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고, 함께 사는 삶을 발견하다

신정현 이른둥이 이야기

   

이른둥이 정현이와 할머니

이른둥이 정현이와 할머니

   다가구주택이 촘촘히 이웃한 골목길에 들어서자 웃음꽃이 만발하다. “아이고~ 예뻐라.”, “그새 많이 컸네?” 유모차 하나를 둘러싼 이 기분 좋은 소란은 웃고, 옹알이 하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행복을 흩뿌리는 아이, 정현이 때문이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정현이 외할머니는 이렇듯 손녀딸 자랑을 하며 이웃의 덕담을 듣는 게 꿈만 같다. 손주 자랑이야 세상 모든 조부모들의 특권이건만, 그 당연한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2013년 9월 25일, 정현이는 28주 3일 만에 990g으로 태어났다. 임신중독증으로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워 조산이 불가피했던 것.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아기는 작디작았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주사줄을 꽂고 삽관호흡기를 부착한 채 분투하는 여린 생명을 보며 엄마 정온주 씨는 많이도 울었다. 하루 10분에 불과한 면회시간도 소중했다.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었지만 아이 옆을 잠깐이라도 지키고 싶어 석 달 간 하루도 빠짐없이 신생아중환자실 앞을 서성였다. 더러, 면회가 일절 금지될 때도 있었는데, 이는 어느 아기에겐가 위중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였다. 내 아이의 일이 아니어도 마음 졸이며 기도했다. 고통의 연대는 나의 슬픔과 타인의 슬픔을 가르지 않았다.   “처음엔 엄청 울었죠. 오죽하면 간호사 선생님이 울지 말라고, 울면 면회 안 시켜 줄 거라고 엄포를 놓으실 정도였어요. 엄마가 우는 거 아기도 다 안다고, 엄마부터 강해져야 한다고…. 그 말씀 듣고 마음 단단히 먹었어요. 요 작은 아기가 언제 클까 싶었는데, 어느덧 3개월이 지나고 원래 정현이의 출산 예정일 쯤 인큐베이터를 졸업하게 됐죠.”   인공호흡기를 떼기까지의 과정이 다른 아기들에 비해 지난했지만, 그래도 정현이는 경과가 좋은 편이었다. 선천적인 장애도 없었고, 이른둥이에게 우려되는 심장․폐․망막 쪽의 질환도 발생하지 않고 고비 고비를 잘 넘겼다. 그래서 끝인 줄 알았다. 아기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으니, 이제 한껏 젖을 먹이며 통통히 살찌우리라 생각했다. 한데 퇴원 후 15일 쯤 되었을까. 정현이의 호흡이 이상했다. 아기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병원생활은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재입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언제 아팠나 싶을 정도로 해맑게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정현이, 그간 엄마가 흘렸던 수없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만 같다

   응급실에 가자마자 호흡기 치료부터 했다. 흉부 X레이를 찍고 신생아중환자실로 입원절차를 밟았다. 모세기관지염이었다. 영유아기 아동에게 흔한 질병이지만 면역 기능이 떨어지는 이른둥이나 소아들에겐 그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곤 하는데, 정현이가 바로 그러한 케이스였다.   “의사 선생님들마다 ‘아이가 기침은 하나요?’라고 물으시는데, 처음엔 왜 그걸 묻는지 몰랐어요. 알고 보니 스스로 기침을 통해 가래를 떨어드릴 수 있어야 한다더군요. 그런데 정현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기침을 못했어요. 아무래도 발달이 더뎠으니까요. 호흡을 못하니 모유 수유도 어려웠어요. 120cc를 유지하던 아이가 30cc도 먹지를 못하니, 가슴이 아팠죠.”   약과 수액을 맞느라 그 작은 몸에 다시 주사 줄을 3개씩 꼽았다. 혈관을 찾는 데만 40여분이 걸렸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워낙 혈관주사를 많이 맞은 이른둥이들은 혈관이 숨거나 휘어지기 일쑤인 까닭. 주사바늘을 여기저기 찌르며 혈관을 찾는 동안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다가 축 늘어졌다. 그 과정을 사흘에 한번 꼴로 겪으며, 엄마도 피가 말랐다.  행여 아이가 뒤척이다가 선 하나라도 빠질까 싶어, 온주 씨는 정현이 옆을 떠나지 못했다. 젖병을 씻거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순간도 불안했다. 사정이 그러한데 잠이라고 잘 수 있었을까. 딱 붙어있는 가래를 떨어뜨려 줘야하기에 하염없이 아이의 등을 두들겨줬다. 호흡기 치료를 할 때 발생하는 기계음도 상당했다. 정현인 밤새 여섯 번이나 치료했는데, 6인 병실에서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을 신경 쓰느라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모세기관지염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첫 입원 당시, 퇴원까지는 12일이 걸렸다. 그러나 퇴원 후 또 1, 2주 집에서 지내다보면 같은 증상이 발생했다. 아무리 조심조심해도 아이는 감기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됐고, 이내 호흡곤란이 야기됐다.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일이 거듭 반복되며, 온주 씨는 지쳐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막막했다.   지난 해 말부터 올해 6월까지, 재입원 횟수만 6회. 매회 입원 기간은 짧아야 일주일이었고, 병원비는 매번 백 단위로 들었다. 단연, 병원비 부담도 컸다. 출산 당시 국가 지원을 받긴 했지만 재입원에 대한 지원은 전무했던 까닭. 보험을 들지 못한 상황이라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병원 사회복지과의 문을 두드린 건 정현이가 세 번째 재입원을 했을 때였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악몽 속에, 엄마는 주저앉지 않고 용기를 냈다. 그렇게 해서 소개받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치료비를 지원받게 된 온주 씨는 다시 한번 정현이를 위해 마음을 굳게 다졌다. 나눔의 손길은 경제적 부담만 덜어준 것이 아니라 고립무원의 외로움도 덜어주었다.   이웃과 함께 키운 ‘우리’의 아이들  

엄마 품에 안겨 곤히 잠든 정현이

  최근 3개월, 정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일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른둥이들에겐 성장을 통해 해결되는 문제들이 많다. 끝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다음 달, 첫 돌을 앞둔 정현이는 젖병을 물리면 한 손으로 잡고 힘차게 빨아먹는다. 뽀얗고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잦은 병원생활로 예민할 법도 하건만 타고난 성격이 순해 잘 놀고 잘 잔다.   덕분에 온주 씨는 맏딸 정원이를 안아줄 시간도 확보했다. 아픈 아이부터 살려야했기에, 엄마가 한창 필요한 네 살배기에게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엄마와 도통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정원이의 안간힘이 온주 씨는 안쓰럽기만 하다. 혼자 둬도 까륵까륵 웃고 잘 노는 정현이를 바라보며 엄마의 사랑이 고픈 정원이를 무릎에 앉히는 건 그 때문이다.  

곧 첫돌을 맞는 정현이

  불을 꺼도 잘 수 없는 병실에서 가쁜 숨을 내쉬는 정현이를 뜬눈으로 지키며 외로움에 사무칠 적도 많았다. 앞날은 막막하고 행복한 기억은 아득했다. 하지만 온주 씨는 그 어두운 터널 끝에서 ‘사람’을 발견했다. 자신이 아픈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주변 사람들의 손길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거더라고요. 정현이와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이웃에 정원이 또래를 키우는 엄마가 정원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와서 밥까지 챙겨 먹이는 걸 보고 너무 고마웠어요. 시어머니, 친정엄마도 도와주셨지만 이웃까지 나설 줄은 몰랐거든요. 가족과 이웃이 얼마나 든든한 배경인지, 절실히 느꼈죠. 나누며 함께 사는 삶의 가치도요.”  

글. 고우정 | 사진. 이현경

   
신정현 이른둥이는 2014년 4월 부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사업을 통해 재입원치료비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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