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선택

김단아 이른둥이 이야기

우리에게 찾아온 ‘생명’이기에

어려운 문제일수록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제거하고, 온전히 스스로 현재를 지배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이제 막 당도할 미래가 변한다. 수초 전에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순 없더라도 말이다. 김승균·고은주 부부가 이른둥이 단아를 키우며 터득한 이치다. 

같은 학교 같은 과 선후배였던 부부가 서로를 알아본 건 3년 전. ‘화학’이라는 매개로 정보를 공유하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따뜻하고 행복한 1년여의 일상이 지나고 단아가 들어섰다. 임신 5주차. 예상 밖의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아직은 두 사람 모두 학생이었고 미래보다 현재를 사는 자유로운 청춘이었다.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는 익숙지 않았다. 

“처음 임신 소식 듣고 아내가 놀랄까봐 괜찮은 척 하기는 했어도 솔직히 혼란스러웠어요. 이제 4학년인데 앞으로의 일이 난감했죠.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꼭 낳아야겠다는 거였어요.”

은주 씨도 승균 씨와 다르지 않았다. “첫 진료 땐 아기가 잘 있다고 했는데 2주 후 아프다더라고요. 5주차에 처음 갔으니까 7주차에 신장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죠. 9주차엔 큰 병원으로 옮기랬어요. 심각하다면서요.”

생명이 들어섰다는 걸 알게 된 지 고작 한 달,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밀어닥쳤다. 신장과 심장이 아픈 아기라고 했다. 급작스런 변수를 소화하기도 전에 마주하게 된 무거운 사실. 뭔가를 결정 내려야 할 듯한 압박이 버거웠다. 누구라도 도망가고 싶은 순간, 게다가 그들은 자타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경제력 없는 어린 학생이었고 아직 결혼 전이었으며 예상하지 못한 임신에 아픈 아기였다. 어쩌면 답은 정해졌는지도 몰랐다. 다수의 논리, 합리적 선택이란 뻔했다. 그러나 김승균·고은주 부부는 자신들을 찾아온 생명 앞에서 다수의 합리라는 이상한 선택지는 버렸다. 그리고 각자의 부모님을 찾아 상황을 말씀드렸다. 

아픈 게 잘못은 아니다… 생후 1년, 13번의 수술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멍한 엄마 모습에 너무 죄송해서 눈물이 났어요. 그때 엄마가 ‘이게 왜 울 일이니. 네가 사람을 죽였니, 사람을 때렸니, 거짓말을 했니. 그게 아닌데 왜 너희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해’ 그게 말씀이 힘이 됐어요.”

은주 씨는 세상의 시선에 주눅 들지 않았다. 낡은 편견보다는 이제 세상에 태어날 ‘단아’가 중요했다. 승균 씨가 어린 나이에 준비 없이 아이를 낳는 일이 무책임하다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도 책임져야 할 실체 ‘단아’ 때문이었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 자체는 실수일지 몰라도 그 이후에 어물쩍 넘어가는 건 실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승균 씨는 실수 뒤로 숨지 않았다. 단아라는 생명은 분명 존재했고 그들에게 소중했다. 김승균·고은주 부부는 그렇게 몇 번의 고개를 넘어 자연스러워서 힘이 센 아기와 마주할 수 있었다. 

“9개월 됐을 때 병원에서 아기를 빨리 꺼내야 한다고 수술 날짜를 잡자더라고요. 그리고선 항문도 질도 자궁도 없을 수 있다, 뇌가 조금 안 좋은 상태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수술 후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를 보는데 이 작은 아기에게 아픈 곳이 그렇게 많은가 싶어 속상했어요. 이게 누구의 잘못인 것도 아닌데 아기한테는 미안했어요.”

단아는 36주째인 2014년 6월 5일에 태어났다. 2090g의 몸에 여러 기형을 가진 채였다. 그리고 세상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첫 번째 수술을 치렀다. 항문이 없어 대변 배출이 어려워서 인공항문을 만들었다. 한 달 후엔 몸무게가 찼다고 퇴원하라는데 아직도 너무 작은데 이대로 괜찮을까 절로 걱정이었다. 호스가 빠지면 전신마취 수술로 다시 끼워야 하는데 집에서 괜찮을까 노심초사였다. 실제로 두세 번 수술을 한 뒤 은주 씨는 다른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긴 후 소변 호스를 뺀 은주 씨는 뭔가 다른 방법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이후부터 아기가 어떻게 자라나 관심 갖지 않고 기술적으로만 접근하는 분위기는 지양했다. 끊임없이 단아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길이 없어도 낙담하지 않는 게 그들 부부였다. 그것이 1년여 동안 13번의 수술을 수용하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토대였다.

 “수술 외에도 잔병치레가 많아서 조금만 더러운 환경에 노출이 돼도 불안하고 그래요. 작년 9월엔 기관지염에 걸려서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살았어요. 면회밖에 안 되는 그곳에서 단아 혼자 견딘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죠. 그렇게 80일을 지내고 퇴원해서 지금은 이렇게 건강해요. 요즘처럼 맨몸에 기저귀만 채워도 된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정말 강한 녀석이에요.”

숨통의 틔게 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아이만큼 강한 부모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승균·고은주 부부. 이 앳된 부부의 단아를 제외한 가장 큰 고민은 가계 수입이다. 반복적으로 입원하고 수술해야 하는 상황에서 돈은 바로 단아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 승균 씨가 받는 연구실 연구비와 양가 부모 지원금, 국가에서 주는 양육수당으로도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병원비 지출이 없을 때의 말이다. 6세 이하는 비용이 거의 없는 외래진료인데도 비급여검사 때문에 80만 원을 지불해야 했던 황망한 순간도 있었다.  

“누가 잘못했거나 죄를 지었다면 그 죗값을 치른다는 의미로 어렵게 살아도 돼요. 하지만 의사들조차 과학적으로 찾지 못하는데 그걸 어째서 부모와 가족만의 책임으로 치부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단아가 받고 있는  산정특례도 더디고 그때까지 1주일 지났을 뿐인데 병원비가 400만 원을 웃돌고… 보건소에선 합병증 지원은 안 되고. 이 부분에 대해 복지부에 문의해도 매뉴얼대로 읽기만 하고.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할 때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만난 거예요. 이런 민간단체가 있다는 게 정말 숨통이 트였어요.”

 *산정특례: 희귀난치성질환자로 확진 받은 자가 등록절차에 따라 공단에 신청한 경우 본인부담률을 10%로 경감하는 제도. 건강보험가입자 중 담당의사로부터 희귀난치성질환자로 확인받은 자로서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에 관한 기준에 의해 희귀난치성질환 산정특례 대상 142종 질환 군에 해당하는 자. 지원기간-5년.

2014년 10월부터 최대지원금 1,500만 원의 재입원 치료비 지원을 받게 된 단아는, 수술할 때마다 70%를 지원받을 수 있다. 2015년 7월까지 다섯 번의 재입원 비용으로 약 760만 원을 지원받았다. 국가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을 민간에서 지켜주고 돌봐준다는 건 김승균·고은주 부부에게 놀라웠다.

 “재단에 기부하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는 자세하게 모르지만, 그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기부했는지는 느껴져요. 이런 마음을 같이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게 정말 큰 위안이 돼요. 단아가 앞으로도 수술을 끊임없이 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에도 힘이 됩니다. 둘러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 1년여, 단아는 온몸으로 삶을 향해 달렸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과거의 재연은 아니었다. 단아는 자신을 주축으로 매순간 달라진다. 그런 단아와 마주하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김승균·고은주 부부가 선택한 아름다운 삶이 반짝인다. 

글. 우승연 | 사진. 김흥구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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