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 vol.16 ‘동물권’ 편에서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라는 조항을 포함한 민법 개정안 입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대표를 만났습니다.

지난해 10월 법무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담은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동물은 동물 그 자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아 동물을 학대하거나 동물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 대한 배상이 강화되고, 그렇게 되면 관련 범죄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를 모아 왔지요. 그런데! 8개월 넘도록 국회는 감감무소식입니다. 그 와중에도 방학천 오리 가족이 돌팔매질을 당해 죽는 일이 있었고, 길고양이를 학대하고 그 영상과 사진을 온라인 메신저로 공유하며 조롱하는 ‘동물판 N번방’ 사건이 일어나는 등 학대 소식은 계속 들려오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5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민법 개정안 통과 촉구에 관한 청원’을 내고 약 한 달만인 지난달 20일 청원 성립 기준인 5만 명의 동의를 받았어요. 그런데도 문제는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전진경 카라 대표를 카라에서 운영하는 동물전문도서관인 마포구 킁킁도서관에서 만났습니다.

“동물과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의 토대를 다지는 일이죠”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

전진경동물권행동 카라 대표의 활동 모습(사진제공: 동물권행동 카라)

Q. 국회 청원도 성립이 됐는데요, 이제 국회가 움직이기 시작할까요?

A. 이렇다 할 소식은 없어요. 바로바로 처리를 안 할 수 있는 제도상의 구멍(국회법상 ‘필요한 경우 위원회 의결로 심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다.)도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사안 때문에 밀리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이슈의 중요성을 강하게 어필해서 이번에는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애초에 청원을 시작한 이유도 더 이상 이 문제를 질질 끌지 말라고 압박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앞으로도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찾아서 함께 노력한다든지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해요.

 

Q. 이미 동물보호법이 있는데 민법에서 동물이 물건이 아님을 다루는 게 왜 중요한가요?

A. 동물이 인간과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가를 규정하는 게 민법인데, 민법에서부터 동물이 물건이고 인간의 소유물로 간주가 되다 보니 동물을 제대로 보호하고 동물과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의까지 이어지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또한 민법뿐 아니라 그 상위법인 헌법까지 함께 동물에 대한 정의라든가 세부적인 보호 방안 및 동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에 관해 규정을 해주지 않으면 동물보호법이 힘을 못 쓰는 거예요. 예를 들어 민법에는 동물이 물건으로 되어 있잖아요. 개인 간의 다툼이 있어서 재산을 압류해야 한다 그럴 때 동물은 그냥 물건이기 때문에 압류가 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동물의 복지나 권익은 고려 대상이 아니고, 단지 물건의 가치로 환산돼서 가족인데도 빼앗겨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일단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님을 규정을 하고 이런 불합리를 차례차례 해결해 가자는 것이죠.

 

Q. 민법은 시작일뿐 결국은 헌법까지 동물 보호 규정을 담아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A. 우리나라 헌법은 농업 중흥을 중요한 가치로 두고 인간 중심적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그래서 환경 보호라든가 생명으로서의 동물에 대한 보호를 국가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요. 그 때문에 동물을 물건처럼 복사하기 위해 종자를 개량하고 무한히 번식시키거나 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죠. 동물이 농업을 위한 대상이자 도구가 아니고 그 자체로 존엄한 생명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헌법에서 ‘국가는 동물 보호의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면 최소한의 보호 대책이 마련될 수 있다고 봐요. 축산법이나 동물보호법 같은 하위 법령에서 동물을 착취하더라도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대책이 있는 선에서의 중흥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거죠.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민법 개정안 통과 촉구에 관한 청원

카라가 주도해 지난 6월 20일 5만명 동의를 얻어 성립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안 통과 촉구’국회 국민동의청원

Q. ‘동물의 비물건화’ 민법개정이 이뤄지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A. 우선 반려동물에게 많은 변화가 생길 거예요. 이전에는 부부가 이혼할 때 반려동물은 물건이니까 누가 사 왔는지 ‘소유권’ 다툼을 했다면 이제는 누가 더 반려동물을 잘 키울 수 있는지 ‘양육권’ 다툼을 하게 되겠죠. 그리고 사고가 나거나 동물을 학대했을 때 동물의 매매가에 대해 배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상처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로소 동물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재산이 아닌 인간과 같이 사는, 생명이 있고 개성이 있고 인간과 유대를 가진 존재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의 저변이 넓어지고 깊어지겠죠.

 

Q. 단지 개나 고양이 같이 인간과 가까운 반려동물만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시각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반려동물부터 시작해서 논의를 확대해 가는 것이죠.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먹이가 없어서 민가로 내려오고 총살당하고 그런 뉴스를 심심찮게 보시잖아요. 그렇다면 그 동물들의 서식지를 누가 파괴했나, 동물과 환경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이런 논의가 법의 토대에서 가능해지죠. 그리고 일명 도메스틱애니멀(domestic animal: 인간의 쓸모에 맞게 개량한 동물), 산업동물, 실험동물, 농장동물 등을 인간이 계속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이런 이야기까지 논쟁을 확대해 갈 수 있겠죠.

 

Q.  개정안 통과를 위해 시민들은 뭘 할 수 있을까요?

A. 계속 관심을 두고 지켜봐 주시고 함께 목소리를 내주시는 게 큰 힘이 됩니다. 일단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는 철학을 공유하고, 이걸 열린 문으로 삼아 후속 입법이나 우리 사회에 어떻게 생명 존중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논의하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인간 정서를 위해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지닌 당연한 생명의 권리를 지키자는 게 동물권 옹호의 핵심이에요.”

Q.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정작 어떤 개념인지에 대해서는 낯설어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동물권을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A. 동물권에 대한 딱 떨어지는 문장적 정의는 없어요. ‘아주 강화된 동물 복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동물권은 인간의 동물에 대한 모든 착취 전체를 부정하는 거예요. 동물의 소유부터 시작해서 동물을 먹는 것까지 다 부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모든 것들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고, 각 시대가 이야기하는 동물권의 컨셉은 다 달라요. 현재의 동물권에 대해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동물에게는 본연의 자연적인 습성에 따라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가 있고, 인간이 그걸 침해하는 행위는 학대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금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층위가 있을 수 있어요. 현시점에 있는 문제들을 조금씩 더 한 발짝씩 진보된 방향으로 풀어가면 최종적인 동물권 옹호에 다다를 수 있겠죠.

전진경 대표의 활동 모습(사진 제공: 동물권행동 카라)

Q. 동물권을 옹호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A. 많이들 잊고 있는 사실인데 우리 인간은 그냥 인간 동물일 뿐이에요. 우리가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동물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는 거죠. 우리가 춥고 아프고 괴롭고 외로운 것을 싫어하듯이 동물도 똑같아요. 움직이는 몸을 가졌고 본능적으로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먹이를 찾아다니고 기쁨과 행복을 찾잖아요. 인간이 그들이 인간 동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런 권리를 부정할 어떠한 과학적인 근거나 권리가 없다는 것이죠. 물론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인간에게 안 좋은 영향으로 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게 동물권을 얘기하는 이유는 아니에요. 그냥 그게 맞기 때문이죠.



Q. 보통 시민들이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A. 이런 길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나무가 없고 그 나무에 새가 없고 길에 보호자와 산책하는 동물이 없는 환경.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만 있는 세상이요.
그런 곳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식탁에서도 많은 동물을 만나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 계란 치즈… 이들이 어떻게 왔는지 알아야 하거든요. 소비하는 입장에서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는 거죠.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나를 구성하는 일부가 동물들인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나를 구성하는 부분이 좋아지는데 내가 어떻게 안 좋아지겠어요.
일단은 나의 실질적인 삶이 달라지고요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할 수 있게 발전시켜줘요. 특히 반려동물 같은 경우 수명이 사람의 6분의 1, 7분의 1 정도니까 거기에서 사람 생명의 유한함 같은 걸 배우거든요.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은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는 중요한 경험이에요.

 

Q. 동물권을 위해 후후레터 독자들이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A.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보호소에서 입양하시라고 우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애완동물 가게에서 판매하는 조그마한 품종견, 품종묘 자체가 동물 학대의 산물이에요. (무리한 동종 교배로 인한 유전병, 강제 번식을 위한 반려동물 공장 문제 등) 지금도 시 보호소에 입소한 많은 유실·유기동물이 안락사되고 있는 현실에서 돈을 주고 동물을 사는 것 자체가 학대에요. 동물을 키우고 싶으시다면 그 학대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보호소에서 입양하셔야 해요. 그런 실천이 저는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에는 식탁에서 만나는 동물에 대해서도 어디서 어떻게 살다 왔을지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요즘 고기 먹방 같은 게 유행하잖아요. 건강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 그 선을 넘어서 탐식하는 것은 학대에요. 그런 콘텐츠 구독하지 마시고 건강한 채식 식단을 많이 하셔서 고기 소비량을 좀 줄여주시는 것만 해 주셔도 동물들의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질 거예요.

 

“요즘은 젊고 시크한 분들이 백구나 누렁이를 입양하더라고요. 내 활동이 그래도 변화를 만들고 있구나 싶죠”

Q. 대표님에게 지금의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또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돈을 벌어서 그 돈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받으니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일이 하고 싶어서 하긴 하지만 굉장히 슬프고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도 그런 정말 깊은 슬픔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좀 더 집중적으로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돼요. 치열하게 몰입할 힘을 줍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민법 개정안 통과 촉구에 관한 청원
카라가 운영하는 동물전문도서관 <킁킁도서관>에는 고양이사서 알식이가 있다. 

Q. 내 활동이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느끼는 때가 있으신지요?

A. 일단 예전에는 누렁이, 발바리 이런 개들을 입양하는 분들은 정말 거의 없었는데 요새는 젊고 시크한 분들이 그런 아이들을 입양해서 정말 잘 키우세요. 그리고 개식용이나 길고양이 문제에 대해 점점 더 많은 분이 공감해 주고 계세요. 법 개정에 대한 탄원 서명 참여율도 기대보다 높았는데요. 이런 것을 보면 노력한 성과는 있었다고 느끼죠. 많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더욱 늘어나 앞으로도 큰 힘을 주시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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