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이하 청자발)은 청소년이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꿈꾸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7년 청자발은 10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는 누가, 어떤 자발적 활동이나 창의적 실험을 할까요?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만나볼까요? 지난 9월 둘째 주 토요일, 대구의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반딧불이 사무실에서 <청문회>를 만났습니다. |
내가 만드는 청소년 정책
“토론하는 동안에는 소수자 차별 발언을 지양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존댓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을 맡은 민상은 참가자들에게 규칙을 안내했고,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청문회>에서는 매주 청소년들이 청소년 인권을 주제로 수다를 떠는 뒷담회를 열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내가 직접 만드는 인권교육정책’. 청소년 정책은 청소년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만,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청소년 참여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 청소년 정책은 청소년의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청소년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청문회>는 3단계로 정책 만들기를 진행했다.
- 1단계: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찾는다. 현 대구시교육감의 공약이행 여부를 평가하여 Best & Worst를 뽑는다.
- 2단계: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 위한 근거를 찾는다. 세계인권선언, 대구교육권리헌장, 청소년헌장 등을 학습한다.
- 3단계: 정책을 제안한다. 정책이 필요한 이유, 정책의 구체적 내용, 정책 제안의 근거 순으로 작성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가 담긴 다양한 정책이 만들어졌다. 대구교육권리헌장 대신에 관련 조례를 제정하여 법적으로 학교 구성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학교 구성원들의 인권교육을 의무화하기,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의견수렴구조 만들기, 보충학습이나 야간학습은 자율적으로 참석하기, 건강상의 이유로 조퇴할 때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관리하기, 교사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는 학생부 기재방식 개선하기 등.
<청문회>가 만든 청소년 정책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활용할 계획이다. 한국은 투표 연령을 만 19세로 정하고 있어 청소년은 투표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모의투표를 진행하거나 교육감 후보에게 정책을 제안하는 등 청소년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소년 인권을 밝히는 반딧불이
<청문회>는 대구의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반딧불이에서 만난 청소년들로 구성된 모둠이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고, 청소년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청소년 인권 옹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초 고등학교를 졸업한 민상은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영재반에 속해있으면서도 학생들이 성적순으로 차별받는 사실에 화가 났다. 혜린도 마찬가지.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혜린을 예민하고 불만이 많은 학생이라고만 생각했다. 우연히 반딧불이를 알게 되었고, 이곳에서 나의 고민에 공감하는 동료들을 만났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다은은 인권 공부를 통해 언어를 배웠다. 이전에는 단지 이상한 일, 기분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걸 지금은 인권침해나 차별로 규정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청문회>는 캠페인, 토론회, 간담회 대신 또래 친구들이 보다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뒷담회를 마련하고 있다. 뒷담회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고민이나 생각을 나누고, 특정 문제를 인권의 관점으로 새롭게 인식하며,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인권 감수성을 키우고, 이를 토대로 청소년 인권을 증진하거나 청소년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도 전개한다.
우리의 작은 변화
<청문회>가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청소년의 사회참여 활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이다. 오늘 혜린은 부모님께 진학 상담하러 간다고 하고 반딧불이에 왔다.
“어른들은 학교에서 부당한 일이 있어도 그걸 참고 견디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요.” – 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문회>가 꾸준히 활동하는 이유는 나와 내 주변의 작은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나’의 인권이 소중한 만큼 ‘너’의 인권도 소중하고,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걸 배웠다.
“인권을 공부하면서 내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더욱 잘 배려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상대방의 나이를 물어보고, 십대라고 하면 당연히 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상대방의 나이를 물어보지도 않고, 십대라고 해도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다은
“저를 비롯한 <청문회> 친구들의 인권의식이 점차 확장되는 걸 느껴요. 몇 달 전에 성소수자가 신입 멤버로 들어왔어요. 기존 멤버들은 성소수자와 직접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뒷담회 주제를 ‘성소수자 인권’으로 정하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 민상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가 고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듯이 나의 변화는 내 주변으로 이어졌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인권 감수성을 깨우고, 그들과 함께 일상에서 겪는 부당함에 맞섰다.
“저는 제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수업 중에 선생님이 부적절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 문제를 그냥 넘길 수도 있었지만, 제가 친구들을 설득하고 의견을 모아서 학교에 제출했거든요. 결국 선생님의 사과도 받았고, 친구들은 이 일을 계기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 제기할 수 있게 되었어요.” – 혜린
“엄마가 저랑 대화하던 중에 소수자를 차별하는 발언을 했어요. 저는 엄마에게 그 말은 이러이러해서 잘못된 거니까 쓰지 말라고 했고, 엄마는 알겠다고 했어요. 며칠 지나고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엄마 친구가 엄마랑 똑같은 말을 했어요. 엄마는 친구에게 그 말은 이러이러해서 잘못된 거니까 쓰지 말라고 했어요. 그걸 보고 나의 변화가 주변에 조금씩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 다은
<청문회> 멤버들은 거리 캠페인이나 행사에서 활동을 응원해주는 시민들을 만날 때, 학교 담장 너머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자신들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걸 느낀다고 했다. 청소년 사회참여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확산되어 <청문회>가 보다 많은 동료를 만나고, <청문회>같은 청소년 사회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나에게 청자발은 ○○이다
“나에게 청자발은 반딧불이다. 청자발은 반딧불이처럼 우리를 밝혀주니까요. 우리와 함께 대구 인권의 어두운 길을 밝힙시다.” – 민상
“나에게 청자발은 빛이다. 우리가, 우리의 활동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빛을 주었어요.” – 다은
“나에게 청자발은 신발이다(민상: 라임을 잘 맞추었네. 신발, 청자발). 우리가 한발 한발 힘차게 내디딜 수 있게 도와주니까요.” – 혜린
글|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사진ㅣ안지해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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