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이하 청자발)은 청소년이 공익활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꿈꾸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7년 청자발은 10개 청소년 모둠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는 누가, 어떤 자발적 활동이나 창의적 실험을 할까요? 설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만나볼까요? 지난 11월 둘째 주 일요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현청소년수련관에서 <잔상과3의숫자들>을 만났습니다. |
꿀잠마스터의 탄생
세상에 하고많은 대회가 있어도, 아마도 <꿀잠자기대회>는 세계 최초가 아닐까. 어떤 환경에서도 꿀잠을 잘 수 있다고 자신하는 꿀잠마스터 지민이 개최한 행사이다. 지민을 포함한 <잔상과3의숫자들> 멤버들은 이 대회를 통해 새로운 꿀잠마스터를 발굴하고, 꿀잠자기도 하나의 재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본격적인 꿀잠자기에 앞서 숙면에 필요한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한 게임을 벌였다. 에어베드, 침낭, 매트리스, 요가매트, 돗자리, 담요, 목베개, 귀마개 등 다양한 아이템 중에서 1등은 4개, 2등은 3개, 3등은 2개, 4등은 1개만 가질 수 있다.
첫 번째 게임은 신발을 멀리 던지기, 두 번째 게임은 동문서답 게임이었다. 체력전은 물론, 심리전에도 능통해야 한다. 수한이 1등, 막판에 역전을 거듭한 연희가 2등을 했다. 수한과 연희는 모두가 탐냈던 에어베드 외에도 여러가지 아이템을 차지했다. 꼴등한 주형은 요가매트 달랑 한 장으로 잠자리를 만들었다.
친구들은 꿀잠마스터 도전자답게 불을 끄자마자 꿈나라로 갔다. 30여 분이 지나자, 지민이 잠에 빠진 친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각종 방해공작을 시작했다. 컵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냄새를 풍기는 1차 공격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 살짝 당황한 지민은 이내 다음 공격을 개시했다. 깃털로 발바닥을 간질이는 2차 공격에 지수와 주형이 부스스 눈을 떴고, 볼륨을 한껏 높인 스피커를 귀에 갖다 대는 3차 공격에 수한이 꼼지락거렸다.
반면 연희는 계속되는 공격에 미동도 하지 않고, 숙면을 취해 오늘의 최후 승자가 되었다. 새로운 꿀잠마스터가 탄생했다. “위 청소년은 꿀잠자기대회에 참가하여 우수한 기량을 발휘하여 폭풍수면을 취했으며,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본인의 숙면을 위해 노력하였기에 이 상장을 드립니다.” 지민이 상장을 전하자, 잠에서 덜 깬 연희는 간결한 수상소감을 전했다.
“학교에서 잠자면 혼나는데, 여기에서는 친구들이랑 다 같이 잘 수 있고, 상까지 주니까 좋아요.”
누구나 행복한 아무말학교
<잔상과3의숫자들>은 ‘성남시청소년행복의회(이하 행복의회)’에서 만난 청소년 6명으로 구성된 모둠이다. 이들은 행복의회에서 제안대회, 토크콘서트, 포럼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청소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토대로 관련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청소년이 만드는 더 나은 청소년의 삶”에 관심 있는 멤버들은 행복의회에서 시도할 수 없는 작당모의를 하기 위해 청자발을 찾았다.
멤버들은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만 재능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얼핏 보기에 평범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른 관심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 지민이는 꿀잠을 잘 자고, 지수는 잘 먹고 잘 논다. 주형은 친구들의 재능을 잘 찾아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이런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아무말학교>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싶은 누구나 워크숍을 열 수 있다. 지금까지 <꿀잠자기대회>, 페미니즘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페미니즘 스터디그룹>, 이날만큼은 잘난 척해도 괜찮은 <자기자랑 발표대회>, 넘치는 흥을 주체할 수 없는 친구들이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뮤직 커뮤니케이션>, 아두이노를 활용한 RC카를 만들어보는 <상상을 스케치 하자> 등을 진행했다.
<아무말학교>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재능을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다. <잔상과3의숫자들>은 이곳에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우리들만의 문화
<잔상과3의숫자들> 멤버들은 <아무말학교>의 기획자이자 참가자로서 친구들과 함께 ‘아무 말’이나 ‘아무 것’을 하면서 실컷 놀았다. 어느새 이들에게는 친구들의 평범함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예전에는 제 무의식에 쟤는 저거 잘해서 뭐 하려고 하지?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활동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쟤는 저걸 되게 잘하니까 쟤를 무시하면 안 되겠구나. 나랑 다르다고 해서, 저거 잘해서 뭐하나 마음대로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 지수
“저는 제가 재능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는 훨씬 많고 많은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저에게 남의 재능을 찾아주는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 주형
“자기가 재능이 있다는 걸 못 느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자기 과시에 특화된 사람이거든요. 아니면 볼품없는 것도 되게 가치 있는 것처럼 부풀려서 말하는 걸 잘해요. 그래서 제가 친구에게 경매쇼를 하거나 자기자랑을 해보라고 했고, <자기자랑 발표대회>를 열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 주형
친구들의 재능을 찾아주는 재능이라니, 인터뷰 내내 친구들에게 “You can do it!”, “You are the best!” 같은 긍정의 메시지를 날렸던 주형에게 꼭 어울리는 재능이다.
지민은 <아무말학교>가 누구나 즐겁게 어우러질 수 있고,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재능을 인정해주는 해방적 공간으로서 하나의 문화가 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청소년 활동이라고 해도 어른들이 주도하는 게 있잖아요. 보통 청소년은 어른들에게 끌려가는 게 현실이죠. 청소년끼리 중에서도 나이순대로 끌려가는 게 있거든요. 근데 <아무말학교> 워크숍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재미있게 놀았고, 우리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 지민
“저는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올 거라 생각했어요. 저희가 여력이 안 되어서 홍보를 엄청 크게 하지는 못 했어요. 친구들한테 말하고, 수련관에 전단지 붙이고, 조금씩 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청소년이 참여해주었어요. 청소년들이 지금까지 이런데 참여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닐까, 우리가 그런 기회를 만들어준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 지민
항상 시간이 부족한 주변 친구들에게 틈새 시간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키트를 만들어 나누어주고 싶다는 지민, 성남형 청자발을 만들고 싶다는 주형, 청소년 정책에 관심을 끌게 된 지수, 자신의 재능을 펼칠 좋은 기회를 찾은 수한.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친구들이 만드는 청소년들의 문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나에게 청자발은 OO이다
“나에게 청자발은 목표이다. 그냥 한번 해볼까, 이런 게 아니라 자기만의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해 청자발을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 수한
“나에게 청자발은 기회이다. 누가 자기 돈 들여서 꿀잠자기대회를 열겠어요? 청자발은 엉뚱한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 같아요.” – 주형
“나에게 청자발은 기름이다. <열정에 기름 붓기>라는 책 제목이 생각났어요. 청자발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더욱 잘할 수 있게 하는 연료 같은 느낌이에요.” – 지민
“나에게 청자발은 에너지이다. 청자발은 시민들의 기부금을 모아서 200만원까지 돈을 지원해주잖아요. 그게 시민들이 “너네도 할 수 있어!”, 청소년들의 꿈과 잠재력을 응원해주는 거라고 느껴지거든요.” – 지수
글, 사진 | 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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