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일환으로 진행되는 단기어학연수는 당해년도 선발된 장학생 중 일부에게 지원되는 장학생 특전 프로그램으로 약 두달간의 캐나다 어학연수 기회를 제공합니다. 2017년도에는 유난히 더 치열했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총 6명의 장학생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중 김다솔(가명), 정가은(가명)장학생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캐나다에서의 시간을 전합니다.

특별하고 따뜻했던 8주일

단기어학연수라는 뜻밖의 선물

“처음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오티 가서 느낌이 왔어요. 저 티켓은 내 것이다(웃음).”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지원으로 8주 동안 캐나다 토론토로 단기어학연수를 다녀온 김다솔 씨. 졸업을 앞둔 4학년, 졸업을 유예한 상태다. 정보통신공학이 아닌 마케팅 영역에 뛰어들까 탐색 중이다. 그간 공부한 것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계열을 선택하는 게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후회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설레는 까닭. 무언가를 기획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이 가슴을 뛰게 한다. 고민하다가도 생활에 쫓겨 아르바이트를 돌다 보면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러다 단기어학연수와 맞닥뜨렸다. 쳇바퀴 도는 일상을 벗어나면 사유의 차원이 달라지리라 믿었다.

“다들 그러잖아요, 직장 한 번 잡으면 어디 나가지 못한다고. 사실 저는 대학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 하느라 이제까지 쉬는 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이게 마지막 기회구나 생각했어요. 두 달 동안 진짜 어디 가고 싶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남는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단기어학연수라니! 방학 때마다 여행 가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는데, 내겐 과분한 일이다 다독이며 넘겼는데 이런 기회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어요.”

한 마디로 후회하기 싫었다. 한참 뒤에 ‘내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는데…’ 기억하고 싶었다. 얽매이지 않는 땅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기를 바랐다. 엄청난 길치인 다솔 씨가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는 그 자체가 용기였다. 그것을 뒷심 삼아 욕망했던 분야로 전과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캐나다 벤쿠버로 단기어학연수를 다녀온 정가은 역시 꿈을 위한 도전이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해요. 간호사로 임상을 쌓고 유니세프에서 일하는 거예요. 제 롤 모델인 한비야 선생님처럼 재난현장에 투입돼서 사람을 치료하는 게 꿈이거든요. 그러려면 다른 나라 문화를 받아들이고 낯선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연습해야 하는데 그 기회 얻기가 쉽지 않았어요. 해외 나가서 각 나라의 병원, 그곳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보고 싶었는데 어렵더라고요. 그런 절절한 마음을 담아 지원서를 작성했어요.”

하필 시험이 겹쳐 정성을 들이지도 못해서 마음은 비워둔 상태였다. 수업 중에 합격통지를 받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교수님이 자다 일어났느냐고 묻는데 웃음만 나왔다. 제 진심을 알아봐 준 것이 고마웠다.

안정보다 모험을 선택하다

준비를 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영어회화 책 한 권 터득하고 가자고 생각했지만 난항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가서 부딪쳐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언어가 아니었다. 체류비 100만 원, 비행기 값, 학원비는 물론 수속비까지 지원 받는 어학연수인데 우습게도 돈이 걱정됐다.

“1년 후엔 자립관에서 나와야 하는데 자립할 돈도 모아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데 여름방학 내내 외국에 나갔다 오는 게 괜찮을까 불안하더라고요. 학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 3개를 쉬지 않고 했는데 난감했어요. 저축해둔 돈은 있지만 그걸 쓸 순 없고… 사람들이 축하한다, 잘 다녀와라, 얘기할 때마다 ‘다음 학기는 어떻게 하지?’ 계속 고민했어요.”

괜한 호사일까 머뭇거리던 가은 씨를 붙잡아준 건 ‘지금 여기’에 머무르자는 긍정적 태도였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가늠하느라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 싫었다. ‘내가 또 언제 캐나다에 가겠어. 이왕 가는 것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 생각하니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다솔 씨도 마찬가지였다.

“돈 생각하면 더 슬플 것 같아 아예 멀찍이 뒀어요. 아동자립지원단 선생님 조언도 듣고 과외 학생 아버님께 지원금도 받고 기운을 얻었죠. 투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고민이라면 환율이 계속 오르는 것 하나였는데 그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캐나다에 있을 제 모습만 생각했어요. 편안하게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저를 상상했어요.”

두 사람은 단기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 안정에 집착하면 나아갈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 자체로 이미 시작된 여행이었다. 어쩌면 떠난다는 건 물리적인 이동이 아닐지도 몰랐다. 가능성만으로도 일상은 느슨해졌다. 사이사이로 설렘이 스몄다.

다양한 사람과 더불어 생활하기


“첫날이요? 그냥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픽업해 준 차를 타고 가면서 제가 계속 우와~우와~ 탄성을 질렀어요. 동행인들이 밖에 하늘이랑 나무밖에 없는데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고 물었는데 바로 그 자체가 좋았어요. 하늘이 정말 맑았어요.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고. 그래요, 눈부셨어요.”

벤쿠버에서 일상은 규칙적이면서도 자유로웠다. 8시 30분에 등교해서 3시에 하교하는 어학원 수업이 끝나면 무엇도 마음대로 꾸릴 수 있었다. 주말은 통째로 자유시간이라 원한다면 어디든 다녀와도 괜찮았다. 처음엔 어학원 수업과 홈스테이에 익숙해지려고 시간이 필요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다, 이런 질문을 하면 저렇게 평가하겠지, 같은 건 들어맞지 않았다. 밥 먹느라 지각했다고 말하면 잘했다고 칭찬하고 잘못 말하면 창피할 텐데 어떡하지, 걱정하면 영어 배우러 왔는데 틀리는 게 당연하다고 다독였다. 그곳에선 가은 씨 자신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더불어 지내는 게 수월했다. 누군가의 틀에 맞추려고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지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삶에 귀 기울이게 됐다. 다솔 씨도 다양한 개인이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하는지 경험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용기와 비전을 품은 시간들

어학원 교수님이 2개월 안에 영어를 배울 거라고 상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언어가 아니라 문화를 배우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요. 그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캐나다만의 문화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다문화’를 진짜 많이 느꼈어요. 인종 문화 등 여러 요소가 하나로 융합 동화되는 현상이나 장소라는 멜팅 팟(melting pot)을 느낀 건 처음이었어요.”

다솔 씨를 놀라게 한 건 어떤 기준보다 앞선 존재가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연수 기간 중 지하철역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친 선영 씨는 ‘사람이 먼저’라는 문장을 직접 경험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은 운전을 멈추고 괜찮은지 살핀 뒤 물을 뿌려 치료해 줬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반창고를 주고 붕대로 감싸줬다. 그런가 하면 짐이 많은 날엔 버스운전사가 자신을 위해 짐 있는 데까지 움직여줬다.

“다솔이가 말한 사람을 중심으로 일상이 꾸려진다는 걸 저도 매순간 느꼈어요. 가장 놀란 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인데 어디든 휠체어 공간이 있었어요. 한 번은 어학원 수업에 5분이라도 늦으면 못 들어가는데 장애인이 탑승했는데 그날따라 사람도 많고 동선이 엉켜서 지연됐어요. 제 마음이 타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룸메이트에게 너는 걱정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뭐가, 라고 되묻더라고요. 외려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뭐가 답답하냐고 묻는데 정말 부끄러웠어요.”

가은 씨는 승차권을 끊으면 누구나 탈 권리가 있는데 그 당연한 걸 알아채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하진 않았다. 다만 공동체를 생각했다. 노숙인들이 공공도서관을 사용할 때 누구도 제제하거나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게 왜 인상적인지 고민했다. 능력을 가진 사람이 시설이 부족해 시도하지 못하는 상황을 깊이 고려한 정책에 마음이 벅찼던 이유도 곰곰 되짚었다. 모두 ‘기회를 준다’는 의미를 새삼 깨닫게 만들었다. 영어 점수보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용기와 비전을 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 돌아와 이전과 비슷한 하루를 지낸다. 학과 공부에 몰입하거나 아르바이트에 치여 쉴 틈이 없다. 설핏 보면 8주의 캐나다 어학연수로 달라진 게 뭘까 싶다.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선물을 품었다.

“캐나다에 가기 전까지 머뭇거리던 전과를 실행할 용기가 생겼어요. 그곳에서 문화를 배우며 의존적이던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가능했어요. 지도를 보며 혼자 여행도 다니고 그러다 만난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면서 두려움이 줄었죠.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다솔).”

“좀 더 넓고 먼 시간을 떠올려 봐요. 그래서 의전에 가게 되면 어떨까 생각해요. 물론 이제까지 공부한 게 아깝지만 또 다른 꿈이기도 한 거죠. 그런데 의전을 간다고 해도 마지막 꿈은 유니세프에서 일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국경없는 의사회로 바뀌겠지요(가은).”

지난여름 이후 다솔 씨는 용기를, 가은 씨는 비전을 수시로 매만진다. 어떤 기준보다 앞선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게 뭔지 무시로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주어졌던 ‘기회’를 떠올린다. 공평하고 따뜻한 지지 어린 단기어학연수가 바로 그들이 경험했던 기회였음에 감사한다.

글 우승연ㅣ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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