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거리청소년의 건강을 챙겨야 하기에…

건강특화형 의정부시일시청소년쉼터(이동형)
거리청소년 건강지원 가이드북 [다운로드]

대부분의 사람에게 청소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나이입니다. 흔히 이때를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 합니다. 늘 에너지가 넘치고 아플 때도 별로 없고, 아팠다가도 쉽게 훌훌 털고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리청소년들의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2015 의정부지역 거리청소년 건강실태조사’에서 거리청소년 4명 중 1명은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고 했고, 절반 이상은 “현재 질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10명 중 1명은 병원에 가지 못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절반 이상은 아플 때 그저 참았습니다. 이렇게 아프고 힘든 거리청소년들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의정부시일시청소년쉼터 ‘포텐’은 <거리청소년 건강지원 가이드북>을 냈습니다. 포텐은 전국에 단 3곳 있는 ‘건강특화형 쉼터’ 중 한 곳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은 2015년부터 3년간 ‘사각지대 청소년단체 지원사업’을 통해 포텐을 지원하고, 2018년 후속사업을 통해 이번 가이드북도 함께 펴냈습니다.

우리의 시행착오가 누군가의 지도가 되기를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건강특화형 쉼터’라는 표현은 참 많이 낯설 듯 합니다. 말 그대로 건강청소년의 건강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지정한 특별 쉼터입니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여러분은 뭐가 떠오르시나요? 상담부터 치료까지 지원하는 건강센터? 거리청소년들을 찾아가는 이동진료소?

아쉽지만 실제 건강특화형 쉼터는 그렇게 근사한 의료장비나 인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쉼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 가정에 있는 기초 상비약이나 의료기기 정도가 전부입니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건강 상담을 하지만 의료적 진찰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거리청소년 건강특화형 쉼터들의 의지가 없는 거냐고 하면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현장의 청소년지도자는 새로운 사업을 더 많이 하려고 동분서주하지만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쉼터만의 힘으로 거리청소년 건강지원활동을 펼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쉼터의 청소년지도자는 거리청소년의 욕구를 파악해 필요한 지원을 하는 데는 전문가이지만, 건강을 보살피는 의료 전문가는 아니고, 그렇다고 시설에 의료 인력을 두자니 예산이 너무 부족합니다.

사실은 예산이 충분하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법적으로 정해진 의료시설에서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데, 쉼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쉼터에서 정기 건강 상담이라도 운영하려고 하면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관할 보건소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매주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매주 신고를 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사업을 하라는 걸까’ 싶지만, 정부는 별다른 가이드나 지침을 주지 않습니다. 정부 ‘청소년쉼터 운영지원’ 지침에 건강특화형 쉼터 운영모델이 나와 있긴 하지만 내용은 참 짧고 두루뭉술합니다. “지역사회 의료기관과 연계하여 긴급의료서비스 연계 체계 구축”이라고 했지만, 긴급의료서비스에 무엇을 포함할지는 안내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특화형쉼터 현장을 지키는 청소년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아주 힘들게 좌충우돌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거리청소년에게 맞는 건강지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를 함께 할 의료 인력을 발굴해 협업을 요청하고,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거리청소년 사례를 발굴해 지원하는 이 모든 과정이 모험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포텐은 특히 모험가 기질이 뛰어난 단체입니다. 내용도 범위도 불분명한 건강특화사업에 뛰어든 것만 해도 모험인데, 그 안에서 자꾸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합니다. 포텐은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의료비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여기에 거리청소년을 위한 문진표를 만들고 정책연구 보고서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번 <거리청소년 건강 지원 가이드북> 역시 이 같은 모험의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간의 경험을 담고자 한 포텐의 험난했던 여정이 다른 단체들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좋은 지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거리청소년 건강의 A부터 Z까지 꼭꼭 눌러 담았습니다

이 가이드북은 건강특화쉼터는 물론 거리청소년 건강지원활동을 시작하는 모든 단체를 위해서 만든 책자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A부터 Z까지 거리청소년 건강지원활동의 모든 것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건강지원활동을 해본 적 없는 청소년지도자라도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건강 문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가이드북의 맨 처음 <거리청소년 건강지원 활동의 기초>에서는 기본적인 거리청소년 건강현황 조사결과를 설명했습니다. 거리청소년의 건강실태를 알리고 그 맥락을 짚으면서, 거리청소년 건강이 왜 이토록 중요한 문제인지에 전달하려 했습니다. 청소년지도자가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해야 명확한 목적과 방향을 갖고 건강지원활동을 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건강지원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갖춰야 할 의약품, 의료장비, 인력 등의 인프라를 안내했습니다. 단순히 필요한 것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요소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고려하거나 주의할 점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청소년지도자들이 건강지원활동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거리청소년 건강지원 활동의 준비> 챕터를 통해 다양한 건강지원 프로그램을 유형별로 소개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넣었습니다. 청소년지도자들이 바로 기획에 활용하실 수 있도록, 되도록 실제 사례 중심으로 서술했으며 실무 팁도 풍부하게 담으려 했습니다. 각 단체의 상황에 적용될 만한 좋은 기획 아이디어를 찾아보실 수 있을 듯 합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외부 자원도 중요합니다. ‘건강지원’이라는 활동 특성상 단체 내부 자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의료 인력이나 추가 예산 등 건강지원 활동에 필요한 외부 자원을 어떻게 발굴할 지, 지속가능한 협업을 위해 검토해야 할 요소는 무엇인지 등을 꼼꼼히 설명했습니다. 다양한 네트워크를 경험해온 포텐의 강점이 잘 드러난 글입니다.

마지막 <거리청소년 건강지원 활동의 실전>에서는 문제 발굴과 진단, 개입으로 단계를 나눠서 실제 건강지원활동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이 챕터에서는 실제 사례에 기초해서 청소년지도자가 가져야 할 태도나 책무, 고충, 딜레마 등을 폭넓게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의료전문가가 아닌 청소년지도자들이 거리청소년 건강 문제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가 발견된 경우 거리청소년들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최대한 자세하게 담았습니다.

이외에도 틈틈이 거리청소년들이 자주 겪는 질병이나 청소년지도자를 위한 응급대처법 등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하실 수 있도록 다양한 실무 팁도 넣었습니다.

거리청소년 건강지원 가이드북, 많이 활용해주세요

이렇게 내용을 모두 설명하고 보니 참 뿌듯하지만, 가이드북을 만드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풀뿌리단체가 그렇듯이 포텐의 청소년지도자 역시 늘 바쁩니다. 거리청소년을 위한 아웃리치 활동을 펼치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근무합니다. 게다가 종종 응급상황도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평소에 시간을 내어 건강지원활동의 가이드가 될 자료를 생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이드북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 참고할 만한 문서 자료가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원고 작성계획을 수정하다가 결국은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일단 포텐을 중심으로 청소년지도자들을 만나서 건강지원활동의 노하우를 물어보았습니다. 이와 함께 보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청소년 건강지원활동에 참여했던 의료인들도 진료과목별로 만났습니다.

이토록 어렵게 만든 가이드북이지만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포텐의 경험을 중심으로 책자를 구성했기 때문에 기관이나 단체의 상황에 따라서는 이 가이드를 적용하기가 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거리청소년들의 상황입니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면서 이 가이드북의 사례를 참고하면 각자에게 더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현장의 청소년지도자들이 얼마나 뜨겁게 거리청소년들을 사랑하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거리청소년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시는 청소년지도자들에게 이 가이드북이 좋은 벗이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거리청소년들이 더 많이 건강해지길 바랍니다.

글 박효원

건강특화형 의정부시일시청소년쉼터(이동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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