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리가 주도해서 배분사업을 하게 될지 몰랐다

단체 선정을 마친 청소년 배분위원들이 모였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다. 그간의 활동을 회고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정말 우리가 주도해서 배분 사업을 다 하게 될지 몰랐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이 주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자발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권한은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위원들 대부분 “배분 사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왔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자신들도 믿지 못했다.

“지원 서류 만드는 것까지 저희가 직접 다 할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어요. 서류는 간사님들이 만들어주실 줄 알았거든요. 어떤 사회 이슈에 배분할지 기획부터 홍보, 심사, 선정까지 다 저희가 주도해서 했어요. 덕분에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어요. 효과가 더 컸다고 생각해요. 맡은 만큼, 말한 만큼 책임감이 생겼으니까요.”

배분을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채워해할지 청소년배분위원들이 직접 계획을 세우며 칠판에 작성했습니다.

배분을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청소년배분위원들이 직접 세운 계획

시작부터 “배분을 한다”는 목표 외에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위원들은 매주 모여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누구 하나 싫은 표정이 아니다. 한 위원은 열정을 가지고 몰입해서 해본 일은 처음이라며, 재능을 찾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이런 경험을 할 수 없던 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직접 해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도 몰랐다. 청소년인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더불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과 어른들의 개입이 없을수록 자유롭고 창의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몰입해서 열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느낌이에요. 학교나 학원에 다닐 때는 시켜서 하는 일이라 기운이 빠졌는데, 이 일은 즐거워요. 엄마도 공부할 때보다 훨씬 열심히 한다고 하셨어요. (웃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그렇겠죠.”

토요일은 배분위원회 가는 날, 일상의 풍경이 바뀌었다

일상이 바뀌었다. 위원들은 “나 토요일에는 청소년 배분위원회 가야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때마다 질문을 받았다. ‘배분위원회’란 낯선 단어 때문이었다. 설명은 늘 어려웠다. “모금한 돈을 배분하기 위해서 공모를 올려서…”라고 설명하면 “공모가 뭔데?” 하는 질문이 뒤따랐다. 일상에 들어선 ‘청소년 배분위원회’란 낯선 활동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줬다. 대답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배분’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토요일에 친구들이 놀자 그러잖아요. 그럼 ‘나 배분위원회 가야 해’ 그래요. 그럼 일단 ‘배분’이 뭔지 다들 몰라요. 저도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돈 나눠주는 거야’라고도 하고. 계속 질문을 받으니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공부가 됐어요.”

청소년배분위원들이 지원신청서류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청소년배분위원들이 꼼꼼하게 지원신청서류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꼼꼼하게 지원신청서류를 살펴보고 있는 청소년배분위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봉사 시간 받으려고 하는 거야?”였다. 하지만 위원들은 그 이상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시작부터 그 이상의 마음을 품고 이곳에 왔다.

“전 열한 살 때부터 막연하게 착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몰랐죠. 반디 활동을 하고 나서야 이런 사회 참여가 내가 원하던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청소년 배분위원회도 참여했어요.”

처음 해보니 일이니 모든 일이 마음 같지는 않았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심사’다. 공들여 작성된 지원서를 보고 나니, 누군가에게는 불합격 통보를 해야 한다는 게 무겁게 다가왔다. 그래서 미리 만든 심사 기준에 따라 최대한 공정하게 심사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지금 가장 급박하게 필요한 곳이 어디인가”였다.

“선정 단체 중에 ‘대학생 성소수자 연대’가 있어요. 청소년 성 소수자들이 차별을 당해도 말할 공간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청소년 성 소수자와 성인 성 소수자가 만나서 대화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어요. 이전부터 성 소수자 차별이 심각하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지원서를 보고는 문제 해결이 더 시급하구나 생각했어요.”

청소년배분위원이 배분을 위해 면접심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면접심사를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배분위원

청소년배분위원회에서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청소년이 하는 활동(청소년사회참여)에 선정된 팀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배분위원회에서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오리엔테이션

선정 단체를 설명하는 위원들의 목소리는 마치 자기 이야기를 하듯 열의가 가득 차 있었다. 심사와 선정이라는 큰 고개를 넘어왔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이들은 앞으로 선정 단체의 활동을 지원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회고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어떤 제약도 없이 이상적인 청소년 배분위원회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들의 답은 단순 명쾌했다.

“저희가 한 것도 충분히 이상적이지 않나요? 세상이 알았겠어요? 청소년이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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