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이하 청자발)은 청소년이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꿈꾸며,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해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18년 청자발은 8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올해는 누가, 어떤 자발적 활동이나 창의적 실험을 할까요?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만나볼까요? 지난 8월 넷째주 토요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우마미틴>을 만났습니다.

우리 동네 라디오스타

라디오방송을 제작하는 청소년모둠 <우마미틴>을 만나기 위해 녹음실을 찾았다. 녹음실의 두툼하고 묵직한 문을 열었고,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만났다. 열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두 평 정도의 좁은 방에 다닥다닥 모여서 와글와글 떠들고 있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굴까, 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을까. 다시 보니 이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신나 보였다. 이중 <우마미틴>의 멤버는 4명이고, 나머지는 멤버의 친구 또는 친구의 친구라고 했다. 청소년들은 심심한데 구경이나 할까하고 놀러왔다가 다른 학교, 다른 학년의 친구들을 사귀고, 라디오에 한두 번 출연하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핵심멤버가 되어 있다(이것은 <우마미틴>의 고도의 다단계식 영업전략이다).

멤버들이 <세계시민학당>의 녹음을 시작했다.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던 녹음실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출연진은 고등학생 다영과 시우, 중학생 민서, 대학생 건우이다. 프로듀서는 건우, 오디오를 녹음하는 오퍼레이터는 시우가 맡았다. 방송주제는 총 5회로 기획한 시리즈(1회 프로그램 소개, 2회 공정무역, 3회 적정기술, 4회 난민, 5회 세계의 식문화)의 마지막인 ‘세계의 식문화’이다.

멤버들은 각자 조사해온 자료를 토대로 자유롭게 수다를 떨었다. 대본없는 방송이다. 외국음식을 먹어본 경험, 외국의 희한한 식재료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진행자는 구경꾼들에게 갑자기 마이크를 전달하기도 했다. 나도 즉석에서 마이크를 받고 횡설수설 아무말을 했다(또 하나의 흑역사가 만들어졌습니다ㅠㅠ). 멤버들은 NG도 휴식도 없이 한방에 녹음을 끝냈다. 세상에, 대본없고 NG없는 방송은 베테랑들이나 가능한 것이 아니었던가.

좁은 녹음실에 다닥다닥 모인 우마미틴 멤버들과 친구들

갑자기 마이크가 날아와도 침착하게 답변하는 준비된 구경꾼

공감과 배려로 세계시민 되기

<우마미틴>은 ‘우리마을미디어틴’의 약자로 미디어 제작에 관심 있는 청소년 7명으로 구성된 모둠이다. 2014년 결성되어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학년의 청소년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직접 프로듀서, 작가, 오퍼레이터 등이 되어 다양한 주제로 라디오방송을 만들고, 팟캐스트, 유투브 등 온라인채널을 통해 송출한다. <협동조합청청>이 이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 <우마미틴>에서 활동하던 청소년들은 청년이 되면 <우마미영>이나 <협동조합청청>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마을과의 관계를 지속한다.

<우마미틴>의 대표작은 2017년 제작한 ‘틴트래블: 입으로 가는 해외여행’이다. 이 방송의 제작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올해에는 ‘세계시민’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높일 수 있도록 세계시민으로서 생각해볼 주제들로 방송을 제작한다. 이는 다문화가정 자녀인 다영의 고민이 담긴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국제결혼이 많고, 저를 포함하여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친구들도 많아요. 친하게 지낸 친구도 알고 보니 다문화가정의 자녀였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다문화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편견을 없애고 싶어서 라디오방송을 만들게 되었어요.” – 다영

멤버들은 청취자들에게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세계시민교육을 듣고, 이를 토대로 각자 자료조사를 진행했다. 멤버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방송회차별 주제의 세부내용을 조사했다. 이를 모아놓으니 이야깃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예를 들면 3회 난민 편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제주의 예멘 난민부터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개별적인 사례들까지 다루었다.

제작한 라디오방송은 팟캐스트, 유투브 등에 업로드한다. 사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접속하는 청취자들은 많지 않다. 주요 청취자들은 멤버들의 주변 친구들이나 <협동조합청청>과 인연을 맺고 있는 청소년들이다. 지금은 방송콘텐츠를 확산하고 외부 사람들과 소통하기보다 내부 구성원들의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우마미틴은 대본없이, NG없이 한 방에 녹음을 끝낸다

출연자와 오퍼레이터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낸 시우

다양한 관점과 이해를 얻다

다영과 건우는 <우마미틴>에서 3, 4년 전부터 꾸준히 활동하며 여러 라디오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이들이 오랜 기간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간단하고 명쾌하다. 재미있고 좋으니까.

“방송주제를 정하고, 녹음하면서 방송분량을 계산하고, 편집을 어떻게 하고, 방송은 언제 내보낼지 정하고, 이런 과정들을 쭉 진행하면서 재미를 느껴요. 저는 다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 – 건우

“제가 좀 진지한 사람이라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나이와 학년이 다른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고요. 멤버들이 각자 친구들을 불러오는 것도 좋더라구요. 제가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면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어요. 청소년이 라디오를 만드는 게 흔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친구들과 같이 경험하고, 같이 성장하면 좋겠어요.” – 다영

장래에 방송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민서는 활동을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활동이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직접 녹음도 하고, 콘솔이나 편집프로그램을 다루어는 것이 재미있어요. 다들 학생이니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데, 막상 학생인 저는 공부만 하고 싶지 않거든요. 가끔 공부에서 벗어나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좋아요.” – 민서

학교에서 다문화에 대해 배운 멤버들에게 ‘세계시민’이라는 주제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교육을 듣고 자료를 조사하며 주제를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다른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며 하나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세계시민’이라는 주제는 익숙한 편이에요. 학교에서 다문화 수업을 들으니까요. 그래도 학교에서보다 여기에서 조사하고 이야기하며 더 자세하게 배웠어요.” – 민서

“저는 ‘세계시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어요. 멤버들과 공정무역, 적정기술, 난민 등을 주제로 이야기해보니 저마다 생각이 달랐어요. 예를 들면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찬반 입장을 들어보니 다 이해되었어요. 그래도 난민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명이나 생계의 위협 때문에 자신의 나라를 떠나온 사람들이니까, 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 시우

“녹음하면서 멤버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관점의 차이와 변화가 느껴져요. 각자 다른 관점을 가진 멤버들과 이야기하면서 문제의 다른 면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한 가지 면만 보지 않고” – 건우

다영은 자신이 다문화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숨긴 적도 없지만 일부러 드러낸 적도 없다. 그런데 다영이가 달라졌다. 요즘에는 자신이 성장한 환경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한국어 외에도 다른 외국어를 접했기 때문에 두 가지 언어를 할 수 있고, 이런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무역 분야로 진로도 정했다.

“요즘에는 우리 엄마는 태국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저는 한국어와 태국어 두 가지 언어를 할 수 있는데, 친구들이 이 점을 되게 부러워해요.” – 다영

다영은 자신의 변화를 천천히 실감하고 있다. 청자발과의 만남을 계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저는 원래 사람들에게 말을 잘 못 했어요. 근데 지난번 청자발 면접이랑 OT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했잖아요. 저에게는 엄청 큰 도전이었거든요. 말하는 것이 너무 싫고 부끄러워서 선생님한테 안 하면 안 되냐고 했어요. 그러다 모르겠다,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어요. 아무래도 그 일이 제일 큰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어떤 발표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어요.” – 다영

자신감 뿜뿜하는 다영

쿨내 뿜뿜하는 민서

나에게 청자발은 OO이다

언젠가 다같이 다영이네 외할머니댁이 있는 태국으로 놀러가고 싶다는 <우마미틴> 멤버들에게 청자발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공식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청자발이란?

“나에게 청자발은 미래이다. 우리의 활동을 지원해주니까.” – 민서

“내가 가는 길. 4년 전부터 <우마미틴>에서 활동하며 뭔가 하나씩 하고 있고, 그 흔적이 남아 청자발도 만나게 된 것 같아요.” – 다영

“청자발은 열정이다. 사람들이 청소년들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니까.” – 시우

“청자발은 기회인 것 같아요. 일단 <우마미틴>도 저에게 일종의 기회예요. 청자발도 <우마미틴>이 뭐라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회이구요.” – 건우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역공이 들어왔다. 간사님에게 <우마미틴>이란? 나는 좀 당황했다. 질문을 던질 때는 몰랐는데 입장이 바뀌자 깨달았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구나. 그동안 재기발랄한 대답을 들려준 청자발 친구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참 생각하다가) <우마미틴>은 슬라임 같아요. 살아 움직이고, 쭉쭉 늘어나는 액체괴물 같은 느낌이에요. 여러분이 맺고 있는 관계들이 <우마미틴>을 통해 계속 확장되고 있으니까요. 핵심멤버들이 다단계처럼 친구들을 데려오고, 다양한 친구들이 모이니까 그만큼 역동이 생기는 것 같아요.” – 그림

세계시민을 꿈꾸는 우리 동네 라디오스타

글 | 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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