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이하 청자발)은 청소년이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꿈꾸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7년 청자발은 10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는 누가, 어떤 자발적 활동이나 창의적 실험을 할까요?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만나볼까요? 지난 11월 둘째주 토요일, 경기도 안산시 문화공간 아지트쉼에서 <인블룸>을 만났습니다. |
자기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
안산의 작은 문화공간에서 <2017 희망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인블룸> 멤버들은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고, 긴장과 설렘으로 상기된 표정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초겨울 추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른여 명의 청소년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자, 네 명의 청소년 강연자는 차례로 무대에 올라 ‘우리가 원하는 학교’라는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쳤다.
첫 번째 강연자는 교육 정책의 방향성이 청소년이 저마다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들은 교육을 통해 각자 자신이 누군지 탐색하고, 자신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강연자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부추기는 언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혐오와 차별이 없는 학교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나머지 강연은 각각 교칙과 교내 활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강연자는 교칙이 학교공동체를 유지하고 다른 구성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하는 약속이라면, 두발이나 복장의 자유를 허용해도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네 번째 강연자는 교내 활동이 진학이나 진로와 관련된 활동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강연이 끝나고 강연자와 관객들의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관객들의 질문은 강연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주었다. 청소년들은 자유롭게 소통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절실히 필요했던 게 아닐까. 이들은 어른이 강요한 ‘학생다움’이 아니라 스스로 탐색하고 발견한 ‘자기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를 원하고 있었다.
작지만 멋진 활동
<인블룸>은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는 고등학생 11명으로 구성된 청소년활동가그룹이다. 청소년활동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기부이펙트>가 이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 <인블룸>은 ‘희망이 회복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정기적인 토론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이벤트, 캠페인, 강연 등을 개최한다.
<인블룸>은 두 달마다 활동의 기획, 실행, 평가를 진행하여 작지만 멋진 활동을 만들었다. 올해에는 건전한 놀이문화를 만들기 이벤트 <런닝몬고>, 길거리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 <클린마스터>, 일상생활 속에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는 이벤트 <심쿵고민상담소>, 청소년들의 소통을 위한 강연 <2017 희망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함께 한다는 건
뮤직페스티벌 같이 “놀고 죽자!” 이벤트를 만들고 싶었던 경진, 참가자보다 기획자가 되고 싶었던 소의, 진로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었던 은진. 멤버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인블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명확히 알고 있었다. 멤버들과 ‘함께’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함께 한다는 건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멤버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서 회의를 했고, 어느새 달라진 자신을 발견했다.
어쩌다 리더가 된 은진은 알고 보니 리더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멤버들의 의견을 이끌어내고, 멤버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역할을 분담했다.
“회의를 진행할 때 멤버들이 한 명씩 말하는 게 중요하니까 네 생각은 어때, 네 생각은 어때, 기회를 주거든요. 저는 의견을 다 듣고 종합해요.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사람마다 성격이나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경진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을 잘 거니까 인포메이션으로 보내고, 소의는 계산을 잘 하니까 예산관리를 시키고…” – 은진
경진은 멤버들과의 대화 속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상대방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기로 했다.
“회의하면서 느낀 건 나는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말한 건데, 멤버들이 해주는 피드백을 들어보면 제 말에 빈틈이 정말 많은 거예요.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 경진
“멤버들이 엠티를 다녀오고 너무 친해져서 회의에서도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그래도 회의는 공식적인 자리인데 너무 필터링 없이 말하니까 짜증났어요. 근데 생각해보니 저는 짜증나고 끝이지만, 회의를 진행하는 은진이랑 소의는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짜증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경진
“맨날 헛소리만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회의할 때 보니까 너무 괜찮은 거예요. 남들이 못 보는 거 센스 있게 잘 짚어내고, 돌발 상황이 생겨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겠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죠.” – 경진
시민들과의 생각지 못한 케미
<인블룸>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기획한다. <심쿵고민상담소>는 시민들이 각자의 고민을 적어 편지를 보내면 멤버들이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답장을 보내는 이벤트였다. 시민들은 고단한 일상생활 속에서 잠시나마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성적 때문에 고민이라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거나 성적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만의 특기를 찾아보라고 했어요. 답장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까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 소의
“빚 문제 같은 심각한 고민도 있었어요. 솔직히 그분이 우리가 자기 고민을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고민을 쓰는 걸 보고, 진짜 이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으시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 경진
때때로 <인블룸>과 시민들의 생각지 못한 케미(!)가 폭발했다. 길거리 줄이기 캠페인 <클린마스터>를 진행할 때, 멤버들은 청소년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길거리 쓰레기를 주웠다. 길거리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한 참가자들의 반응은 예상을 비껴갔다.
“자원활동가들이 되게 시큰둥하게 쓰레기를 주울 줄 알았는데 다들 열심히 했어요. 참가자들은 내가 버린 쓰레기도 여기에 있다, 내가 여태까지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버린 줄 몰랐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겠다, 진심으로 반성하기도 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느꼈죠.” – 경진
<2017 희망 토크 콘서트>에서도 참석한 관객들의 진지하고 열띤 토론도 기대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특히 관객들은 하마터면 무대에 올리지 못할 뻔했던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강연에 가장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처음엔 성소수자 이슈가 토크 콘서트의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빼려고 했어요. 근데 우리 주변에도 청소년 성소수자가 분명히 있을 텐데, 혹시 그런 친구들이 관객으로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까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강연을 채택했는데 반응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안 했다면 후회할 뻔했어요.” – 경진
나에게 청자발은 OO이다
“나에게 청자발은 도전이다. 청자발에 지원한 건 제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동이었어요. 제가 이 나이에 누구한테 돈을 달라고 해본 적도 없고, 그런다고 누가 저에게 이렇게 큰돈을 주지도 않을 거고. 지원신청서를 엄청 열심히 썼어요. 우리가 이런 활동하려면 이런 게 필요하다, 그래서 꼭 지원을 받고 싶다. 저에게는 그게 다 도전이었어요.” – 은진
“나에게 청자발은 사채업자이다.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지원을 받았으니까 그만큼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느낌? 사채업자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요. 하여튼 기분 좋은 자극이 되었어요.” – 경진
“나에게 청자발은 가시방석이다. 제가 예산관리를 하고 있는데, 돈을 잘못 쓸까봐 무서워요. <런닝몬고> 할 때 물품구입비 예산에 구멍이 난 적이 있었어요. 다행히 선생님이 예비비를 빼둔 게 있어서 해결했는데, 그다음부터는 돈 쓸 때마다 몇 번씩 확인해요.” – 소의
글, 사진 | 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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