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이 기획연재 <청소년이 만드는 작은변화, Z세대의 공익활동>를 시작합니다. 청소년들은 기후위기, 청소년인권, 페미니즘, 소수자 그룹과의 연대 등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4주 동안 8편의 글을 통해 청소년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청소년 공익활동의 현재와 과거를 리뷰하고, 코로나 시대에 청소년 공익활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 연재가 청소년과 청소년 활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을 해소하고, 청소년들을 우리의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들어가며
청소년 공익활동은 청소년들이 영리나 친목이 아닌 누구든지 평등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펼치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공익활동은 헌법이 보장한 ‘참여권’과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단순히 다수의 이익을 위한 활동으로 축소될 수 있다. 참여권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그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여 영향을 주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이다. 청소년 공익활동을 다시 정의하면 청소년들이 누구든지 평등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 행동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역사에서 청소년 참여활동(공익활동)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면 정치, 사회, 정책 참여의 영역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마치 역사책을 펼쳐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청소년 활동들은 독립된 역사로 기록되거나 연구되지 못하고, 시민, 청년, (대)학생 활동들에 뭉뚱그려 기록되어 있다. 청소년을 독립적인 역사적 주체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 글은 1898년 만민공동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청소년 사회참여의 역사를 다룬다. 청소년들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 일에 결코 침묵하지 않고 집단적 행동을 통해 변화를 요구했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정책에, 정부 관료들의 부정부패 척결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책상물림에 의한 지식이 아니라 실천을 삶의 무기로,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 행동했다. 이를 통해 주권자 청소년을 인식하고, 공익활동이 단순한 다수의 공적이익을 위한 활동에서 참여권으로 확장된 개념으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1900년대: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에 맞서다
기록상 확인된 청소년 사회참여는 18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8년 3월 <독립협회> 주도로 개최된 ‘만민공동회’는 상인, 학생, 백정, 기생, 심지어 걸인이나 어린아이까지 참석하여 열강의 이권 침탈을 규탄하면서 자주독립을 외쳤다. 같은 해 11월 5일 <독립협회>가 해산되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수만 명의 군중이 종로에 모였다. 이때 소학교에 다니던 열한 살 장용남이 시위대를 향해 연설하여 장내를 들끓게 만들었다. 공권력은 만민공동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장용남과 태억석을 퇴학 처분했다. 이 사건은 학생이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 최초의 사례로 남았다. 각 학교 학생들은 동맹휴학에 들어갔고 이에 교사들도 동참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역사의 주체로 나선 일은 계속되었다. 1919년 3․1민족해방운동, 1926년 식민지 교육에 불만을 표시한 동맹휴업을 시작으로 “우리의 교육은 우리들 손에 맡겨라, 일본 제국주의를 타파하라, 토지는 농민에게 돌리라, 8시간 노동제를 채택하라”고 외친 6․10만세운동, 1929-1930년 광주학생독립운동까지, 그 중심에는 중·고등학생인 청소년들이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6.25 전쟁을 지나 청소년들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워야 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4.19혁명과 6.3항쟁이 있다. 1960년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개표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 시위가 벌어졌고, 전국의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었다.
1964년 박정희 정권이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의 청구권 보상과 한국 어민들의 생명선인 ‘평화선(연안수역 보호를 목적으로 선언한 해양주권선)’을 맞바꾸는 협상을 서두르자 대학생을 비롯한 전국의 시민들이 총궐기했다. 6월 3일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한일국교정상화회담 반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청소년들은 국가적 위기와 투쟁의 선두에 있었지만, 한국의 역사에서 오랜 시간 감추어진 존재였다.
1987년부터 1990년대: 학생인권이 대두되다
청소년들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것은 1987년 6월,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이하 서고련)을 통해서였다. 학교 소모임, 지역 서클 형태로 활동하던 고등학생 조직들이 명동성당 민주화 거리투쟁을 계기로 연합체로 발전했다. <서고련>은 1987년 민주화의 봄 이후 흩어졌다가 1988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보충수업, 자율학습 폐지 운동’으로 다시 활동을 이어갔다. 이는 정치적 이슈에서 벗어나 학내 민주화를 중심으로 한 고등학생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학생운동과 궤를 달리한다.
고등학생 운동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과 교사들의 대량 해직 사태로 다시 전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참교육을 내건 교사들의 활동에 학생들은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구호와 조직적인 시위로 응답했고, 학교별, 지역별로 조직된 중·고등학생들은 밤늦게 몰래 학교에 들어가 해직의 부당성을 알리는 유인물과 학생회 직선제를 선전하기도 했다. 이 무렵 <광주지역고등학생협의회>, <부산지역고등학생연합> 등 지역별 조직도 생겼지만, 1990년대 초 정권과 학교 양쪽의 탄압을 받고 사라졌다. 대신 샘(구로), 희망(성동) 등 지역 청소년단체들이 그 명맥을 이었다.
1990년대 중반 불어닥친 PC통신 열풍은 청소년운동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교실에 고립되어 있던 청소년들의 불만이 1995년 나우누리를 거점으로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학생복지회>가 결성되었고, 당시 고등학생 최우주는 야간 자율학습과 두발 제한, 체벌 등이 청소년 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의 요구사항 중에는 ‘18세 선거권 보장’ 같은 사회적 과제도 있었지만, ‘청소년이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를 강조하며 자신들의 일상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1998년 ‘학생인권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청소년 인권을 이슈화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0년에 접어들어 인터넷이 청소년들의 소통망이 되었지만 <학생복지회>는 여전히 PC통신을 고수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일부 멤버들이 이탈해 <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중고등학생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19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청소년의 행복할 권리를 찾기 위한 다양한 행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 새로운 집단행동을 발명하다
21세기 인터넷의 발달은 청소년 운동의 방식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199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두발 자유화를 외치던 목소리들은 인터넷에서 조직화되었다. 2000년 청소년들이 이용하던 인터넷 사이트들의 연대체 <위드>는 ‘노컷운동’이라는 두발규제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1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이 서명운동은 학생인권 문제를 표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은 두발규제 철폐를 요구하는 ‘학교 민주화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벌였다. 이에 놀란 교육부는 각 학교에 ‘학생·학부모·교사 의견을 들어 새로운 두발·교복 규칙을 만들라’고 지시하고, 가위나 바리깡(이발기)으로 강제로 머리를 자르는 일도 지양하도록 했다.
학생들의 요구가 일부 수용되어 일단락된 두발 자유화 운동에 2005년 다시 불이 붙었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학교의 생활지도가 엄격해졌고, 이에 학생들이 반발하면서 두발 규제 폐지 요구가 커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두발 자유는 학생의 기본적 권리이므로 각급 학교 두발 제한·단속이 교육의 목적상 최소한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청소년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용기 있는 투쟁은 계속되었다. 2004년 개신교 미션스쿨에 다니던 강의석(당시 대광고 3학년)은 교내 종교자유를 외치며 1인 시위를 했다. 학교는 강의석을 퇴학 처분했지만, 강의석은 이에 불복했다. 학교와 교육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대법원판결에서 승소했다. 이후 종교재단에 속한 학교들은 채플 이외의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게 되었다.
2006년 오병헌(당시 동성고 3학년)은 0교시 수업, 보충·야간학습 등 과중한 강제학습, 일부 교사들의 과도한 체벌, 폭언과 묵인, 엄격한 두발규정과 단속, 교외 행사 참가 불허 등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이 보장하는 학생인권을 짓밟히고 있다며, 학교의 부당하고 상습적인 인권 침해를 고발하기 위해 교문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학교는 오병헌을 징계했고, 이에 오병헌은 정당성 없는 징계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학생 징계 시 재심청구 및 변론권 보장 운동에 나섰다. 이후 서울에서 학생 징계 시 재심청구 및 변론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청소년들은 이것저것 재지 않았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했고, 옳은 것을 위해 움직일 줄 알았다. 모두가 주저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촛불을 들었다.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효순이 미선이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청소년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시위 참여, 성금 모금 등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기성세대의 참여를 호소하고, SOFA 개정을 요구하는 범국민 평화촛불행진의 선두에 섰다. 특히 <희망>, <전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민주중고등학생연합> 등 자발적으로 구성된 청소년 단체들이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며 7월 17일 의정부역 광장에서 600여 명이 모여 ‘청소년 행동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은 2008년 광우병 집회에서도 가장 먼저 촛불을 들었다. 5월 2일, 3일 청계광장에 모인 청소년 수는 만여 명을 훌쩍 넘었고, 이날은 촛불에 참여한 시민들이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촛불집회이기도 했다.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청소년들이 집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지도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고, 학교 교사들을 동원해 참가한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청소년들의 참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혼자 참여하던 청소년들은 <10대연합>, <전국청소년연합> 등 청소년 단체를 자발적으로 만들고, 가장 먼저 청와대 앞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나가며
청소년들은 광우병 때문에 든 촛불을 시작으로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반대 촛불집회 참여, 교육감 선거에도 원하는 후보 당선을 위한 참여,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유인물 배포 등 사회 전반의 문제에 뛰어들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매 순간마다 촛불을 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 학생인권조례제정 운동과 일제고사 반대 싸움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하기 위한 소녀상 건립 운동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에서도, 4.16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 집회와 2016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서도, 18세 선거권 하향조정을 위한 집회에서도 청소년이 없었다면 촛불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청소년 사회참여는 동물권, 젠더, 기후위기까지 다양한 담론으로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 2000년 두발 자유화 운동을 촉발한 온라인 서명운동과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사망한 효순이 미선이를 애도하기 위해 들었던 촛불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쟁취하기 위해 언제든지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글 | 김지수 (아름다운재단 배분위원 / 군포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일러스트 | 이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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