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감동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생명

김예은 이른둥이 이야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지원을 받은 김예은 이른둥이 가족

  이른둥이는 여러 가지 병마에 노출될 수 있는 탓에 갖가지 검진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극소저체중아로 태어났던 이른둥이, 예은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은이는 신생아 패혈증에 감염됐던 터라 그것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혈액검사가 불가피했다. 주삿바늘은 한 뼘 조금 넘는 예은이의 전신으로부터 30분쯤 꾹꾹 눌러 쥐어짜 낸 혈액을 매일매일 추출했다. 그러기를 2주째쯤, 그제야 예은이의 병원균을 겨우 밝혀낼 수 있었다. 

사실 혈액검사는 가장 기초적인 테스트였다. 하지만 예은이는 온몸을 내던져야 했다. 이처럼 이른둥이는 그 같은 일상, 그 이상을 지금도 살아내고 있다. 

죽음을 뚫고나와 삶으로 피어나다

1080그램의 작은 몸으로 태어난 김예은 이른둥이

1080그램의 작은 몸으로 태어난 김예은 이른둥이

임신한 지 26주 남짓, 진통이 감지됐다. 완전 전치태반으로 내내 노심초사했던 임은영 씨(39)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그녀는 오직 예은이를 태중에 두기 위해 다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것으로 세 번째 입원이었다. 의사는 이것저것 조산 방지 약물을 투여했다. 가까스로 진정을 찾고 퇴원한지 일주일 후, 진통은 또 다시 덮쳐왔다.

 

“구급차에 실려 다시 병원으로 갔거든요. 진통에 출혈도 만만치 않아서 30분마다 제각각의 약물을 투여 받았는데, 그 부작용들 때문에 지옥을 경험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 나서는 출혈이 그럭저럭 잡히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상황이 나빠져서 다음날 수술실에 들어가게 됐죠.”

태아는 물론이고 산모의 생명마저 위태로운 절박한 순간. 수술실 앞에서 가장, 김영근 씨(41)는 망연자실했다. 모녀가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는 무기력했다. 그저 기도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사나흘 같은 서너 시간이 흘러갔다. 집도의는 수술이 기적적으로 성공했다고 전달했다. 천만다행으로 임은영 씨도, 예은이도 무사했다. 28주 5일, 예은이는 그렇게 1,080그램으로 태어났다.

“예은이를 면회할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첫째 딸인 가희(5)가 태어났을 때랑 다르게 예은이는 뼈랑 가죽만 있더라고요. 주삿바늘 꽂고 산소 호흡기까지 달고 있으니 정말 속상했어요.”

절망에서 희망으로, 세상은 아름답다

힘든 시간을 잘 버텨준 예은이에게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임영은&김영근 부부

힘든 시간을 잘 버텨준 예은이에게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임영은&김영근 부부

우여곡절 끝에 예은이는 탄생했지만, 이른둥이의 삶은 여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은이는 신생아 패혈증으로 진균에 감염돼 혈소판이 파괴됐다. 그뿐 아니라 선천성대사이상을 진단하는 수치도 꽤 높았던 데다 미숙아 망막증도 꼼꼼히 예후를 살펴봐야 했다. 발달 단계를 체크하며, 자잘한 검사들을 버텨낸 후에야 비로소 예은이는 퇴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소아과랑 안과랑 다 정상이에요. 키나 몸무게는 미달이지만 그나마도 출생 예정일을 기준으로 하면 또래랑 비슷하고요. 정기검진은 재활의학과랑 심장 초음파 검사가 예정되어 있긴 한데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출산한 지 8개월, 예은이가 사력을 다해 살아줬다는 깨달음에 임은영 씨는 예은이한테 사뭇 감사했다. 그래서 부모로서 예은이한테 보답하는 삶을 살아내려 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담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개척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인 김영근 씨의 소득으로 일주일마다 수백 만 원씩 치솟았던 예원이의 병원비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이래서 돈 때문에 아기를 포기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에 돈 때문에 아기를 포기한다면 부모는 남아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아름다운재단과 보건소, 병원의 사회복지과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누군가는 신문사에 예은이 사정을 제보 해주셨고, 같은 공동체의 목사님들도 모금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나눔은 다시 나눔으로 자라난다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예은이의 웃음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예은이의 웃음

퇴원 후 예은이를 양육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가령, 감기라도 들면 모세기관지염으로 확장될 확률이 90퍼센트였다. 그래서 임은영 씨는 온종일 외출 없이 예은이 곁에 붙어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가희한테 더러 소홀해지기도 하지만, 가희는 서운한 법 없이 자신의 동생인 예은이를 더욱 챙기고 나섰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를 향한 사랑이 쪼개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 사랑은 더 커지더라고요. 이를테면 가희의 손짓 발짓에 예은이가 웃고요, 예은이의 웃음에 가희는 더 몸짓해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기쁘더라고요.”

그야말로 예은이의 웃음에 가족은 행복했다. 하지만 예은이의 영향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말 한마디 없이 예은이는 가족들을 나눔으로 이끌었다. 임은영 씨는 우연히 TV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의 한 가족 이야기를 시청하게 됐다. 남편 없이 흑인 여인이 꼬맹이 세 자녀를 키우고 있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었지만 흑인 여인은 갓 난 막내를 돌보느라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녀들을 굶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임은영 씨는 제 새끼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여인의 절절한 모성이 참 애달팠다. 돌이켜 보면 그녀 역시 인큐베이터 안의 예은이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었다.

“그 프로그램을 가희도 같이 봤는데요. 그때 가희의 마음속에도 뭔가가 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희한테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저금통을 만들어줬어요. 그 같은 나눔의 시작은 다 예은이 덕분이었죠. 예은이를 통해 나눔의 소중함을 깊이 깨달았거든요.”

 

이른둥이 였던 예은이는 나눔으로 절실했고, 나눔으로 이른둥이의 삶을 살아낼수 있었다. 임영은씨와 김영근씨는 그 나늠을 마음 속에 아로새긴거다.

이른둥이 였던 예은이는 나눔으로 절실했고, 나눔으로 이른둥이의 삶을 살아낼수 있었다. 임영은씨와 김영근씨는 그 나늠을 마음 속에 아로새긴거다.

가족들에게 예은이는 나눔의 상징이었다. 이른둥이였던 예은이는 나눔이 절실했고, 나눔으로 이른둥이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임은영 씨와 김영근 씨는 그 나눔을 마음속에 아로새긴 거다. 두 딸에게 그 나눔을 감동으로 가르치려는 거다. 너도 나도 경쟁을 부추기는 이 시대에 나눔 양육이란 그 자체로 눈부셨다. 그래서일까, 머지않아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나눔을 펼쳐갈 가희, 그리고 우리의 이른둥이 예은이의 얼굴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글. 노현덕  사진. 임다윤

김예은 이른둥이은 2014년 9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사업을 통해 입원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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