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이하 청자발)은 청소년이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꿈꾸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7년 청자발은 10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는 누가, 어떤 자발적 활동이나 창의적 실험을 할까요?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만나볼까요? 지난 10월 첫째주, 제주 김만덕기념관에서 <여러가지>를 만났습니다. |
*포스트 제목의 ‘어떵허우꽈?’는 ‘어떻습니까?’라는 뜻의 제주어입니다.
미션을 수행하라!
자신의 주변으로 올망졸망 모여든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래진은 <안녕, 나는 제주도야>라는 동화책을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제주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주도에는 왜 까만 돌이 많은지, 해녀는 무슨 일을 하는지,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은 무엇인지 등 제주도의 자연, 사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마지막 책장이 넘어갈 때까지 두 눈을 반짝이며 래진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초등학생들을 이토록 집중하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그 비밀은 바로 ‘미션’. 아이들은 동화책 읽기가 끝나면 책 내용과 관련된 미션(게임)을 수행해야 한다. 각각의 미션에 도전하고 정답을 맞히면 스탬프를 받는다. 아홉 개의 스탬프를 모으면 미션 클리어!
- 주상절리대 찾기: 주상절리대는 병풍처럼 육각형 돌기둥들이 둘러쳐진 해안 절벽이다.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 중의 하나이다. 우드락 퍼즐을 열어서 주상절리대를 찾아보자!
- 병뚜껑 치기: 손가락으로 병뚜껑을 튕겨서 내가 목표한 곳으로 보내 보자!
- 색종이 접기: 제주도에 말이 많은 이유는? 13세기 탐라를 직접 지배하던 몽골이 몽골말 160마리를 들여온 이래 목축업이 발달했기 때문. 색종이를 접어 제주말을 접어 보자!
- 말 디자인: 제주도에서는 말의 털 색깔에 따라 말의 이름이 달라진다. 적다말(붉은말), 청총말(푸른 총의 흰 말), 유마(검은 총의 갈색 말), 가라말(검정말), 월라말(얼룩말)을 연결해 보자!
- 마인드맵: 주어진 세 개의 단어를 보고 연상되는 제주어를 맞추어 보자!
- 돌 찾기: 야바위게임에 속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제주도 암석을 찾아 보자!
- 워드서치: 빼곡하게 쓰인 글자판 속에서 제주도와 관련된 단어를 찾아 보자!
- 제주도 꾸미기: 텅 빈 제주도 지도에 내가 좋아하는 걸 그리고 색칠해 보자!
- 책갈피 만들기: 나뭇조각에 눈코입과 말갈퀴를 붙여서 말머리 모양의 책갈피를 만들어 보자!
아이들은 <여러가지> 멤버들이 운영하는 미션 장소로 우당탕탕 뛰어갔다. 아홉 개의 미션 장소를 돌아다니며 언니, 오빠들과 한바탕 게임을 벌였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게임인 워드서치(거의 한글판 매직아이 수준이다)에는 아이들이 와글와글 매달려서 글자판을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며 단어 찾기에 몰두했다. 멤버들은 정답을 맞히지 못해 울상이 된 아이에게 몰래 힌트를 주기도 했다.
새로운 독서방법 ‘북엔티어링’
<여러가지>는 제주 아라청소년문화의집에서 만난 중고생들이 만든 동아리이다. 2015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독서토론 동아리의 일부 멤버들이 지역사회의 청소년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한 달에 한번 제주 지역의 청소년기관을 방문하여 북엔티어링을 진행하고 있다.
“독서는 모든 활동의 기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 나연
책보다 인터넷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보다 쉽게 독서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북엔티어링’이라는 새로운 독서방법을 개발했다. 북엔티어링은 Book(책)과 Enteering(임무수행 활동)의 합성어로 참가자들과 함께 선정도서를 읽고, 책 내용과 관련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책 내용을 학습한다. 북엔티어링은 독서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 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깬다. ‘혼자 하는 독서’가 아니라 ‘함께하는 독서’, ‘눈으로 책 읽기’가 아니라 ‘몸으로 책 읽기’를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여러가지>는 북엔티어링 선정도서로 <곱을락>, <은실이와 갈천 한 조각>, <안녕, 나는 제주도야> 등 제주도와 관련된 책을 정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자신이 사는 고장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배경, 이주민 유입 등으로 제주의 고유한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어는 2011년 유네스코에 의해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지정되었다. <여러가지>는 청소년이 새로운 독서방법을 통해 제주문화와 제주어를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독서가 사람을 만든다
<여러가지>는 북엔티어링 선정도서를 정하고, 책 내용에 따라 미션을 만든다. 초등학생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 회의도 하고 자료도 찾아본다. 멤버들은 이런 과정 속에서 제주문화에 대해 배우고, 책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제주도 관련 이야기가 들리면 저도 모르게 듣고 있어요. ‘아, 이런 것도 있어?’하면서. 예전에는 제주도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관심을 안 가졌는데, 제주도에서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아 정말?’이러고.” – 래진
“활동하면서 제주어나 제주문화를 많이 배우고 있어요. 예를 들면 ‘곱을락(숨박꼭질)’은 이번에 처음 들어 보았어요. 그리고 ‘도새기(돼지)’ 같은 건 평소 자주 쓰는데, 이번에 제주어라는 걸 알았어요.” – 래진
“저는 제주도 사람이 아니에요. 주변 친구들은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제주어 쓰는 게 자연스러운데 저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어요. 그런데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제주어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보다 우리가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 경민
북엔티어링 참가자도 이들처럼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제 동생이 북엔티어링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걸 계기로 한동안 만화책 대신 동화책을 꾸준히 읽더라고요. 요즘엔 다시 만화책으로 갈아탔지만…” – 래진
“저도 처음에 남동생을 데리고 왔었어요. 동생은 워낙 책을 안 읽는 편이지만, 그냥 데리고 왔었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 동생이 엄마랑 책 읽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어요. 북엔티어링이 성과가 있다는 걸 느꼈죠.” – 경민
멤버들은 북엔티어링에 참가한 초등학생 아이들을 만나면서 또래 친구들이 아니라 동생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몇 번의 경험이 쌓이자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달라졌다.
“저는 성격이 가장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학교 활동에 참여를 많이 안 했는데, 요즘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외동이라서 친척동생들이랑 말을 잘 못했거든요. 여기에서 많은 아이를 만나면서 동생들이랑 조금씩 대화할 수 있게 되었어요.” – 나연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잘 못 했는데, 활동하면서 아이들한테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하면서 달라진 거 같아요.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좀 편해졌어요.” – 서연
<여러가지>는 청자발을 디딤돌 삼아 제주문화를 주제로 한 북엔티어링 활동을 지속할 것이다. 선정도서를 추가하여 풍부한 콘텐츠를 만들고, 중고등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는 북엔티어링도 기획할 생각이다. 보다 많은 청소년이 놀면서 배우는 독서의 즐거움, 소중한 제주문화를 지키는 독서의 힘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나에게 청자발은 ○○이다
“청자발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직접 뭔가를 해보는 거잖아요. 이걸 토대로 다음에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래희
“청자발은 성장의 발판이다. 청자발은 어른이 만든 프로그램에 청소년이 참여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해보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 나연
“청자발은 개성이다. 우리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으니까.” – 지혜
“청자발은 여러가지다. 청자발을 통해 우리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 지난번 OT에서 느낀 건데, 올해 청자발 열 개 팀이 전부 독특해 보였어요.” – 래진
“청자발은 필수조건이다. 모두들 청소년은 공부만 하면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청자발은 딴 짓을 할 수 있게 해주잖아요.” – 경민
“청자발은 나의 전환점이다. <여러가지> 활동하면서 성격도 활달해졌고, 책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 서연
“청자발은 시작점이다. 이렇게 한번 해보니까 다른 주제의 활동이나 어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쉽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성현
글, 사진 | 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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