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엔 ‘좋은 돈’, ‘나쁜 돈’이 없다지만

 

‘모금가의 윤리적 딜레마’ 연구논문 눈길기업 모금, 수혜자 노출 등 다양한 갈등 논의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오는 21일 ‘기부문화 기획연구’ 발표회 개최

“그림이 안 나오니까 계속 강한 것만 하는 거죠. 이런 식이 과연 맞나

“사회이슈를 다루려고 하면 기부자들이 줄어들 때가 있어요. 갈등하죠.

“받을 때는 좋고 나쁜 돈이 없다고 배웠어요. 기준에 따라 다르긴 한데

(기업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들여주죠. 단체 내부에서는 종업원이냐고 욕먹어요.

 

한국 모금단체들의 생생한 고민과 갈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이민영 고려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아름다운재단 연구위원)와 윤민화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BK21플러스 연구원은 국내 주요단체들의 모금가 12명을 인터뷰한 뒤 ‘모금가의 윤리적 딜레마’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연구에 참여한 실무자들은 3~10년간 경력을 쌓은 모금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소속된 조직은 유형별로 모금전문기관·시민사회단체·사회복지전문기관 등이며, 규모별로도 대·중·소로 나뉘어 다양한 단체의 경험이 연구에 반영되었다.

이번 연구조사는 아름다운재단 기획연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는 오는 21일 서울시NPO지원센터 강당품다에서 기획연구 결과 발표회를 개최한다. 비영리조직 실무자, 관련 연구자는 물론 일반 시민도 발표회에 참여할 수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매년 기부문화 기획연구를 발표하고 있으며, 특히 올해는 △한국인의 상호부조 행동분석 △비영리조직 모금활동의 성공과 실패요인 분석 △모금실무자의 윤리적 딜레마 연구 등 ‘한국적 맥락에서의 기부문화’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모금가들의 딜레마는 ‘옳은 것’과 ‘옳은 것’ 사이의 갈등”

대다수 모금가들은 기업 기부금에 대해서 고민을 토로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들의 기부금, 소송 과정에서 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기부금과 관련해 갈등을 겪었다.

많은 단체들이 조직의 목표와 방향에 부합하지 않거나 조직의 명예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부금, 불법적 행위나 과정을 통해 조성된 기부금 등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금 실무에서는 ‘좋은 돈’과 ‘나쁜 돈’의 기준을 만들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단체들이 기부금 형성 경로나 기부자의 의도를 미리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상황은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모금과 지원사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딜레마가 컸다. ‘모금이 잘되는 사업’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기부자가 가장 선호하는 모금은 일대일 아동결연이다. 그러나 모금가들은 대부분 이 사업에 큰 딜레마를 느꼈다. 공동체 내의 다른 수혜자들이 차별을 느끼는데다가 예쁜 아동에게 기부가 쏠리기 때문이다.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는 ‘이슈레이징’ 방식의 캠페인이 기부자들에게 외면받는 것도 현실의 벽이었다. 한 모금가는 “이슈 파이팅을 하면서 정부와 갈등을 일으키면 기부자들이 부담을 느껴서 떨어져 나간다”고 말했다.

수혜자 노출과 관련해서도 모금가들은 원칙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겪었다. 원칙적으로는 ‘수혜자의 인격을 존중해야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선정적인 이미지나 메시지가 모금에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한 모금가는 “처음에는 홍보자료에 수혜자의 손 사진만 싣다가 그 다음엔 뒷모습을 싣고, 어느새 앞모습을 싣고자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토로했다. 다른 모금가 역시 “당장 죽어가는 애들은 아주 일부분이지만, 일반적인 내용은 그림이 안 나오니까 강한 것만 한다”고 말했다.

한편, 외국에서는 이 같은 딜레마를 다루기 위해 이미 지난 2006년 국제모금가협회(AFP) 등에서 국제모금윤리기준을 정립한 바 있다. 지난 3월 창립한 한국모금가협회도 이를 기반으로 ‘정직·존중·신의·공감·투명성’이라는 행동원리를 밝혔다.

이민영 교수는 “모금 현장에서의 윤리적 딜레마는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는 ‘옳은 것’과 ‘옳은 것’ 사이에서의 딜레마”라면서 “한국의 모금 실무자들이 어떤 갈등을 겪는지 실증적 연구가 요구받고 있다”고 연구의 취지를 밝혔다.

첨부 이미지 : 모금에 참여하고 있는 기부자(기사 내용과는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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