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 차던 청년, ‘행복에 골인하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외로운 친구들을 챙긴 에이스입니다.”

2017년도부터 2년 간 아름다운재단 장학생이었던 신민규 씨는 2019년도부터 길잡이(선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축구복을 입고 잔디 위에서 뛰는 신민규 씨 사진.

2017년도부터 2년 간 아름다운재단 장학생이었던 신민규 씨는 2019년도부터 길잡이(선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신민규 씨는 첫 인사부터 시원시원하다. 그의 표정에는 어색함이나 수줍음 따위가 1도 없다. 저 멀리 경상남도 진주에서 서울까지 이동을 했고 심지어 다리 부상으로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있지만, 그런 몸의 불편이나 피곤도 민규 씨의 넘치는 에너지를 막지 못했다. 듣는 사람까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참으로 유쾌한 청년이다.

민규 씨는 방위산업체에서 일한 지 2년차가 되는 신입사원이다. 대학 시절까지 축구를 하다가 취업을 했는데, 회사에서도 직장인 축구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축구에 관심이 많은 회사인지라 그에게 축구는 업무의 일환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좋아하던 축구도 맘껏 할 수 있고, 쉬는 날에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밥을 먹는다. 알콩달콩 예쁜 연애도 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부정적인 고민이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남은 고민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광고에서나 볼 것 같은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그는 대학 시절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의 장학생이었다.

장학금 받아 대학까지 왔지만… “니 축구 접어라

민규 씨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했다. “아동복지시설에서는 원래 운동을 많이 시킨다”고 그는 말했다. 하다 보니 그에게는 운동이 참 잘 맞았다. 특히 육상에 재능이 있었다. 100m를 11초에 뛰었다.

초중등학교 때 도 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그런데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에는 2~3초가 모자라더라구요. 선수로서는 이도저도 안 될 것 같았어요. 게다가 원래 축구가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축구를 하게 됐죠.”

빠른 발 덕분인지 그 뒤의 길은 술술 풀리는 듯 했다. 보건복지부장관배로 열리는 전국 보육원 축구대회에서 ‘베스트11’ 상을 받았다. 성과에 힘입어 일반 축구클럽 대회에도 나갔다. 축구클럽이나 학교 축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덕분에 운동을 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까지 축구로 들어갔다.

공은 둥글지 몰라도 그 공을 차는 운동장은 평평하지 않다. 축구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스포츠다. 가난한 집에서 라면만 먹고 훈련해 ‘헝그리 정신’으로 우승하는 선수들은 만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는 않는다. 그가 축구를 시작했을 때 아동복지시설 선생님의 반응은 “우리 돈 없다”였다.

민규 씨가 대학까지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여러 지원 덕분이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스카우터들이 그에게 금전적인 지원도 해준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받아 축구부 회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축구화 하나만 해도 20만원이다. 1년에 몇 켤레는 갈아치우니까 1년에 100만원은 나가더라구요. 청소년 때는 후원이 들어왔는데 성인이 되니까 끊겼죠. 그리고 1년에 두 번씩 계절별로 유니폼도 사야 해요. 전지훈련도 가야 하고요. 그것도 한번에 100만원씩은 들어가요.”

그는 “등록금 말고 축구하는 데만 1500만 원 정도 든다”면서 “동기가 17명인데 돈 때문에 그만 둔 애들이 10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그 역시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모아놓은 자립정착금은 6개월 만에 동이 났다.

선배들이 조언을 했다. “니 축구 접어라. 눈치 보여서 어떻게 축구할 낀데”라고 말했다. 회비를 면제받는데 시합까지 자주 나가는 민규 씨에 대해 여러 학부모님들의 시선이 좋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는 바로 감독님을 찾아갔다. “저 그만 두겠습니다.” 그러나 감독님은 단호했다. 어떻게든 버티라는 것이다. 모두 그를 아껴서 하는 말이었다.

지원사업이 준 선물마음의 여유,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

민규 씨는 “대학교 1~2학년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실력부터 부쩍 늘었다. 예선에서 탈락했던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하는 극적인 변화도 있었다.

일단 생활비가 큰 도움이 됐다. 음식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그에게 외식비는 큰 스트레스였다. 돈이 걱정돼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먼저 말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싼 음식을 시켜먹으려 눈치를 봤다. 생활비 지원 덕분에 그는 편한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가끔씩은 아끼는 동생들에게 밥 한 끼 쏠 수도 있었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늘 모범을 보여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돈을 내지 못해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사라졌다. 감독님은 “니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민규 씨가 좀 더 당당하게 축구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엄하게 그를 가르친 것이다.

제가 체력이 1등이긴 한데, 그래도 힘든 날이 있잖아요. 그럴 때는 좀 뒤에서 뛰고 싶은데 그럴 때도 항상 1등으로 되어야 했어요. 그렇게 못 뛰면, 그래도 남들보다는 잘 뛰었는데도 나태해진 거 같다는 말을 듣고. 모범이 되려고 친구들 학교 수강 신청도 도와주고, 단체 간식이 나와도 남들보다 늦게 먹었죠.”

지원사업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전까지 민규 씨는 축구밖에 몰랐다.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축구부 선후배였다. 그런데 지원사업 MT에서 다양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규 씨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 힘들게 살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친구들이 너무 좋았다.

진짜 신기한 게 더 오래 만난 친구들보다도 새로 만난 이 친구들에게 정이 가는 거예요. 그 전에는 학교만 다니고 다른 데는 안 갔어요. 여기 하고 나서는 (코치님에게)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서울 갔다 오고. 1~2학년 때와 3~4학년 때가 너무 달라졌다고 하더라구요.”

지원사업에서 만난 아름다운재단이나 아동자립지원단의 ‘쌤’들도 참 좋았다. 선생님이 이렇게 편안한 존재인지 그는 몰랐다. 아동복지시설 선생님에게는 늘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엄격한 감독님이나 코치님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처음엔 선생님들에게 개인 톡을 한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이젠 스스럼없이 “쌤 어디예요?”라고 먼저 말을 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찾은 평범한 행복

민규 씨의 꿈은 축구이다. 오래 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축구를 하면서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을 꿈꾸지는 않는다. 그런 것 없이도 축구를 하는 것 자체가 좋다. 너무너무 좋다. 평생 축구를 하면서 살고 싶다. 지금의 직장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처음에는 프로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의 생각을 바꾼 것은 “니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감독님의 조언이었다. 선수로 뛸 때에도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침 지금의 직장이 민규 씨를 탐냈다. 3일 내내 고민한 끝에 지금의 직장을 택했다.

다행히 민규 씨는 지금의 생활에 크게 만족한다. 그는 “선수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축구를 한다고 했다. 그가 들어온 뒤 회사의 축구팀은 연습 경기에서 대학 축구부를 이겼고 기세를 몰아 직장인 리그에서 우승을 했다. 더 넓은 리그로 진출할 계획도 갖고 있다.

민규 씨는 “삶이 여유로워지니 주변을 더 돌아보게 된다.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 그의 바람은 좋은 선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 ‘길잡이’로 참여하고 있다. 마침 이날 후배들을 만났다가 “우리 10년 뒤에도 연락하고 있을까?”라고 물었는데 한 동생이 “형 때문에 연락할 거 같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비슷한 사정이다 보니 선배나 후배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상황들이 많아요. 다만 그렇게 서로 의지하다 보면 말실수도 많아지고, 때로는 혼자 멋대로 판단해서 개입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아요. 편하다고 해서 선을 넘을 정도로 말하지는 말고 서로를 더 존중해주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규 씨가 꿈꾸는 미래는 단순하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계속 축구를 하고 싶다. 영어를 배워서 여행을 가고 싶고, 기타를 배워서 연주를 하고 싶다.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 그는 “예전에는 평범한 삶이 어렵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알겠다”고 했다. 그토록 어렵게 일군 것이 이 평범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민규 씨는 참 평범하게 행복하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기에 더 많이 행복하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특별한 행복을 찾았다.

글 박효원ㅣ사진 장학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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