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이하 청자발)은 청소년이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꿈꾸며,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해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18년 청자발은 8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올해는 누가, 어떤 자발적 활동이나 창의적 실험을 할까요?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만나볼까요? 지난 10월 넷째 주 토요일, 제주청소년문화올림픽에서 <여러가지>를 만났습니다.

독서와 놀이의 접목

<여러가지>는 제주아라청소년문화의집에서 만난 중고등학생 11명으로 구성된 모둠이다. 기관내 독서토론동아리의 일부 멤버들이 지역사회 아동, 청소년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 한 달에 한번 제주지역의 청소년기관을 방문하여 ‘북엔티어링’을 진행하고 있다.

‘북엔티어링’은 Book(책)과 Enteering(임무수행 활동)의 합성어로 독서와 놀이를 접목한 독서방법이다. 멤버들은 어떻게 하면 초등학생들이 더 쉽게 독서에 흥미를 가질까 고민을 거듭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이용하기로 했다. 참가자는 선정도서를 읽고, 책 내용과 관련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책의 주제, 지식이나 정보를 되새긴다.

멤버들은 정기회의를 통해 선정도서를 정하고, TV프로그램 <런닝맨>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책 내용과 관련된 게임을 만든다. 지금까지 <곱을락>, <은실이와 갈천 한 조각>, <도채비 자장가> 등 8권의 책을 선정했고 8개의 북엔티어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여러 주제의 책들을 다루었지만, 작년부터 제주문화와 관련된 책들을 다루고 있다. 멤버들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자신의 고향에 대해 잘 모르고, 제주의 고유한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활동하다 보니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과 제주도로 여행 오는 사람 중에서 제주문화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주문화를 주제로 북엔티어링 활동을 시작했어요.” – 래진

제주4·3 70주년인 올해는 4·3사건의 슬픈 역사를 담은 그림책 <나무도장>을 선정하고, 많은 사람이 제주역사를 기억하고 돌아볼 수 있도록 북엔티어링 활동을 하고 있다.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 제주청소년문화올림픽이 열렸다.

초등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던 ‘여러가지’의 부스

제주에 가시거든 기억해 주세요

제주4·3사건은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1948년 4월 3일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등을 내걸고 일어난 주민들의 무장봉기를 미군정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수많은 주민이 죽거나 다쳤다. 희생자는 3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제주도민의 10%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는 끝나지 않은 비극이다. 진상규명은 반세기가 넘도록 지연됐고, 진상이 완전히 드러났다고도 할 수 없다. 2000년대가 되어서야 정부는 국가 권력에 의해 발생한 대규모 희생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희생자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뒤에 숨겨진 슬픈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여러가지>는 4·3사건을 알리는 올해의 활동에 더욱 사명감을 느낀다.

“4·3사건은 제주 내에서만 알려져 있고 제주 외 지역에 사는 분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올해는 70주년이고, 정부도 행사를 크게 했고요. 그걸 보고 관련 활동을 같이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작은 힘을 보태면 뭔가 바꾸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 연주

“4·3관련 교육을 받았어요. 옛날에는 단순히 경찰들이 사람들을 죽였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4·3에 대해서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성현

이런 사명감은 활동을 넘어 일상으로 이어졌다. 멤버들은 평소에는 그냥 넘겼던 제주와 관련된 내용의 신문이나 방송프로그램도 유심히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제주를 알리는 홍보대사를 자청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이 사는 고장에 대한 관심은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청자발OT 때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4·3을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우리가 진짜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지나가다가 여기가 4·3유적지래, 하고 일상 대화처럼 말하고 다녀서 인식을 시켜주기도 했어요.” – 래진

“원래 학교에서 강연이나 행사가 있어도 관심 없었는데, 요즘에는 재미있겠다, 한 번 들어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요. 지금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활동하지만 나중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약자를 돕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 예원

래진은 최근 진로를 바꾸었다. 작년만 해도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공익광고기획자가 되고 싶다. 올해 <여러가지>에서 4·3을 주제로 활동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방법을 고민하다가 공익광고가 떠올랐다.

“광고기획자라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이 활동을 하면서부터예요. 올해 활동하면서 제주4·3은 몇몇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쉽게 전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게임을 생각했는데, 티비에서 공익광고를 보고 저거다! 라고 생각했어요. 더 많은 사람에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 래진

참가자들은 제주4·3사건을 담은 그림책을 읽고 책 내용과 관련된 미션을 수행한다.

제주4·3사건의 슬픈 역사에 몰입한 심각한 표정의 참가자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어도 좋은 그림책 ‘나무도장’

우리들의 성장 동력

멤버들은 활동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방법,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웠다. 예원은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말 걸기가 편해졌고, 혜민은 장내가 혼잡하면 아이들을 다른 미션으로 안내하는 등 진행의 묘미를 발휘한다.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침착하게 대응한다. 멤버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멤버들의 자발성이 증가했다.

“동아리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선생님이 더 많은 역할을 하셨어요. 그런데 요즘은 선생님들이 했던 역할을 저희가 맡아서 정기회의나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 성현

한편 멤버들은 지식과 정보의 전달자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거나 말실수라도 해서 아이들이 이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그러나 적당한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멤버들은 아이들에게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아이가 질문했는데 잘 모르는 내용이라 당황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슬쩍 넘어갔는데 나중에라도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으니 집에 와서 그 부분을 조사했어요.” – 래진

“아이들한테 저희가 선생님이잖아요. 선생님으로서 제주문화와 역사를 가르쳐주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커진 것 같아요.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제주의 주민으로서 꼭 알아야 하는 사실들을 알려주는 거니까 더욱 뿌듯해요.” – 연주

멤버들은 북엔티어링에 참가한 아이들의 변화에 작은 성취와 큰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은 북엔티어링 참가를 계기로 독서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활동할수록 멤버들에게 고민이 생긴다. 멤버들끼리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여러가지>의 또 다른 성장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한 아이가 아무 말도 없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이거 해볼래, 저거 해볼래 하고 말을 걸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어떻게 의욕이 없는 아이를 활동에 참여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 혜민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떠들면 안 된다, 돌아다니면 안 된다, 집중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저는 그보다 각자의 개성을 인정해주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활동이 아이들의 자아와 사고를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만나면 제 생각대로 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제가 아이들의 개성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힘들어요.” – 연주

마인드맵, 워드서치, 퍼즐맞추기, 컵만들기 등 미션을 수행하는 아이들

그림 그리기에 몰입한 심각한 표정의 참가자들

청소년들이 행복하려면

멤버들은 전국 방방곡곡에 <여러가지>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의 고유문화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청소년 모둠이 생기면 좋겠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청소년으로부터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까.

“아무 관심 없는 주제라도 옆에서 보여주고 말하고, 특히 이것이 내 상황과 관련되면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 이런 활동도 있다고 조금씩 정보를 주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저희를 포함한 공익활동 하는 청소년이 자신의 친구 두 명에게 전파하면, 그 두 명이 또 다른 두 명에게 전파하고… 그게 엄청난 숫자가 될 거예요.” – 연주

“조력자 같은 분이 계시면 좋겠어요. 제가 이 동아리를 처음 만들 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문화의집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처음에는 선생님이 리드하셨지만, 나중에는 저희가 그걸 보고 배워서 하게 되었어요. 한 분의 선생님이 지속적으로 저희에게 관심과 정보를 준다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래진

멤버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어보았다. 연주는 밴드부 친구들과 합주할 때, 예원은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갔을 때, 래진은 내가 만든 단편영화가 입상했을 때, 성현은 과학동아리에서 논문 발표하고 칭찬받았을 때, 지혜는 친구들에게 심리상담해줄 때라고 말했다. 아참, 혜민은 낙천적인 성격이라 매사 행복하다고.

청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 일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면 더욱 행복하다. 공공연한 행복의 비밀이다.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이 행복하려면 공익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탐색하고 도전해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성공이냐, 실패냐 결과에 상관없이 청소년들은 그 과정 속에서 성장 동력을 찾을 것이다.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청자발 인터뷰의 공식 질문. 나에게 청자발은 OO이다!

“나에게 청자발은 경험의 장이다. 지금 인터뷰도, 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한 것도, 많은 아이를 만난 것도 다 오늘 일어난 일이에요. 청자발 덕분에 하루 만에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 혜민

마인드맵 미션을 담당한 지혜 “4·3사건의 발생지는 어디일까요?”

‘여러가지’ 부스를 방문한 수백명의 아이들이 책놀이로 4·3사건을 배웠다.

‘여러가지’와 책놀이 할 사람 여기 모여라~

 

글 | 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 2018년 청자발 친구들의 이야기 모여라

OT이야기 – 뻘쭘하거나 두근두근 떨리거나
청소년은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 – 인블룸
동네에서 세계시민을 꿈꾸다 – 우마미틴
행복을 그리는 캠페이너 – 행복드로잉
모두에게 문화를 즐길 권리를! – MOV
우리는 학교밖청소년입니다 – 피노키오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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