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센터 미르]가 2021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한국 전래동화 오디오북을 발간했습니다. 이 글은 고러인센터 미르에서 보내온 사업후기입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공익컨텐츠의 생성과 확산을 위해 5인 이하의 소규모 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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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래동화 오디오북 화면 – 고려인센터미르 제공

 

“한국어 수업 안해요?” ,“한국어 수업 언제 다시 해요?”

2019년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 2021년 현재까지 한국어 수업을 열었다가 멈췄다가 했다.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수업을 계속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팡질팡했다. 여기는 고려인센터미르이다.

안산시 외국인주민지원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2021년 8월 말 기준으로 안산시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15,627명이다.

이는 체류자격(외국국적동포, 방문취업, 방문동거)으로 추정한 수치이고, 단기방문, 영주권, 유학비자, 미등록 고려인 등 기타인원을 포함하면 약 2만 명 가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인은 공식집계만을 보더라도 안산시 거주외국인 주민의 20%에 달한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고려인은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비가시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최근 고려인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고려인은 구소련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이고 러시아어를 모어로 습득해야 했던 까닭에 한국어 미숙으로 인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고려인센터미르에서 활동하면서 실로 체감하고 있다. 개인 주머닛돈을 꺼내 월세 내고 전기세를 내다가 이젠 더는 할 수 없나보다 생각하며 문 닫을 시기를 고민했었는데, 기부 물품과 지자체의 관심과 후원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전기세와 월세, 믹스커피를 살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고려인의 역사와 현재를 물어보고 이해하려는 이가 많아졌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려인은 이방인이다. 한국 사회에서 고려인을 대상으로 하는 동포정책은 다문화영역에서 포괄적으로 다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호적일 때는 동포로 호명하고, 배제할 때는 외국인으로 대하는 차별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야기가 너무 광범위해졌다.

우리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고려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윗세대는 더듬더듬 그 윗세대의 말을 기억하기는 하나 대부분 고려인은 한국어를 거의 알지 못한다. 구소련 국가에서 살았기 때문에 영어와도 친숙하지 않다. 이들은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일자리를 찾고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어를 못하니 일자리 찾기도 힘들고,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임금이 적어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 기본 한국어라도 알아야 하지만 질펀한 삶에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일 것이다. 고려인센터미르는 이들이 일이 끝낸 후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밤 9시부터 한국어 야학을 열어 기초반, 중급반을 운영해왔다. 한국어 야학으로 모여 상담도 해주고, 기부 물품도 나눠주고 이런저런 사랑방 역할을 하며 고려인 삶을 들춰봤었다.

코로나-19사태가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가난한 센터라 방역물품을 제대로 갖출 수도 없고, 지하라 환기도 어렵다. 들락거리는 사람은 많고 방문명단 작성도 꼼꼼히 되고 있는지도 걱정이 되었다. 혹시 확진자가 생겨 접촉자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면 하루 벌이 근근한 살림살이도 걱정이 되었다. 야학을 중단했다.

“한국어 수업 언제 또 다시 해요? 나 한국어 배워야 하는데…”

미안했다. 센터는 버젓이 간판을 내걸고 있는데 문의하는 사람들을 매번 돌려보냈다. 2020년 한국어 수업 동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 채널로 공유하였고 이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에 힘입어 오디오북을 만들어보자 했다. 코로나-19로 지루한 일상에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한국 정신문화의 산물인 한국 전래동화 오디오북을 제작하기로 했다.

“니나, 한국전래동화를 오디오북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재밌을 것 같아요?”
“전래동화가 뭐예요?”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예요. 전래동화를 읽으면 한국인과 한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좋아요. 우리는 한국을 잘 이해하고 싶어 해요.”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잠깐만요. 먼저 한번 읽어볼게요. 재밌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먼저 읽어봐야 해요.” 찬찬히 읽고 모르는 것은 물어보는 고려인동포에게 나는 잘 안되는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과장된 몸짓을 섞어 설명했다. 센터를 자주 이용하고 도움을 주는 분들로 참여자를 선별하여 오디오북을 만들었다.

하나의 전래동화를 러시아어와 한국어로 두 편씩 만들었다.

“심청이가 쌀 삼백 석에 팔려갔는데 심봉사는 쌀도 못 받았어요. 어릴 적에는 아무 생각 없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눈물을 훔치며 한국어 참여자가 말한다. “러시아어로 말하는 거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아는 동화니 들어봐요. 고려인들도 마찬가지겠지요? 한국어를 모르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겠어요.” “곰이 여자가 됐어요. 한국인은 곰에서 나왔어요? 러시아에 곰이 많아요. 사람들이 곰 좋아해요.” “이렇게 큰 할머니가 제주도를 만들었어요? 제주도 가보고 싶어요. 나는 중앙아시아에서 와서 바다를 좋아해요. 강원도는 가봤는데 제주도는 못 가봤어요. 꼭 가보고 싶어요.” “아이고 호랑이가 너무 못됐어요.”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 잘 들려줘야 한다는 마음이 전래동화를 새롭게 읽히게 하고, 고려인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지만 이를 통해 한국을 알아가며 자신들의 조부모가 한 얘기들이 기억난다고 하며 공감대를 형성해갔다.

오디오북을 제작이라는 작은 돗자리에 앉아 전래동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경험을 소환하고 역사와 민족적 교점을 찾아가며 정서적 터치를 더 한다. 작은 일을 계기로 너와 나 만나고 동네가 만나고 조상까지 불러내어 이야기하며 안부를 전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일자리는 있어요? 마스크는 있나요?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어요?” “ 코로나-19가 끝나면 제주도에가서 설문대할망을 만나봐요.”

‘변화의 시나리오’ 누가 이 사업의 이름을 지었는지 찰떡 같다. 누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런 시나리오가 나올 줄 알았겠는가? 어쩌면 ‘한국전래동화 오디오북’ 제작은 껍데기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우리의 만남이 가져다준 가슴의 작은 파동. 이 작은 변화가 멋진 시나리오를 써 내려간 것 같다. 지루한 나날이 계속되는 코로나-19 시국에 따뜻한 마음의 불씨를 불어넣어 준 이름도 아름다운 ‘아름다운재단’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글 : 고려인센터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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