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삶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살아있는 희망산타, 배우 이광기

 

 

 

모퉁이를 돌면 상상도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현실은 그 어떤 허구보다 극적이다. 배우 이광기 씨에겐 다솜이 희망산타와의 만남이 그렇다.

 

“바쁠 땐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그날은 이상하게 SNS를 보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알았죠, 이른둥이와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요. 간사님이 남겨놓은, 이러저러한 행사가 있는데 사회를 봐주시면 어떻겠느냐는 메시지를 읽곤 마음이 끌렸어요. 삶을 지키려는 아이들의 희망산타라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연락드렸습니다.”

 

4년 전 불의의 사고로 일곱 살 난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기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아이와 부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위로가 얼마나 큰 뒷심이었는지 몸소 체험한 그에게 다솜이 희망산타는 오래 전 약속처럼 자연스러웠다.

 

“잊고 살았던 산타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니 참 좋은 아이디어다 싶었죠. 올해로 아홉 번째라는 사실도,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나눔에 동참한다니 놀라웠어요. 이 순간이 뿌리 내려 싹을 틔우고 열매가 열리게 되리란 걸 믿게 됐습니다. 그 열매 중 하나가 되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거예요.”

 

12월 5일 11시 30분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다솜이 희망산타 스케줄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새겼다. 사실 1월 초 방영될 드라마 촬영과 월드비전 홍보대사, 희망연대실천본부 희망대장, 희망서울 홍보대사 등으로 활동하느라 여념이 없는 연말이었다. 웬만하면 그 어떤 섭외도 거절하는, 사적인 일정은 조정할 수 있지만 공적인 모임은 피할 수 없는 난감한 시절에 눈에 든 다솜이 희망산타였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했다. 제발 그날만은 다른 스케줄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이른둥이와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랐고 이내 소망을 이뤘다.

 

“신기하게도 딱 이 시간만 스케줄이 비었어요(웃음).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 예상은 했어요. 본격적으로 나눔 활동을 시작하게 됐던 아이티에서도 마찬가지였거든요.”

 

 

 

아들을 보내고 두 달 뒤, 아이티 지진 소식을 듣고 현지로 날아간 그는 폐허 속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용했다. 나이도 성별도 언어도 다른, 심지어 생면부지인 이방인과 고통을 나누며 그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의 의미를 재정립했다. 그저 할 뿐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신과 연결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돕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아들의 사망보험금 전액을 아이티 긴급구호 후원금으로 기부로도 모자라 3년째 아이티 후원 기금 마련 자선 경매를 여는 이유다. 그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작고 소외된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기적의 순간을 포착한 뒤 고통스런 세계를 살아낼 만한 진실과 독대했다.

 

“사람들이 물어요. 봉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가 기부가 어떤 의미이냐.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이러스 같더라고요. 거부할 수 없이 다가와 순식간에 잠식해서는 전혀 다른 삶을 던져놓으니까요. 아이티에서 나만 외롭고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요. ‘긍정을 불러오는 치유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어렵게 얻은 막내 준서가 밝게 웃을 때, 석규 이름을 딴 아이티의 학교를 떠올릴 때마다 기적을 되뇌게 되더라는 이광기 씨. 그제야 그는 매 순간이 기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덧붙인다. 굉장한 일이 실현돼서 기적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응원 메시지는 ‘지금 이 순간의 삶’ 그 자체에 방점이 찍힌다.

 

“고통을 지나오며 거머쥔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저 살아있는 게 기쁨이고 행복이라는 거예요. 육체는 힘들겠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인큐베이터라는 세상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른둥이에게 그것만한 힘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절대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지켜주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모두.”

 

 

*배우 이광기님은 2013년 다솜이희망산타 발대식 행사의 진행(사회자)을 ‘재능기부’해 주셨습니다.

 

글. 우승연 사진.정김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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