겠노라고. 내 아이를 비롯해 세상 모든 아이들의 건강과 복을 비는 마음을 더 많은 이웃과 나누고 싶었어요.”    상현이의 이름으로 하는 정기 기부는 ‘생일 떡’에 다름 아니다. 가장 힘든 시간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이자, 같은 아픔을 겪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다.   삶으로 기적을 이어온 아이  

 

 산전검사에선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었다. 아이가 좀 작긴 했지만 첫째도 작게 낳았던 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38주차에 제왕절개로 태어난 상현이는 이내 호흡곤란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출생 당시 몸무게는 2.2kg. 간신히 인큐베이터만 면한 상현이는 그 작은 몸으로 심장 수술을 견디고 연쇄적으로 찾아온 폐, 신장 등의 질환을 감당했다.   심정지도 여러 번 왔다. 병원 복도를 울리며 다급하게 뛰어온 의료진이 상현이를 둘러싸던 풍경은 지금도 선뜩한 기억이다. 중환자실에 오래 있다 보니 다른 아기들이 떠나는 모습도 숱하게 목도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참 많이도 울었다.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마지막 선고를 받기도 했어요. 새벽녘, 애 아빠와 종탑에 올라 하나님 뜻대로 하시라고 체념하듯 기도도 했죠. 한데 기적적으로 상현이가 그 고비를 넘겼어요. 상현이의 염색체 이상은 담당 의사선생님마다 처음 접하는 사례일 만큼 희귀한 질환이에요. 학계에 보고된 몇 안 되는 사례만 봐도 예후가 상당히 안 좋다고 해요. 기대 수명도 10년, 15년 정도라던가…. 처음엔 너무 암담했지만, 이젠 기록은 기록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기록은 우리가 갱신하면 되는 거니까.”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입원생활 1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또 1년을 보낸 끝에 상현이는 다소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산소 호스를 24시간 끼고 있어야 했지만, 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혜경씨는 기뻤다. 드디어 네 식구가 한 집에 모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2년 남짓 상현이가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엄마는 휴직계를 내고 상현이를 전담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한 모성은 필사적이었다. 아빠는 아빠대로 병원과 집을 오가며 상현이와 네 살 터울인 큰딸을 보살폈다. 큰딸 역시 어렸고 엄마가 필요한 시기였지만, 아픈 동생에게 맞추어진 엄마의 시계를 어렴풋이 이해했다. ‘딸 바보’를 자처하는 아빠가 늘 함께 했기에,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모 등 온 가족의 관심이 지극했기에 엄마의 잦은 빈자리를 감당할 수 있었다.    희망의 증거가 되길  

큰 아이의 입학식이 있던 날,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한 상현이와 찍은 소중한 가족사진

   “온 가족이 똘똘 뭉쳤어요. 간혹 아픈 아이가 태어나면 니 탓, 내 탓을 가르며 붕괴되는 가정도 있다는 데, 저희는 더 끈끈해진 거 같아요. 제가 다시 직장에 복귀하고부턴 양가 부모님들이 번갈아가며 아이를 봐주셨고요, 애들 이모도 도와줬어요. 최근,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기 전까지, 오로지 가족들 힘으로 버텼죠.”    시련은 가족의 힘을 재발견하게 했고, 삶의 소소한 행복을 일깨워줬다. 또한 관심의 영역을 내 가정만이 아닌 우리 사회로 확장시켰다. 상현이를 통해 장애인 복지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혜경씨는 남편과 함께 사이버대학에 편입하여 특수교육과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훗날, 상현이가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취약계층과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 이 사회의 그늘을 밝히는 촛불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겪은 아픔만큼 타인의 아픔에 눈을 뜬 이들의 저력이다.    

엄마는 아들의 이름으로 생일 떡을 오래 오래 더 많이 돌릴 수 있길 바람한다

   “하루하루, ‘오늘만, 이번 주만’ 하며 살아내기 바빴는데 이렇게 다 지난 일이 되었네요. 한창 힘들 땐 어떤 위로도 들리지 않지만, 결국 다 지나간다는 것만은 진실이에요. 힘들면 주위에 힘들다고 말하세요. 내 아이가 아프다고 말하는 데 우리사회는 아직 익숙지 않지만, 아프면 아프다 말하고 도움 받을 곳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세요. 한 고비 넘긴 후 내가 받은 선의를 나누겠다는 결심도 중요할 거 같아요. 나눔은 돌고 돌아야 하니까요.”    상현이는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산소호흡기를 뗐고, 유동식 대신 밥을 먹을 수 있게 됐으며, 손아귀 힘이 약해 연필을 쥐고 글씨를 쓰진 못하지만 크레파스를 쥐고 색칠을 한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친구도 늘었다. 온순하고 다정한 상현이는 친구들에게나 선생님께 인기가 좋다. 음악 수업을 좋아하고, 숫자도 1부터 100까지 셀 수 있다.   물론 상현이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다. 심장판막협착증, 만성신부전증, 호흡곤란 등이 남아있고, 물리치료와 언어치료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태어난 것도, 숱한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것도 기적인 상현이는 그 자체로 희망의 증거에 다름 아니다. 혜경씨는 상현이와 함께 또 하나의 기적을 갱신하고 싶다. 아들의 이름으로 생일 떡을 오래 오래, 더 많이 돌릴 수 있기를. 엄마의 바람은 그것 하나다.   

글. 고우정 ㅣ 사진. 이현경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상현 이른둥이는 2006년 5월 재입원치료비 지원을 받았으며, 현재 생일기부를 통해 나눔의 선순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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